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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 칭다오 이공대학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쳤다. 칭다오라는 지역성, 건축이라는 전문성, 교수와 대학생이라는 계층성, 한국인과 중국인이라는 민족성… 언뜻 보면 좀 특이한 소재이지 싶다. 하지만 이 소재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이며 작고 밀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대표할 만한 잘난 사람이 아닌, 고만고만한 약력을 가진 한국인 선생과 함께 지지고 볶던 고만고만한 중국 대학생들과 이웃의 울퉁불퉁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기자말

2009년 7월 2일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서 열린 산둥성 교육 두다오(督?) 학회 이사회.
▲ 제4회 산둥성 교육 두다오(督?) 학회 이사회 2009년 7월 2일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서 열린 산둥성 교육 두다오(督?) 학회 이사회.
ⓒ 산둥성 교육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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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그러나 설계수업은 일 주일 동안 할 수업을 하루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업을 하셔야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을 하더라도 수업 시간을 꼭 지켜 주십시오. 수업 시간은 50분, 쉬는 시간은 10분입니다. 쉬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됩니다. 간혹 불시에 누군가가 여러분의 수업을 참관하러 다닐 겁니다. 그 때 여러분이 교실에 없으면 곧 바로 상부에 보고되고 여러분은 시말서를 써야 합니다."

학교에서 처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학교가 이래? 대학교 수업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다니, 교수의 재량은 있기나 한 걸까? 목에 개 줄이 걸리고 발목에 쇠고랑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구나, 당혹감과 거부감이 일었다. 교권침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인 교직원은 그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에 왔으면 중국법을 따르면 그만이지, 별일은커녕 당연한 일을 가지고 유난을 떨어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외국인인 우리들은 우리대로 학교 측에 설명을 했다. 설계수업은 다른 과목과 달리 발표와 토론 위주로 한다, 그러니 시간에 딱딱 맞춰 50분 강의하고 10분 휴식하는 것은 무리다, 질보다 양을 따지는 수업평가 방식도 문제다, 게다가 수업 도중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불쑥 들어오면 어떻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씨알도 안 먹혔다. 학교 측은 발표든 토론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되 50분마다 끊어서 하고, 수업 평가도 외부인의 출입을 의식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될 걸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 설계수업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하는 수업만 해도 어수선하고 복작복작하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과제물을 벽에 쭉 붙인다. 한 명씩 발표를 하고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한다. 발표 내용 중에 공통된 문제점이나 이슈가 있으면 토론을 한다. 그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설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대지에 같은 규모, 같은 기능의 건물을 설계하더라도 학생마다 개념과 과정, 결과물까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발표와 토론은 그 다름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왜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그렇게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어떻게 공통된 문제를 다양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고민의 내용이 그 날의 과제가 되고 다음 수업 시간에 발표할 내용이 된다.

이런 식의 수업은 학생들의 수준과 과제물 내용에 따라 발표와 토론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맥없이 끝나기도 한다. '50분 수업-10분 휴식'의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어쩌다 맹렬하게 불붙기 시작한 토론을 중간에 끊어 버릴 수는 없다. 끓어오른 분위기가 쉬는 시간 10분 만에 식어 버리면 또 예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두 시간 정도 폭풍처럼 몰아서 하다가 20분 정도 쉰다. 발표와 토론 과정이 끝나면 나는 학생들과 1: 1 수업을 하면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건드린다. 이때 다른 학생들은 자기 자리에서 앞서 토론한 내용을 참고로 개인 작업을 하고 쉬는 시간은 알아서 한다.

기말이 다가오면 수업과 쉬는 시간은 더 애매모호해진다. 그때쯤 학생들은 디자인 단계가 끝나고 전시용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든다. 이때부터 시간 싸움이고 체력전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마감 스케줄에 맞춰 작업을 하는 동안 교수는 설계실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 연구실과 설계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들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독려하면 된다. 교수 혼자만의 욕심에 취해 학생 옆에 착 달라붙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면 오히려 마감을 제때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교직원이 말한, '그 누군가'가 수업시간에 나타난다면? 나는 꼼짝없이 시말서를 쓰다가 결국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다.

'그 누군가'를 사람들은 '두다오(督导)'라고 불렀다. '두다오'는 주로 교육, 제조업, 서비스업 분야에서 직원들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칭다오 이공대의 '교육 두다오'는 퇴직한 교수들이 주로 한다. '두다오'는 매학기 예고 없이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수업을 참관한다. 1시간 동안 강의실 한쪽에 앉아서 해당 교수의 강의 내용과 방식을 기록하고 자신들의 평가를 보태어 '참관기록(听课记录)'을 쓴다.

만일 '두다오'가 왔을 때 강의실에 교수가 없거나 지각을 했다면 교무처에 통보가 되고 교수는 시말서를 써야 한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 해직까지 된다. 또 만일 교수가 제 시간에 왔지만 결석자가 많아도 교수 책임으로 돌린다. 결석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교수의 수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감독하는 사람은 '두다오'뿐만이 아니다. 교무처 직원들도 한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연휴 직전에 있는 보충 수업시간에 교무처 직원들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제대로 수업을 시작하고 마치는지 조사하고 학생들의 출석 상황을 파악한다. 교무처 직원들은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참관기록을 쓰지는 않는다.

학생들도 교수 평가를 한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려면 먼저 해당 과목 교수와 수업 내용을 평가해야만 한다. 이렇게 교수 평가는 학생, 교무처 직원, '두다오'가 삼중으로 한다. 초반에 나는 '두다오'나 교무처 직원이 돌아다니는 날이면 마치 움직이는 취조실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때로는 독 안에 든 쥐마냥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속으로 그들을 감독자나 지도자가 아닌 '감시자'라고 불렀다.

두다오에 맞선 '조력자'들, 공범자가 되다

이곳에 출석과 성적을 기록한 후 학생들의 과제물을 모은 CD와 함께 제출하고 성적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한 학기가 끝난다.
▲ 학생들의 출석과 성적을 기록하는 서식 이곳에 출석과 성적을 기록한 후 학생들의 과제물을 모은 CD와 함께 제출하고 성적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한 학기가 끝난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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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가 있다. 이론과 현실은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어디든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력자가 생겼고 나는 나대로 요령을 터득했다.

최초의 조력자는 외국인 교수를 담당하는 국제학원 사무실 선생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두다오' 일정을 미리 알아차리고 우리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사실 그들은 일반적인 행정 직원은 아니었다. 국제학원 사무실에서 행정 일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도 쓰는 교육자였다. 다들 외국어 전공자들이었고 외국 유학을 갔다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저런 공감대 덕에 우리는 '그들이 떴다'는 연락을 살짝 받을 수 있었다.

'두다오'가 정말 난데없이 나타난 경우에는 학생들이 조력자가 되었다. 9시 50분이 아닌 10시 10분에 내가 설계실에 없으면 학생들은 이렇게 둘러댔다.

"방금 사무실에서 긴급 호출이 와서 나갔어요."
"교수 회의에 참석하고 있어요."

내가 "잠시 쉬자" 말하는 순간 설계실 문틈 사이로 '두다오'의 얼굴이 비치면, 학생들은 잽싸게 신호를 보냈고 우리는 모른 척 수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공범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나의 요령은 별 게 아니었다. 몇 번 겪어보니 '두다오'가 나타나는 시간은 오전 8시가 가장 많았다. 그들은 경험상 외국인들은 선생이건 학생이건 중국의 아침 8시 수업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50분 수업-10분 휴식'은 제대로 못 지켰지만 8시 시작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켰다. 나의 잔꾀가 제법 먹히고 그 상황에 익숙해지자 '두다오'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두다오'가 하루에 서너 번씩 나타나는 날에는 무슨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스릴마저 느껴졌다. 나는 점점 '두다오'를 가볍게 생각했다. 뭘 모르는 외국인을 겁주려고 한 것일 뿐, 사실은 형식적으로 하는 '나이롱' 관행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두다오는 '나이롱'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 후 내가 잠시 칭화대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였다. 중간고사 무렵, 하루 종일 수업 시간마다 '두다오'가 투명인간처럼 쓱 교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수업시간 내내 구석 자리에 마네킹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손만은 종이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중국인은 중국어 선생과 '두다오' 단 두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중국어 선생은 '두다오'가 없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했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떤 학생은 딱딱해진 표정으로 교실 뒤 쪽에 설치된 CCTV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 날 어느 누구도 수업시간에 질문이나 농담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느닷없이 중국어 회화 선생이 바뀌었다. 가뜩이나 학생들이 싫어하던 선생이었다. 어떤 학생은 '두다오'의 보고서 때문에 그가 잘렸다고 했고, 어떤 학생은 아무리 그래도 한 학기가 끝나기 전에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학생이 사무실에 가서 물었다. 사무실 직원은 그 선생이 갑자기 아파서 못 온다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학생은 없어 보였다.

그 때 나는 칭다오 이공대의 '두다오'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는 '두다오' 때문에 시말서를 쓴 적이 없었다. 경고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 내 수업 시간에 '두다오'가 들어 왔어도 설계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기록까지 했던 사람도 없었다. 새삼 의문이 생겼다. 겉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과연 그들이 나와 학생들의 작전을 모를 만큼 허술한 사람들이었을까?

나중에 나는 국제학원 사무실 선생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알고 보니 합작 프로그램 외국인 교수들에게는 설렁설렁 했단다. 원래는 원칙대로 하려고 했지만, 차츰 수업 시작시간과 보충수업 확인 정도만 하고 우리들의 수업방식을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단다. 하긴 노련한 '두다오'가 나와 학생들의 어설픈 합동 작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그들을 나이롱 '두다오'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일을 퇴직 교수들의 소일거리쯤으로 여겼다. 내가 착각에 빠져 있는 동안, 어찌보면 내게 가장 큰 조력자는 다름 아닌 '두다오'였다.

그런데 중국인은 '두다오'가 불쑥 나타나면 어떤 기분일까? 아무리 당연하게 여기는 제도라고 해도 한 시간 내내 관찰당하는 기분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 감독하는 사람이나 감독 받는 사람이나 어쨌든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말이다. 이공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중국인 선생이 자신의 초창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나른한 봄날 오후, 그날 따라 하필 '두다오'가 교탁 바로 앞에 앉는 거예요. 코앞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니까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 날은 중국어로 한국어 문법을 설명하는 날인데 일부러 한국어로만 말했어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 지루해서라도 좀 일찍 나가겠지 싶어서요. 아니나 다를까 두다오가 계속 하품을 하는 거예요. 나는 속으로 이제 곧 나가겠지, 나가겠지, 그랬는데... 세상에나, 잠시 후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뒤에서 학생들은 킥킥대고, 나는 속으로 '그래, 내가 졌다'하고 말았지요. 어쨌든 그 사람, 한 시간 다 채우고 나갔어요."


태그:#중국 칭다오 이공대, #중국대학교수평가, #두다오(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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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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