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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문화인류학회가 펴낸 문화인류학 입문서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에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어떤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관찰하고 귀담아 듣는 능력과 경험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아직까지 문화인류학에 대한 이보다 명료하고 훌륭한 정의를 본 적이 없다. 문화인류학이란 단순히 다른 문화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보고 듣고 성찰하고 깨닫는 일련의 작용에 대한 학문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 버몬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VERMONT) 인류학과 교수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 스테이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THE FREE STATE)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자 로버트 고든은 저서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를 통해 '보고 듣고 성찰하며 깨닫는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다가오는 시대에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독특한 여행안내서

책 표지
▲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책 표지
ⓒ 펜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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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 연간 해외여행객이 무려 1400만에 이르는 여행의 시대에 인류학적 여행방법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독특한 여행안내서다. 전자기기와 SNS의 발달로 여행이란 것이 점차 즉각적인 표현과 자기과시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 저자는 보통의 여행객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우월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현지 사회와 문화의 맥락을 이해하기를 권한다.

인류학과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실제 여행에 도움이 될 법한 자잘한 팁에 이르기까지 책은 사려깊은 여행지침서와 학자적 기풍이 느껴지는 여행개념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총 2부 10장에 걸친 구성은 여행이 어떻게 인간을 성장시키는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위한 실제적 조언까지 여행과 관련한 여러 주제들을 촘촘히 다루고 있다. 굳이 여행을 떠날 생각이 없던 사람이 읽어도 흥미를 느낄 법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책에는 여행과 관련한 유명인사들의 명언이 종종 등장한다. 그중 특별히 "진정한 발견에 이르는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볼 때 이루어진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 인상깊다. 책은 거듭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많은 지역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볼거리를 보고 오는 것에 있지 않으며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누군가가 여행을 떠난다는 건 문턱을 넘어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고 이로부터 그는 과거의 그와 같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고독, 즉 홀로되어 권태를 견디는 일 없이 휴대전화와 SNS를 통해 떠나온 지역의 사람들과 자유로이 소통하고 여백의 시간조차 가득 채워 소비해버리는 현대의 여행자는 그로부터 어떠한 소득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 저자는 여행을 휴양이나 관광과 구별된 목적성 있는 행위로 이해하며 현대의 여행객들이 여행을 관광의 영역과 혼동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에게 여행이란 내적 성숙을 이끄는 목적성있는 행위이며 그로부터 명확한 소득을 얻지 못한다면 그 여행은 실패한 것이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통해 여행 중에 글쓰기의 필요성을 유독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삶의 맥락을 이해해라!

한 사회 안에서 자라난 인간이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문자와 상황의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문화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여행객은 다른 문화를 깊이 알게 되고 그로부터 자신의 내적 인식범위를 확장하는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지인들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음성과 문자를 넘어 문화적 맥락을 이해해야 해당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행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낯선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며 그때그때의 경험을 기록하고 행위 이면의 문화를 성찰하라고 권한다. 바로 이것이 인류학자가 여행하는 법이다.

전반적으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여행을 위한 책으로는 나쁘지 않은 저술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면 책 자체가 서구인의 관점에서 제3세계로 흔히 표현되곤 하는 가난한 사회로의 여행을 전제로 쓰여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는 유럽이며 아시아와 북미가 새로운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책의 상당부분이 아프리카의 예로 채워져 있었고 아시아나 남미를 여행할 때는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들도 상당수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치우쳤다는 인상이 있었던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나미비아, 레소토, 파푸아 뉴기니 등지에서 현지 조사를 한 저자의 개인적 경험 때문이겠지만 이를 일반적인 여행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례 역시 균등하게 들어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장이나 비행기 여행이 생태적으로 얼마나 해로운 일이지, 전자기기에 의존하는 것이 여행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에 대해 적은 부분은 각별히 인상적이었다. 잠깐의 편리를 위해 여행객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를 로버트 고든 만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누구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 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로버트 고든 씀 | 유지연 옮김 | 펜타그램 | 2014.7. | 1만6천원)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로버트 고든 지음, 유지연 옮김, 펜타그램(2014)


태그:#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펜타그램, #로버트 고든, #유지연, #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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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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