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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의 외래에 젊은 여자 분이 진료를 신청하였다. 27세 미혼인 그녀는 한 대학병원에서 지난 봄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하였다. 당시 갑상선에 8밀리 크기의 작은 유두암이 있는 상태였는데 담당의사로부터 반절제만 할 것인데 혹시 수술하다 모두 제거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수술 후 깨어나 보니 갑상선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고 수술 후유증으로 교감신경이 마비되어 눈동자가 작아지고 눈이 작아지며 얼굴에 땀이 나지 않게 되었다. 환자는 자신의 갑상선이 모두 없어졌다는 사실에 너무도 놀랐으나 의사는 수술해 보니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것 같아서 모두 제거해야 했다고 했다.

이제 이 여성은 평생 갑상선 호르몬을 먹어야만 하고 수술 후유증으로 평생 짝눈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그녀가 원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수술 도중에라도 보호자에게 수술 방법이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런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었다.

그녀가 만일 '지켜보는 방법도 있고 꼭 수술해야 한다면 부분절제나 전절제술이 있다'며 그 장단점에 대해 설명을 들었더라면,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서 수술 방법을 미리 택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 수술을 받지 않았거나 작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을 수도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갑상선암 진료 가이드라인의 위험성

이 여성은 수술 후 깨어나 보니 갑상선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고 수술 후유증으로 교감신경이 마비되어 눈동자가 작아지고 눈이 작아지며 얼굴에 땀이 나지 않게 되었다.
 이 여성은 수술 후 깨어나 보니 갑상선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고 수술 후유증으로 교감신경이 마비되어 눈동자가 작아지고 눈이 작아지며 얼굴에 땀이 나지 않게 되었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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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미국갑상선학회에서 제정한 갑상선암 진료 가이드라인은 1cm 이상의 암에서는 갑상선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 것은 물론 그 이하의 작은 암이라도 몇 가지 조건을 갖추면 모두 제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가족력이 있거나, 어려서 방사선을 쪼인 적이 있거나, 반대측에 혹이 있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을 때는 모두 제거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조항은 그 근거가 미약하기 짝이 없는 것인 데다가 개개 환자의 상황에서 적용하기에는 자세한 설명이 부족한 권고안이다.

문제는 이 조항을 진료지침으로 오해하고 있는 의사들이 환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더구나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상선과 갑상샘
 갑상선과 갑상샘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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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첫째, 가족력이 있다고 해도 유전적 성향이 있다는 증거가 없는 데다가 전이율이나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가족력이 있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가족 내 암이 있는 경우 나머지 가족들도 열심히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하다 보니 갑상선암을 많이 찾아내는 것일 뿐, 그렇다고 갑상선을 모두 제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언니가 갑상선암 환자였다고 8미리 유두암을 가진 18세 동생의 갑상선을 모두 떼어내는 것이 올바른 치료일까?

둘째, '어려서 방사선을 쪼인 적이 있는 경우'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쳐 방사선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아이들의 편도선염이나 중이염에 방사선을 쪼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갑상선암이나 침샘 종양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조항이 들어 있을 뿐이다.

셋째로 반대측에 결절(혹)이 있어도 대부분 암이 아닌데도 이런 조항을 만들어 놓으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이런 결절 중 암일 가능성은 5% 이하인데도 그 때문에 갑상선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권고가 과연 옳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림프절 전이가 있다면 정말 모두 제거해야 할까? 물론 작은 암이라도 현미경으로나 보일 정도의 미세한 전이가 갑상선 근처의 림프절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전이는 수술시에 림프절 청소로 쉽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부분 절제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단순히 림프절 전이가 있을 때는 전절제를 해야 한다고 적어 놓으면 경험이 적은 의사들(대부분이 그런 의사들이다)은 그 조항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위 환자의 경우에서처럼 갑상선을 모두 절제하게 되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진료지침' 아닌 '권고사항'

또한 가이드라인은 갑상선암의 경우 최소한의 수술로 반드시 한쪽 갑상선과 가운데 부분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도 동위원소 치료를 전제로 하는 권고안일 뿐 미세암의 경우 초음파상 다른 부위에 이상이 없다면 굳이 전체를 다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지켜야하는 것은 아니다.

가이드라인은 권고사항이지 진료지침이 아니다. 언젠가 변경될 수도 있고 그 의미 또한 꼭 그래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미국식 진료 가이드 라인을 따르는 것이 좋은 진료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나쁜 진료인 것은 아니다.

갑상선암처럼 예후가 좋고 천천히 자라는 암에서 환자에게 여러 치료법에 대해 올바른 설명을 해주지 않고, 개개 환자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환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신의 치료법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치료(malpractice)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덧붙여 가이드라인은 언젠가 변경될 수 있다. 만일 내일이라도 가이드 라인이 변경된다면 그동안 그것만 믿고 진료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용식 기자는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갑상선암, #가이드라인,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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