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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7시 40분께, 개그맨 김제동씨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노란색 세월호 '기억 팔찌'를 왼쪽 손목에 찬 그는 특유의 유쾌함과 유머감각을 통해 앉아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웃기고 울렸다.
▲ "아이들이 곧 국가입니다" 29일 오후 7시 40분께, 개그맨 김제동씨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노란색 세월호 '기억 팔찌'를 왼쪽 손목에 찬 그는 특유의 유쾌함과 유머감각을 통해 앉아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웃기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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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제동씨(41)가 29일 오후 7시 40분께,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과 면담을 요구하며 노숙 중인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8일째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을 찾았다.

유가족 50여 명, 시민 20여 명과 함께 한 이 자리에서 김씨는 "가족들과 웃으면서 되도록 오래, 조용하게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제동의 이야기 마당'이 진행된 1시간여 동안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지난 29일 밤 진행된 '김제동의 이야기마당' 전문이다.

김제동 : 심심하시죠. 힘드시고요.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카메라 억수로 찍네요. 얼굴 억수로 크게 나올 것 같은데. 반갑습니다. 김제동입니다.(박수)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좀 그렇습니다. 매번 왔다가 못 만나 뵙고 갔는데 정식으로 만나게 됐네요. 무슨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까. 듣고 싶은 얘기도 크게 없으실 거 같고 하고 싶은 얘기도 사실 없으실 텐데. 어차피 집에 가면 혼자 있어야 하니까 얘기 좀 오래하다 갑시다(웃음).

29일 청운효자동 노숙 농성장을 찾아 유족들과 만난 개그맨 김제동씨는, 유족들을 위해 직접 만든 A4용지 반장 크기의 세월호 추모 스티커 100여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 김제동과 지인들이 만든 추모스티커 29일 청운효자동 노숙 농성장을 찾아 유족들과 만난 개그맨 김제동씨는, 유족들을 위해 직접 만든 A4용지 반장 크기의 세월호 추모 스티커 100여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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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무실 직원하고 만들어온 수제 스티커인데요. 닷새 동안 10명이서 200장 만들었습니다. 문구는 제가 만들었고요. 한 장당 20분 걸립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붙이는 과정에서 여러분 아이들 마음 느낄 수 있도록…. 오래 걸리지만 예쁘게 만들 수 있도록. 여기에 100장 드릴게요. 전체 수작업입니다.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든.

저만 혼자 이야기 하는 것보다 궁금하신 것 있으면, 혹시 개인적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제가 대답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중간에 기자 분들이 워낙 많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저쪽에서 계속 노래 소리가 들려서… 집중이 되십니까.

문구는 제가 지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 박수 안치세요?

100장은 안산에 보냈구요. 1500장은 다시 또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거는 제가 사는 동네하고 나머지 1500장 해서 총 3000장이거든요. 신청하신 분이 5000명이 넘어서 저도 할 일이 없어서 만들며 보내고 있습니다. 연애는 언제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광화문에도 200장 줘서 소일거리 주고 왔습니다. 정신 집중 정말 잘됩니다. 저거(스티커 가리키며) 만들면요.

궁금한 거나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말해주세요. 아니면 얼굴 본 것만으로 괜찮습니까. 갈까요. 웃고 즐겁게 가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없는 형편이란 거 잘 알고 있지만. 저하고 있을 때만이라도 오래오래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스티커 만드시는 분 20분 저희 사무실에만 계시구요. 마을에도 나와 계시구요. 그런 마음들이 다 전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에 이틀에 한 번씩 광화문 나가는데요. 담배 피우는 아버님들한테 담배 셔틀(배달)해드리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거는 그런 거밖에 없지만요.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식이 없기 때문에 그 슬픔을 위로해드린다는 것도 주제 넘는 이야기일수도 있고, 다만 얼마 전에 힐링 캠프에 아들을 잃으신 분이 나오셨는데, 방송에 나올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사고로 아들을 잃으신 아버님 한분이 나오셨는데요. 그분께서 "지금 아들이 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슴이 너무 아프고 아픈 가슴을 톡톡 치면 아직도 걔가 거기서 나올 거 같아"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뭐 달리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오라 그래서 왔습니다. (웃음)

세 번 불렀다가 와서 기다렸다가 예전에 세 번 뺀찌(퇴짜) 맞았습니다. 여러분 스케줄 안 된다고 그래서요.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 있습니까?

시민 : 장가는 언제 갈 거예요?

김제동 : 아 장가 언제 갈 거냐고요. 아침 7시 반쯤에 갈 생각인데요. 양가 부모님 반대하시기 전에요.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웃음)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세월호 유가족 : 특별법이요.

김제동 : 여기 기자 분들도 많이 와 계시지만 특별법과 진상규명은 사실 굉장히 명확하고 확실한 이야기죠. 사람이 죽었으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누구의 잘못에 의해, 왜 그렇게 됐는지 밝혀내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좌나 우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나 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정치적인 것도 아니고 사람의 문제거든요.

여러분들을 위한 마음과 함께 늘 마음을 맞추는 것은 우리를 위한 마음이 함께 공존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아시겠지만 적극적으로 여러분들을 지지하고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늘 마음으로 해드리는 것뿐입니다. 앞에 전면에 나설만큼 크게 인기가 있지도 않고요. 대신 뒤에서 끝까지 길게 오래 함께 가겠습니다. 저기 계신 신부님이나 목사님이나 수녀님들처럼 길게, 해결될 때까지 그렇게 가겠습니다.

우리 상가집 가보면 조문하시는 분들 여러분 계십니다. 술에 취해서 국화꽃에 불붙이는 분도 계시구요. 술에 취해서 절 한 번만하고 나오시는 분도 있어요. 두 번 해야 된다고 했더니 "친한 사람이라 괜찮습니다" 그러고 가는 분들도 있어요. 양복 입고 와서 한 20분 국밥 먹고 가시는 분도 있고. 그런데 뒤에서 술 계속 퍼먹고 오래 고스톱 치고 인간 망나니 같아 보이는 이런 분들이 아침까지 버티다가 관 들고 운구합니다. 끝까지 오래 일상 속에서 버티고 그렇게 가는 것이죠.

여러분이 오래 오래 편하게 아이들 생각하면서, 특별법 제정되는 날이 와서 기쁘게 아이들 볼 면목이 섰을 때까지. 아이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될 때까지 고스톱 치면서 술 먹으면서 함께 끝까지 가겠습니다. 그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답니다.

세월호 유가족 아버지 : 제동씨가 만난 일반인들의 말을 전해주세요. 보통 사람들이 유족들을 어떻게 보는지.

김제동 : 저한테 꽤 많이 묻습니다. 상황도 물어보시고요. 적극적으로 동참하시고요. 다만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할 일이냐", "과연 대통령이 진짜 책임이 있느냐" 그렇게 물으시면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태평양도 아니고 대서양도 아니고 내나라 내 땅에서 아이가 죽었는데 누구에게 물어야 됩니까. 미국 대통령에게 물어볼까요. 프랑스 대통령에게 물어야 할까요. 북한의 김정일에게 물어야 됩니까. 오히려 그게 종북 아닙니까.

우리 대통령께 물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특별법 제정하신다고 했으니까요. 이렇게 우리가 하는 것도 대통령께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대통령 위해서 고생 많으시다". 그래서 유가족 분들을 바라보는 시선, 냉정하게 말해서 여러 가지 시선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그런 것들 함께 싸워나갈 수 있고 공감해 나갈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이 마음 모아나가고 있으니까요. 저희도 전부 다 대변할 수 있도록 바깥에서 마이크 들고 이야기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이크는 기본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선들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어떤 말이 제일 상처가 되세요. 무슨 얘기?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 : "그만 좀 해라" 이런 말요.

김제동 : 그럼 무슨 얘기 듣고 싶으세요

어머니 : 당신도 똑같이 자식을 해 봤으면. 그러면 우리 심정을 알겠지...

김제동 : 그렇죠. 제가 자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오년 사귀고 칠년 사귄 애인하고 헤어져도 1년 죽을 정도로 힘든데. 그 수천만 배 수억만 배 아니겠습니까. 양친 부모를 잃은 사람을 이르는 단어도 있고, 남편과 부인을 잃은 사람을 이르는 단어도 있지만 자식 먼저 잃은 사람을 이르는 단어는 없습니다. 아마 그걸 말로 표현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그렇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은 제가 다 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 안다고 하면 저도 거짓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만 제가 드는 생각은요.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라서 그 새끼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소나 아빠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그냥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을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막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기억에는 새끼 소를 팔았던 우리 삼촌, 우리 동네 아저씨가 (울먹이면서) 그 다음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소죽을 더 정성껏 끓였고 영문도 몰랐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소 앞에 가서 지푸라기 들고 뭐라도 먹이려고 했어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고,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새끼 왜 우냐고 하는 이웃을 본적이 없습니다.

하다 못해 소에게도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그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요.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슬픔이 멈추는 날까지 그때까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하라는 얘기는 그것은 맞지 않다. 그것은 확신해서 드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기한은 정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 박수)

아따 이거 어렵다. 이거 뭐. 웃기지도 못하고 울기도 그렇고... 웃어도 그렇고. 그죠?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런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좀 적다 싶으면 계속 데리고 오겠습니다. (유족들 눈물 훌쩍이며 고개 끄덕임) 그만할까요?

또 뭐 하실 말씀 있으신 분 계십니까. 울기는 이제 다 울었고. 무슨 얘기 젤 듣고 싶습니까. 무슨 말 해줬으면 좋겠습니까. 예전에 그 우리, 내가 태어내서 제가 100일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그래서 제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소원이 뭐였냐면 제대로 된 썰매 타는 것이었어요. 아버지가 못 만들어주니까. 그랬는데 우리 매형이 그 첫째 누나하고 동네에서 눈이 맞아 도망갔습니다. 엄마가 너무 반대를 해서요. 사실 누가 봐도 매형이 인물이 좋은데요. 누나 다섯 명이 저하고 다 똑같이 생겼거든요.(웃음)

예전에 저희 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러 가서 벌집을 건드렸어요. 우리 누나들 보통이 넘습니다. 벌집 낫으로 매형이 딱 건드렸는데 벌 수만 마리가 날아옵니다. 두피에도 들어가고요. 옷 속, 귀 안으로 다 들어갑니다. 누나들이 자기들도 벌에 쏘이면서, 제 얼굴 감싸면서 하는 말이 "우리 제동이는 방송해야 된다 이 벌 새끼들아" 그러더라구요. (일동 웃음) 제가 얼굴로 방송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죠.

누나들이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못하고 공장 생활하면서 저 키웠습니다. 우리 엄마는 벌초하신다고 먼저 아버지 산소에 올라가 계시고요. 우리 엄마는 밑에서 벌집을 건드린 사실을 모르고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는 벌 때문에 산을 내려왔고, 소방관 분들이 오셔서는 다시 올라가지 말라고. 그래서 "저 위에 어머님이 계시다"고 그랬더니 소방관이 "우리가 올라가보겠다" 그러셨어요. 소방관들이 그럴 때 입는 옷이 커다란 갓 쓰시고 까만 망사 쓰고 까만색 옷을 입고 오십니다.

우리 어머니는 산소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아버지 산소 앞에서 한 30분 멍하니 계시다가 갑자기 누가 검은 갓을 쓰고 검은 옷 입고 오신 분이 "어머니 가시죠"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네 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동 웃음) 그렇게 재밌는 가족입니다.

우리 엄마가 큰 누나 결혼을 반대했고요. 그러다가 둘이 거제도로 도망갔는데 매형이 거기서 일하다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 처음 왔습니다. 저한테 그랬어요. 전라도 매형인데요. 우리 집이 동서 화합의 상징입니다. 전라도 매형이 "처남 철사 사와라" 그러더라고요. 그때 우리 매형이 처음 만들어준 썰매를 타고, 그때가 제 인생에서 행복했습니다. 강가를 가서 썰매를 탔을 때요. 평평한 썰매 하나 하고 무릎 꿇고 타는 썰매하고 두 개를 만들어주셨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매형이 대우조선소에서 배를 만들던 매형이었어요. 썰매 만들어주시고 2년인가 3년 뒤에 철근을 머리에 맞아서 돌아가셨어요. 배 만드시다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제가 그때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때인데 몇날 며칠을 썰매를 붙들고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요. 아마 그래서 비교가 안 되겠지만 제가 겪었던 가까운 사람을 보냈던 가장 큰 슬픔이었기 때문에 그 슬픔과 견줄 수 없는 슬픔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시다 생각하면 마음이…. 제가 무슨 특별히 대단히 잘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한 사람으로서… 그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고요.

생각 같아서는 제가 마이크 들고 온갖 쌍욕을 하고 싶을 만큼 나쁜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세상에는 그것보다 조금 더 좋은 분들이 많으시고, 저렇게 뒤에서 리본도 접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욕은 제가 대신 해드리겠습니다. 누구 좀 조져 드릴까요. 국회의원들. 아이고 인간들 그거 조질 가치도 없습니다. 국회 뚜껑(지붕) 그거 다 열어버려야 합니다. 사람들 뚜껑 그렇게 열리게 하면 자기들 뚜껑도 열어봐야죠.(박수)

어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그거 국회의원 명예훼손죄 아닙니까 하는데, 그럼 제가 대답합니다. "명예가 있어야 훼손하지" 청와대는 가까워서 안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 가까운데 좀 나오시면 좋겠는데요. 산책 삼아 나와서 손 잡고 이야기 하시면 좋을 텐데요. 그쵸? (일동 "네" 대답)

70년대 전태일 열사께서 분신하셨을 때 그 어머니께서 그 시절에도 청와대 앞에 가셨습니다. 그 시절 육영수 여사께서 직접 나와서 맞으시고, 확인은 안 됐지만 박정희 대통령도 만났다는 얘기도 있어요. 육영수 여사가 맞아주셨다는 말은 정설로 있습니다. 부모님 존경하는 분이니까 부모님들이 하셨던 좋은 일 좀 본받으셔서 좋은 전통을 이어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못 들어줄 이유 사실 뭐 있습니까. 자식 잃은 부모 이야기 못 들어줄 이유 있습니까. 사람은 얘기만 들어줘도 풀리잖아요. 교회나 절에 가보세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왜 위대하신가요.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그렇잖아요. 맨날 108배 하고 3000배 해도 부처님 아무 말씀 안 하시잖아요. 그래도 나와서 '후련하다' 하잖아요.

충고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아섭니다. 들어만 주시는 거니까. 내 또 이렇게 만약에 이렇게 돼서 나오면 내만 또 큰일납니다. 우리도 욕 엄청 먹습니다.

"김제동 '국회의원 뚜껑 다 열어야'" 뭐 이렇게 기사 나오면 억수로 댓글 달립니다. 욕 엄청 먹습니다. 힐링캠프 할 때도요, 저는 어쩔 수 없이 게스트의 얘기를 주로 듣습니다. 그러면 저는 화면에서 안 나옵니다. 그러면 댓글이 달립니다. "야 김제동 돈을 받았으면 말을 해라." 그런데 말을 해도 안 나옵니다. 제가 여러분 마음을 잘 대변할 수 있도록 마이크 들고 있는 사회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 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댓글은 여러분들이 좀 달아주세요. 실물이 낫더라고. 저 실물이 낫죠.

(도보 행진 후, 유가족 농성장 지지 방문했던 연세대 학생들이 집에 간다며 인사하러 나옴)

29일 오후 7시 40분께, 개그맨 김제동씨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부모들의 눈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던 김씨는 끝내 울먹거렸다. 그는 "조용히 뒤에서 함께 하면서 끝까지 가겠다"고 약속했다.
▲ 세월호 유족들 만나 함께 웃은 김제동 29일 오후 7시 40분께, 개그맨 김제동씨가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부모들의 눈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던 김씨는 끝내 울먹거렸다. 그는 "조용히 뒤에서 함께 하면서 끝까지 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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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 학생 맞아요? 웃자고 한 농담이 아닙니다. 박수 한번 쳐주세요.(박수)

연세대 학생 : 저희 계속 있고 싶은데, 경찰이 허가 받지 않고 왔으니 나가라고 합니다. 안 나가면 방해하는 거라고 해서 광화문 쪽으로 나가겠습니다. 오늘 이후로도 저희 학생들이 매일 같이 힘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지만 지치지 않는 것이 저희 장점이니까, 연세대 학생들도 지지하고 있다는 것 알아주세요.(박수)

유경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 : 한 마디 자랑하자면 제 후배입니다. 저한테도 박수 주세요. 그리고 학생, 나가라고 한 그 사람 관등성명 적어주고 가세요. 제가 이따가 따끔히 혼내줄 테니까.

김제동 : 훌륭합니다. 좋겠다. 좋겠어. 20대 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할까요. 한 마디로 해도 돼요. '좋겠다 이 새끼들아'. 가끔 힘들고 그래도 20대들은 참 좋죠. 학생들에게는 늘 그렇게 얘기합니다. 좋겠다 이 새끼들아. 저 쪽에서도 연애하는 애들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아깝잖아요. 애들 잘 키워놨으면 저렇게 연애하고 그랬을 텐데…. 그런 얘기도 하잖아요. 놀러가다 죽었는데 뭘 그렇게 진상규명 하냐고 그래요. 그러면 저는 "애들이 국가다 개새끼야" 이렇게 말합니다.

얘들이 크면 군인도 되고 학자도 되고 정치인도 되고 노동자도 되고 경찰도 될거고, 애들이 커서 국가가 될건데 그랬던 애들을 잊어버렸는데… 애들 없는 국가가 있냐 개새끼들아. 여기 애들 없는 국가가 어딨습니까. 그래서 우리 애들이 나라고 국가지…. 그렇잖아요. 국가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정말로 큰 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 자부심 느끼셔도 좋습니다.

어른들 계시는데 욕해서 큰일 났네요. 제가 욕은 진짜 이 세상에서 제일 찰지게 잘할 수 있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욕하고 술은 정말 잘했습니다.

사실 놀러가는 애들 지키는 게 국가가 할 일 아닙니까. (사람들 "옳소" 박수) 클럽에서 술 먹고 노는 대학생들 안전하게 놀 수 있게 낮에 다시 자기 꿈 펼칠 수 있게…. 마음껏 자기 청춘 지키게 하라고 국가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일제 강점기 때 조선시대 때 나라를 되찾고, 6·25 통해서 나라 지켜낸 이유가 하나 아닙니까. 애들 지키고, 애들 연애하고 결혼도 하고 국가의 영속성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애들이 국가지.

앞으로 그런 얘기 하는 사람 있으면 제게 데리고 오세요. 손발 하나 안 쓰고 마이크만으로 조질 수 있습니다. 국가 유공자들 마땅히 대우 받아야죠. 어떤 국회의원이 말합니다. 고엽제 전우회, 해병 전우회 그런 분들 6·25 때 희생 되신분들, 항일운동 희생된 사람들 그 사람도 대우 못해줬고 진상규명도 제대로 못 했다구요. 여러분들 대우 요구한 적 없으니까. 그런 요구를 하신적도 없지만,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이라면 이렇게 말해야죠. "앞으로 국가유공자 진상규명 더 잘하고 이 아이들 진상규명도 잘하겠다" 그래야죠.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지. 내가 큰 맘 먹고 대변인 하면 정말 잘할텐데. (뒤에 유경근 대변인 보며) 아, 대변인이 여기 계십니까. 제가 1:1 수업 좀 시켜놓도록 하겠습니다(웃음). 그래도 대변인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잘 아는 분이니까 최고의 대변인이고, 전 말로 하는 기술꾼이고. 아시잖아요.

자, 뭐 처음에 조금 서먹서먹하고 그러니까 담배 하나 피고 와서 또 할까요. 혹시 이런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거 있습니까?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 : '놀러갔다 죽은 애들'이라고 하는데 학습 간 거잖아요.

김제동 : 맞습니다. 수학여행은 놀러가는 게 아니라 학습의 연장입니다. 그 아이들 지켰어야죠. 우리나라에 뭐가 있냐. 자원이 있냐. 석유가 나오냐. 뭐 그렇다고 천연자원이 풍부하냐.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인재라고 늘 말하는 게 국가 아닙니까. 그럼요. 그런 애들 놓쳤으면 누가 놓쳤는지 이야기 해줄 수 있어야죠. 사고 맞습니다. 배가 침몰한 건 교통사고 맞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래야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고요. (유가족 어머니 뒤에서 훌쩍이며 조용히 손수건으로 눈물 닦음) 웃긴 얘기도 하고 뭐 이런 얘기도 하고 그럽시다.

시민 : 어버이연합분들에게 시원하게 얘기 좀 해주세요.

김제동 : 어른들이라서… 제가 찬찬히 한번 모시고 막걸리 마시면서 얘기하겠습니다.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요. 왜 이러세요. 무슨 일이세요. 누구한테 어떤 얘기를 들으셨어요. 설마 에이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어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어버이신데요. 제가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시민 : 답을 언제 줄거에요?

김제동 : 저 보고 어버이연합 만나보라고요. 안 그래도 작년에 저희 사무실 와서 시위를 하셨어요. 사실 어버이연합에 대해서 크게 진짜 분하고 억울하시겠지만, 조금만 둘러서 보면 어디서 많이 진짜 계속 얘기를 들은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알려줘야 되죠. 설마 진짜 사람들이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제가 찬찬히 들어 볼게요.

얘기를 들어볼게요.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자) 저 사람 얘기도 들어보고… 왜 저렇게 오토바이 소리를 크게 하고 다닐까요. 지 귀에 안 들리니까 그러는 거예요. 몰라서 그런 거예요. 예수님 십자가에 묶여 계실 때 칼로 찌르는 병사들 있었죠.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인데 얼마나 힘이 좋겠어요. 천둥으로 걔 머리통 내리 찍고 하면 되잖아요. 근데 그러셨어요. '놔둬라 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가서 얘기 해봅시다. 우리 엄마도 비슷하거든요. 누나 다섯 명 있는데 다 성향들이 다릅니다. 명절날 다 얘기를 하는데도 잘 안 돼요.

요즘은 많이 바뀌셨는데요. 어머니가 이명박 장로님, 대통령님 부르시다가, 이름만 부르시다가, 그 다음에 이름 뒤에 다른 것도 붙이셨어요. 그래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거 보면서 아들 영향이 있겠죠 아마. 네 그렇습니다. 찬찬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분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앞으로 길게 봤을 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봐주세요.

작년에 우리 사무실 앞에서 시위할 때도 무서웠단 말이에요. 종북 빨갱이 김재동 물러가라. 이름을 잘못 쓰셨더라고요. 실제로 그분들 몇 분들 만나봤어요. 제가 누구 때문에 오셨어요? 그랬더니 어버이연합 분이 "김제동인가" 제가 "그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 그랬더니 "아니 난 잘 몰라" 그러시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어요. 이게 미워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미워만 하면 오래 못 가니까. 아이고 저 인간들도 우리 사정을 다 알면 저러지 않을 텐데요. 둘 중에 하나죠. 공감이 안 되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최악의 경우는 둘 다 일 수 있습니다.

다 됐습니까. 더 하실 얘기 없으시죠. 연예인 얘기하는데 저 뒤에서 리본만 보고….(웃음) 작업 속도가 좀 더뎌진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저것도 하면 중독됩니다. 스티커 아까 만든 것 있죠. 계속 하다 보니까 중독되더라니까.

여자 조카나 이런 분들 많이 안 오셨습니까. 하하 말귀 잘 못알아들으시네요. 뭐 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니면 담배나 한 대 피우고요. (유경근 대변인 바라보며) 대변인님 자꾸 왔다 갔다 하지 마시고 그냥 앉으세요 좀. (뒤돌아보지 않고) 분명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을 겁니다. 아마 또 다시 금방 살짝 모았거나 다 못 모았죠. 살이 쪄서요.(웃음) 좀  웃으셨습니까? 속도 좀 풀리시고요. 덕분에 전 내일부터 욕을 작살나게 먹을 겁니다. 김제동 이 좌빨 새끼야, 니가 그럴 줄 알았다. 뭐 난리날 겁니다. 뭐 그래도 뭐. 제 눈 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웃으면 됐죠.

욕먹을 때 대처 방법 알려드릴까요. 사실이 아닌데 욕먹으면 제일 억울하잖아요.

제일 고수는, 이게 실화인데요. 윤도현 밴드 안티가 있었어요. 빨간색 글씨로 'YB fuck you' 이렇게 쓴 걸 들고 콘서트 하는데 앞에서 흔들더래요. 도현이 형이 이 사람 때문에 노래를 못했어요. 저 새끼를 나가서 잡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근데 우리 YB에서 베이스 기타 치는 형이 웃으면서 베이스를 치면서 그 사람 앞으로 가서 막 하트를 그리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저 사람 진짜 성인이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막 하트를 치고 그러니까 그걸 들고 있던 사람이 미안해하면서 슬슬 내렸어요. 그 사람이 지금은 가장 오래된 팬이 됐어요.

제가, 형, 저 형은 정말 성인이다. 그러면서 도현이 형한테 물었어요. 그랬더니 도현이 형이 하는 말이 "저 형이 영어를 몰라" 그러는 거에요. 그 형이 영어를 몰라요. YB 로고만 보고 펜인지 알고 막 한 거예요.(일동 웃음)

예전에 부처님께서 그러셨다잖아요. 걸식을 할 때 일곱 집을 다니는데 왕자 출신이니까 잘생겼잖아요. 곱슬머리에요. 걸식을 하는데 음식을 주지는 않고 어떤 분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대요. 음식은 안 주면서 사지육신 멀쩡한 새끼가 너같이 세상에 쓸모없는 새끼야. 시간 될 때까지 거기 있어야 되니까 부처님이 못 얻어 드시면 그날은 굶으시는 거에요. 정말 폭 넓은 지식을 가진 사회자 아닙니까.(웃음) 욕을 그렇게 들어먹으시고 부처님이 웃으셨어요. 욕하던 사람이 부처님 뒤통수를 잡았어요. 너는 이렇게 욕을 먹고도 웃을 수가 있냐. 부처님이 이렇게 말하셨어요. "욕을 주셨는데 제가 안 받았어요"라고. 그럼 그 욕 누구 겁니까. 그 사람 겁니다. 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해서 제자가 됐습니다.

욕을 들으면 '영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너무 힘드실 때 그렇게 하시고 분노를 표출하실 때는 마음껏 분노도 표출하시고요. 'YB fuck you' 적어놨는데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슬쩍 웃으실 때는 그렇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잘 안 됩니다. 욕할 땐 욕해야죠. 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시면 좋겠어요.

예~ 자. 길게 얘기하고 그러면 피곤하시죠. 이렇게 말하면 보통 아니에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세요 하는데… 다들 알았어요 됐어요. 나도 됐고, 알았어요. 참내 어이가 없어서.(웃음) 어처구니가 없네. 이보세요 토크 콘서트 7만7000원씩 받고 해요.

시민들 ; 내일 또 오세요.

김제동 : 이 사람들이 내일 또 오라고요? 방송 완전히 끝나는 꼴 보고 싶으세요.(웃음) 제가 늘 새벽에 두 시쯤 돼서 이 근처 거닐고 있어요. 저번에 광화문 저기 갔더니 수녀님들이 팔십 분이 갑자기 제 주위를 둘러싸시면서 너무 좋아한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그랬더니 그 근처에 있던 신부님들이 이렇게 신부님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없다. 장동건 조인성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못 봤다, 그러시더라고요. 깊은 슬픔과 기쁨을 느꼈죠. 왜 이렇게 세상을 버려야만 내가 보일까.(웃음)

내년에 영국 유학갑니다. 4개월 동안요. 수틀리면 4일이 될 수도 있고요. 예, 그래서 여러분들 올 때 누가 얘기하러 온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죠. 얘기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좀 그렇고요. 저도 막 그렇게 왔다가 여러분들도 그랬다가 좀 친해지고 그러는 거죠. 오늘 돈 안 받았습니다. 여러분들 반드시 갚아야 됩니다.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갚으셔야 돼요.

시민 : 축의금 낼게요.

김제동 : 축의금을 낸다고요? 아니 이거 지금 낼 일이 없을 거라고 너무 편하게 얘기하시는 거 같은데.(웃음)

시민 : 애기 돌 되면 축하금 낼게요.

김제동 : 애기를 나면 돌 축하금 낸다고요. 그게 결혼보다 더 가능성 없다고 막 던지시는 거 아닙니까. (웃음) 살면서 제 기사에 나쁜 댓글 달리면 실명 밝히고 댓글 남기세요. 눈이 안 작더라. 실물이 낫더라. 웃을 일 있으면 웃어야죠. 자, 여러분들하고 재밌게 잘 웃고 잘 울고 그랬습니다. 제가 앞에 나서고 그런 건 숫기가 없어서요. 마이크 없으면 억수로 조용하거든요.

사진 찍는 거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합니다. "사진 찍자" 이런 얘기 하지마세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연예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진 찍는 시간에 만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인 이런 것도 안해요. 그럴 시간에 손잡고 얘기나 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갈게요. 이제 아는 신부님이 오라고 하셔서요. 신부님들이 자꾸 스카웃 제의를 합니다. 신부님하고 수녀님들하고요. 마이크 들고 얘기하는 것도 비슷하고 혼자 사는 것도 비슷하다고요.(웃음)

조금이나마 여러분들이 웃을 수 있었으면 저는 됐고요. 심각한 얘기 이런 얘기 앞으로 또 나눌 기회가 있더라도, 여러분 뒤에 마음으로 응원하는 분이 많이 있다는 것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억울한 날들이 계속 돼서 여러분들만큼 분하고 억울하지 않은 저를 탓하거나 원망할 때도 많습니다.

당사자 마음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함께 분해하고 억울해하고 그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별법이 제정됐으면 좋겠고 대통령님께서도 국회의원님께서도 결단을 내려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썩 마음이 내키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님들 위해서 대통령님들 위해서 본인들 하신 말씀 기억해 내기 위해서 박수 한 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다같이 박수)

정말로 진심으로 이 박수소리 들으면 사람이면 분명히 응답이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정말 재밌게 놀고 갑니다. 내가 결혼식 할 때 다들 연락 드릴 테니까요. 흔쾌히 대답하고 있죠. 네네. 알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너무 많이 들어서 저도 그런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힘이 드실 때는 비축하시고, 너무 힘드실 땐 힘내지 마세요. 우리 힘 빠질 땐 여러분들이 가고, 여러분들 힘 빠졌으면 저희가 가고, 그렇게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투쟁과 증오는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고는 잊되 아이들의 꿈은 잊지 않도록 하자고요.

개그맨 김제동씨가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 약 한 시간 정도 대화하는 동안, 농성장 뒤에서는 시민 5~6명이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채 노란색 추모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 추모 리본 만드는 시민들의 모습 개그맨 김제동씨가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 약 한 시간 정도 대화하는 동안, 농성장 뒤에서는 시민 5~6명이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채 노란색 추모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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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대변인 :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족들이 느낄 게 많을 텐데요. 왜 예전에 우리 태안 해병대 사고 듣고 안타까웠고 슬펐죠. 그 전에 우리 아이들이 바로 다녀왔었잖아요. 안타까워 하다가 그래도 얼마 안 있어 넘어갔죠.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 뒤로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었죠. 그래서 그냥 슬퍼하고 안타까운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국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 응원만으론 안 되고 행동을 해주셔야 된다.

김제동씨에게 행동을 해달라는 말씀을 드리면 너무 부담스러우시겠죠. 그런데 김제동씨는 이 영향력으로 많은 분들이 행동할 수 있게 선동하시는 역할을….(웃음) 앞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세요. 저는 어떻게 빚 갚을지 알아요. 끝까지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안전한 나라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어서 김제동씨가 평생 혼자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는 것, 그것으로 빚 갚도록 하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저희들 지켜봐 주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일동 박수)


태그:#김제동 세월호, #세월호 유가족, #유가족 노숙농성,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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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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