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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서 열린 세월호 이야기 마당

세월호 이야기 마당 안내판
 세월호 이야기 마당 안내판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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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목) 오후 7시 반,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그쳤을 무렵, 부천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문화카페 <공감>에서 이야기 마당이 열렸다. '부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개소식으로 세월호 시화 전시회를 열면서 세월호 희생자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를 모시고 세월호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이승현 군의 아버지는 JTBC 뉴스9의 세월호 실종자 가족 인터뷰에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이호진씨는 그 인터뷰에서 실종자 구조 현장이 언론에 보도된 것과 전혀 다르고, 방송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종자를 모두 찾기 전까지 배의 인양을 반대한다고, 혹시라도 아들을 찾지 못할까 두렵다고 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나도 눈물 흘리며 지켜보았었다. 그후 그 아버지는 또 한 분의 아버지와 함께 십자가를 들고 순례길에 나섰다고 했다. 얼마 전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에는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았고, 순례에 함께 한 십자가를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월호 시화전 전시 작품
 세월호 시화전 전시 작품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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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시화전 전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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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시화전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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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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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시작되기 30분 전인 7시 <공감> 앞에서, 벌써 도착한 승현 군의 아버지를 만났다. 아주 크지는 않은 키에, 햇볕에 그을린 듯 검어 보이는 얼굴, 흰색 반팔 화이트 셔츠에 짙은색 양복바지를 입은 승현군의 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으로 문화카페 입구에 세워 놓은 행사 안내 글을 읽고 있었다.

유민아빠 영상
 유민아빠 영상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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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아빠의 영상을 보고 눈물짓는 이승현군의 아버지
 유민아빠의 영상을 보고 눈물짓는 이승현군의 아버지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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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에 기소권과 수사권이 필요한 이유

이야기를 시작한 승현 군의 아버지는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고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승현 군을 다시 만난 날의 이야기도 담담하게 했다. 세월호 이야기는 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야 하기에 괴롭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살리지 못하고 몰살시킨 것은 곳곳이 썩은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 때문이라고도 했다. 진도VTS 해경,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 구조에 나선 해경 등등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정신을 차렸다면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약 1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의 이야기 모임에서 승현 군의 아버지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빵과 정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앞의 빵 한 조각을 선택하고 싶겠지만, 정의가 바로서지 않으면 그 빵 한 조각의 이익이 아무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정의가 바로서면 지금 빵 한 조각의 손해가 미래의 빵 100 조각의 이익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정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이야기 마당에서 이야기하는 이승현 군의 아버지
 세월호 이야기 마당에서 이야기하는 이승현 군의 아버지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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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세월호 특별법에 기소권과 수사권이 들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족들이 제시한 세월호 특별법안에 기소권과 수사권이 들어가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화 이후 검찰 수사로 충분하지 않다며 특별 검사제도가 생겼을 때가 기억난다. 뭔가 변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기껏 특검이 조사를 해도 조사가 끝나면 다시 검찰로 넘어가고, 검찰은 특검과 다른 결론을 내리고, 사건은 흐지부지 시간만 보내다 종결되었다. 이런 꼴을 보았던 것이 일반 시민인 내 기억에도 여러 번 있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헌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선례가 될 수 있기에 안 된다고. 하지만, 검찰 수사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성과가 나왔었다면 특검이건, 특별법이건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고, 피해자만 억울하고 불쌍하게 끝나는 일이 많았기에 공권력은 불신을 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런 요구까지 나오게 된 건 아니었을까?

세월호을 잊지 말아달라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세월호 이야기 후 30분 정도 질문과 대답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인 이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세월호 유족들이 돈이나 특혜 등을 요구한다며 인터넷에 퍼지는 루머에 대해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승현 군의 아버지는 그런 요구를 한 적도, 그런 얘기를 할 정신도 경황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세월호 유족들이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씩은 달라고 한다는 더 황당한 소문도 나돌지 모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승현 군의 아버지는 꼭 하나 부탁한다며 이런 당부를 했다. 국민들이 하루에 1분만이라도 세월호를 기억해 달라고. 세월호를 잊는 순간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은 육지에서건 공중에서건 다시 터질 수 있고, 그러면 국가와 언론은 또다시 똑같은 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그래서 세월호 사건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승현 군의 아버지는 세월호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이야기 마당에 온 사람들은 예순 명 남짓이었다.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한 기억을 끄집어 내가며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곳에서도 또 다른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또다시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대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승현 군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이 내 새끼의 장례를 먼저 치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잔인한 일을 겪은 유가족들의 바람은 과연 무엇일까? 열 달을 품어 낳았지만, 먼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 비극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완전히 달라져서,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안전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가슴에 묻은 내 새끼의 죽음이 결코 억울하고 헛된 일로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 말미에 승현 군의 아버지는 JTBC 뉴스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다른 종편들과 시청률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이제는 최고 시청률 10%도 나오는 뉴스가 되었고, 이것은 손석희 사장이라는 한 사람의 힘이라고. 그렇지만 아무리 똑똑한 손석희 사장이라도 여기 모인 예순 명의 사람을 당해내지는 못한다고.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소중하다고.

대한민국이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가 완전히 달라지도록 변할 수 있을까? 만약 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행동과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반대로 매한가지라면 그 역시 불안한 대한민국에서 살겠다는 국민의 선택일 것이다. 과연 우리 국민은 어떤 선택지를 집어들까?


태그:#세월호, #이호진, #부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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