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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시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항의 행동을 펼치고 있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 2007년 7월부터 시작한 원정 금요시위가 만 5년을 맞았다.
 도쿄 시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항의 행동을 펼치고 있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 2007년 7월부터 시작한 원정 금요시위가 만 5년을 맞았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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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정권 들어선 뒤 역사왜곡, 독도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외면 등 한일 관계가 더욱 파열음을 빚고 있는 가운데 "너희가 일본 사람들이냐, 한국 사람들이냐? 한국이 좋으면 한국에 가서 살아라"라는 조롱까지 들어가면서도 결코 양심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한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 주인공은 15년째 일제 말기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아래 '나고야 소송 지원회').

'나고야 소송 지원회'가 미쓰비시중공업의 자발적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360km의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도쿄 시내와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개최하고 있는 금요행동(원정 금요시위)이 어느덧 만 5년을 맞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 지원하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가르쳐 준다"는 일본인 담임선생의 말에 속아 불과 13~15세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군수공장으로 동원된 소녀들이 일본인 인솔자에 이끌려 신사참배에 나선 모습. 1944년 6월경.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가르쳐 준다"는 일본인 담임선생의 말에 속아 불과 13~15세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군수공장으로 동원된 소녀들이 일본인 인솔자에 이끌려 신사참배에 나선 모습. 1944년 6월경.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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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소송지원회'가 금요행동을 시작한 것은 7년 전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을 주도한 이 단체는 1심에 이어 2007년 5월 31일 나고야 고등재판소로부터 또 다시 기각 판결을 당하자 2007년 7월 20일부터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도쿄까지 원정 시위를 결행했다.

비록 한일협정을 구실로 기각을 당했지만,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 강제연행과 강제노역에 대한 미쓰비시 측의 책임이 사실로 인정된 만큼 미쓰비시 측이 사죄와 배상에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나고야 소송 지원회'가 금요일을 택한 것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주요 사장단 회의가 금요일에 있기 때문이다. 나고야에서 도쿄까지는 약 360km. 이들은 왕복 거리만 720km에 달하고 신간센 1인당 왕복 비용만 20만 원이 훌쩍 넘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매주 시나가와(品川) 역 앞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미쓰비시측의 사죄를 촉구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8년 11월 최고재판소마저 원고들의 청구를 또 다시 외면하고 말았다. 더 이상 사법적 구제의 길이 막힌 상황, 그러나 이들은 또 다시 어려운 결정을 선택했다. 애초 부당한 판결인 만큼 인정할 수 없다며 미쓰비시가 사죄할 때까지 금요행동을 계속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동경 시내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는 선전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2012년 8월 10일
 일본 시민단체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동경 시내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는 선전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2012년 8월 10일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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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단지 아무런 희망의 빛이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에도 똑같은 피해자들이 있다, 너희가 한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 한국이 좋으면 한국에나 가서 살아라"라는 때론 조롱 섞인 말까지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기를 만 3년. 미쓰비시중공업은 2009년 7월 14일 근로정신대문제에 대해 교섭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009년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지급 사건과 미쓰비시자동차 철수 1인 시위 등의 판결 이후 한국에서 반발 움직임이 확산된 데다 계속되는 금요행동도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 동안 교섭에도 불구하고 2010년 7월 6일 16차 회의를 끝으로 미쓰비시 측과의 교섭은 실패로 돌아갔다. 미쓰비시 측의 오만하고 무성의한 태도가 결정적이었지만, 무관심하기는 한국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 회복이 목표... 금요행동 계속할 것"

 도쿄 중심가인 시나가와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 2010년 8월 10일.
 도쿄 중심가인 시나가와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는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 2010년 8월 10일.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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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소송 지원회'는 교섭이 결렬된 직후 잠정 중단해 왔던 금요행동을 곧바로 재개했다. 2012년 8월 10일부터 다시 시작된 금요행동은 해를 두 번 넘겨 2014년 8월 10일 현재 99회째에 이른다.

3년에 걸친 1차 금요행동까지 감안하면 꼬박 5년의 세월. 1차 금요행동 145회까지 합하면 통산 242회차로, 그동안 연인원 참가자만 2100명을 훌쩍 넘겼다.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공동대표는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존엄이 회복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에 5년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금요행동을 중단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추석 격인 오봉절(8월 15일)을 맞아 한 주를 쉬기로 한 이들은 8월 22일부터 다시 금요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아직도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도쿄 시내에서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에 참가하는 주주들과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근로정신대 사건에 대한 미쓰비시의 자발적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4년 6월 26일.
▲ "아직도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원들이 도쿄 시내에서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에 참가하는 주주들과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근로정신대 사건에 대한 미쓰비시의 자발적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4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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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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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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