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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 뒤 파면당한 서울 성북구 동구마케팅고 안종훈 교사.
 공익제보 뒤 파면당한 서울 성북구 동구마케팅고 안종훈 교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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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울지 않으려고요…."

19일 오후 동구마케팅고등학교 안종훈(42) 교사가 학교 정문 앞에 섰다. 그는 지난 16년 간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청춘을 바친 곳이다. 그는 개학을 이틀 앞둔 18일 파면 통지서를 받았다. 안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3학년 7반 학생들은 그가 학교에서 쫓겨난 사실을 아직 모른다.

안종훈 교사는 "진학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인데, 졸업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는 20일 학교에서 학생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려 하지만, 학교가 그를 교내에 들여보낼지 알 수 없다. 안 교사는 학생들에게 띄울 작별인사를 쓰고 있다. "계속 썼다, 지웠다 한다…"고 말을 흐렸다.

동구마케팅고를 운영하는 재단인 동구학원이 안 교사를 파면한 이유는 '안 교사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학생교육과 학생업무 등에 불성실했다'는 것이다. 학생 등교지도 불이행 등 7가지 항목이다. 동구학원은 단 7일 만에 두 차례 징계위원회를 열어 안 교사의 파면을 결정했다. 속전속결이었다. 안 교사는 "봉건왕조도 아니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한 가정의 생계를 박탈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동구학원은 징계 이유에서 왜 2012년을 적시했을까. 그해 9월 서울시교육청은 동구학원에 대한 특별감사에 나섰다. 뇌물을 받고 학교 공금을 빼돌리는 비리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은 이아무개 행정실장이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동구학원은 행정실장을 퇴직시키지 않았고, 서울시교육청은 조웅 이사장의 임원 승인을 취소했다.

이 모든 것은 안종훈 교사의 공익제보에서 비롯됐다. 학교는 공익제보자 색출에 나섰고, 결국 안 교사의 이름을 공개했다. 그는 당시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학교는 지난 6월 성과급 지급 대상자에서 안 교사의 이름을 뺐고, 8월부터 징계절차에 밟았다. 안 교사에 대한 징계는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 징계였던 셈이다.

안 교사 파면은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공익제보자 보호와 사학 비리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조희연 교육감은 19일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에 동구마케팅고가 안 교사에게 내린 징계에 대해 특별감사를 지시했다. 안 교사가 속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단체들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안 교사는 파면의 본질이 사학 비리와 공익제보자 탄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모든 권한은 사학 이사장이 누리고 있다"면서 "저에 대한 파면이 취소되지 않으면, 사학은 '비리를 저지르고 공익제보자를 잘라도 버티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렸지만, 시도교육감이 사학을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사학 비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사학을 견제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저는 파면 탓에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제가 한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익제보, 내부고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도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 교사 인터뷰는 19일 오후 동구마케팅고 인근 카페와 학교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기자와 안 교사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아이들의 졸업을 지켜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에게 띄울 작별인사를 쓰고 있는데, 계속 썼다 지웠다 한다."
 "아이들에게 띄울 작별인사를 쓰고 있는데, 계속 썼다 지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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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파면 통지서를 받았다. 동구학원으로부터 징계 소식을 들은 것은 언제였나?
"지난 4일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중 동구학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8일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징계 사유는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으로 받았다. 제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학생교육과 학교업무 등에 불성실했다는 이유였다. 학생 등교지도 불이행 등 7가지 항목을 적시했다. 어처구니없는 징계 사유였다."

- 징계위원회에 참석했나.
"참석하지 않았다. 동구학원은 11일 2차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했다. 연기원을 제출하면서 징계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답이 왔다. 14일 징계위원회에 참석해 소명했다. 그 뒤 징계위원들은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하지 않은 채, '나가라'고 했다. 징계위원 기피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동구학원은 14일 징계위원회에서 파면 결정을 내렸다.
"18일 우편으로 징계 결과를 받았다. 너무나도 비민주적인 결정이었다. 봉건왕조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한 가정의 생계를 박탈할 수 있나. 16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한 학교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쫓겨난다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허탈했다. 그래도 학교로 반드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담담하게 먹을 수 있었다."

- 20일로 예정된 2학기 개학을 이틀 앞두고 파면 통보를 받았다.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으로 끝까지 남고 싶었다. 아이들의 졸업을 지켜보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취업을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미안하다. 20일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갑작스럽게 쫓겨난다는 이유를 하면,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띄울 작별인사를 쓰고 있는데, 계속 썼다 지웠다 한다…."

공익제보의 결과는 파면

- 동구학원이 파면을 결정한 근본적인 이유는 안 교사가 동구마케팅고의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알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동구마케팅고 이아무개 행정실장은 2010년 9월 업무상 횡령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학교 시설 공사업자로부터 19회에 걸쳐 5400만 원의 금품을 받고, 교비를 포함해 공금 2700만 원을 빼돌렸다. 이 행정실장은 2011년 11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학교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행정실장이 돈 문제로 구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2년 4월 서울시교육청에 학교가 행정실장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묻는 민원을 넣었다."

- 당시의 민원은 동구마케팅고 감사로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저보고 제보의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더라. 교육청에 대한 불신이 컸다.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사후매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라, 교육청에는 곽 교육감의 영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 현재 서울시감사관인 송병춘 당시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의 감사 의지가 컸고,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2012년 9월 동구학원에 대한 특별감사에 돌입했다. 실형을 받은 행정실장의 당연퇴직을 이행하지 않은 점 등 17건의 비위사실이 적발됐고, 12명에 대한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 동구학원은 교육청 감사가 시작되자, 누가 민원을 넣었는지 색출에 나섰다.
"동구학원은 제 민원으로 교육청의 특별감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구학원은 민원인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겠다면서 학교구성원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 당시 저와 함께 5명의 동료교사가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결국 동구학원은 지난해 3월 제가 민원인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학교구성원로부터 학교를 분란에 빠뜨렸다는 질타를 받았다."

- 하지만 오히려 조웅 동구학원 이사장의 임원 승인이 취소됐다.
"조웅 이사장은 행정실장을 퇴직시켜야 했지만, 감봉 3개월의 솜방망이 처벌만 했다. 교육청은 행정실장 급여 지급을 중단하고 그의 퇴직을 요구했지만, 조웅 이사장은 무시했다. 조 이사장은 오히려 정관에서 당연퇴직 조항을 삭제하기도 했다. 결국 사학과 관계가 깊은 문용린 교육감은 2013년 6월 조웅 이사장의 임원 승인을 취소했다. 조 이사장이 소송을 냈지만, 2014년 1월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시교육청 손을 들어줬다."

- 8월 갑작스럽게 징계가 내려진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는 이미 지난 6월 저만 성과급 지급 대상자에서 뺐다. 교사에 대한 차등성과급을 균등 분배로 무력화하는 운동을 한 바 이다. 동구학원은 이를 트집 잡아 제가 성과급을 부당 수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떠한 근거로 내놓지 않았다. 그때부터 징계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공익 제보, 내부 고발에 대한 인식 바뀌는 계기 되길"

"우리 사회가 사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법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파면은 개인적으로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제가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법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파면은 개인적으로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제가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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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9일 감사관실에 동구마케팅고가 안 교사에게 내린 징계에 대해 특별감사를 지시했다. 앞서 18일에는 블로그에 "특별감사를 통해 이 사학 재단의 행위가 정당한지 가려보려고 한다"고 했다.
"조희연 교육감이 징계 과정에서 동구마케팅고에 신중하게 징계를 결정하라고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 교육감은 저에 대한 징계를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징계라고 인식하고 있다. 조 교육감은 6·4 지방선거에서 공익제보자 보호와 사학비리 척결을 공약을 내걸었다. 제 파면은 조 교육감의 두 공약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조 교육감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 결국 동구마케팅고는 조 교육감의 말을 무시하고 막무가내 징계를 내린 셈인데.
"동구학원은 '교육청이 사학에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교육청의 시정 요구에도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조웅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나도, 학교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겠나. 학교 구성원을 향해 공익제보를 하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효과도 감안했을 것이다."

- 사학 비리 문제가 다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리를 지지른 행정실장이 버젓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사학 비리가 어디까지 진화하는 보여줬다. 사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모든 권한은 사학 이사장이 누리고 있다. 건어물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제 파면이 취소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학은 비리를 저질러도 동구마케팅고처럼 버티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 사학을 견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지 않을까.
"진보교육감 시대를 맞이했지만, 시도교육청이 사학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사학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와 법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가 사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법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파면은 개인적으로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제가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공익제보자 탄압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제 파면의 본질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다. 앞으로 누가 내부 문제에 대해 공익제보를 하겠나. 윤 일병 사망사고나 세월호 침몰 사고 역시 누군가 미리 목소리를 냈다면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미리 목소리를 냈더라도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공익제보, 내부고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태그:#동구마케팅고 안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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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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