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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주거복지센터 포럼의 첫 날이었다. '집'이 개인의 재산을 넘어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길 바라는 참여자들의 열기는 포럼이 끝난 뒤에도 장소를 옮겨 대화를 이어가길 원했다.

그러나 옮긴 장소는 소란스러워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더욱이 실내 흡연까지도 서슴지 않는 곳이었다. "왜 장소를 이런 곳으로 섭외했느냐? 주위에 조용하게 차 한잔 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언짢아하는 내게 "장애인들이 갈 수가 없다. 커피숍까지야 업고 올라갈 수 있지만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하다. 또 그곳까지 업혀가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하겠느냐"고 장소 섭외자가 답한다. 턱(높이차이)이 없는 곳으로 선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단다. 아뿔싸. 건축을 한다는 사람이 참여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편의시설은 생각치도 못하고 투덜거리기나 하다니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비단 커피숍뿐만이 아니다. 음식점도,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도 출입구의 턱 때문에 노인과 어린이가 불편하고 장애인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장소마저 출입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일상을 살아가지 말라는 말과 동의어다.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법에서 잘 보장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높이 차이가 없는 출입구를 설치해야만 하는 시설은 90평(300제곱미터)이 넘는 슈퍼마켓, 편의점, 음식점, 커피숍 등이 해당이 된다.

높이차이가 제거된 전주시 삼천동의 한 약국의 출입구
 높이차이가 제거된 전주시 삼천동의 한 약국의 출입구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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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통의 동네에서는 이런 대규모의 시설들이 흔하지 않다. 따라서 어린이, 노인, 장애인, 임산부의 통행이 편리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접근로의 설치와 높이차이가 제거된 건물 출입구의 설치는 시급하며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즉 현실에 맞도록 법적대상건물을 대형 건축물에서 모든 건축물로 확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접근로의 설치와 높이차이가 없는 건물의 출입구 설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가의 경우 오히려 도로의 사람들을 건물로 끌어들이기 위해 1층 바닥을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때 한단(15센티미터)정도 턱을 만들어 도로에서의 빗물유입을 막았지만 경사를 두거나 측면 배수로에서 해결할 수 있느니, 그 한단 턱마저도 없애자는 것이다.

서부신시가지 풍경4-법정대상 건물이기에 높이차가 제거되어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서부신시가지 풍경4-법정대상 건물이기에 높이차가 제거되어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 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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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없는 도시공간을 만드는 일이 장애인만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어린이, 임산부,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는 부모, 나아가 노인, 장애인 모두에게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된다. 더욱이 앞으로 12년 후인 2026년에는 우리나라의 65세이상 인구가 5몀 가운데 1명의 구성비를 가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며, 우리 역시 늙어간다는 이야기다.

고령자와 장애인을 통합하여 도시구조를 논의해야 한다. 또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어 노인이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나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즉 모든 사람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일반 용어로 정착되어 쓰일 정도로 지식수준은 높아져 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은 누구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의 설치와 높이차이가 제거된 건축물의 출입구의 확보다. 최근 전주시가 시정의 최우선 목표인 '함께하는 복지도시'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무장애 건축설계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힌바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지역에서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지구단위계획을 살펴봤다. 최근 변경 고시된 '전북 전주-완주 혁신도시 지구단위계획'과 '서부신시가지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건축물의 1층 바닥높이는 지형적 이유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지내 공지 또는 보도와 15cm 이상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건물에서 15cm의 높이차가 발생을 한다. 15cm면 이미 휠체어, 목발, 유모차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이 건물들은 대부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의 대상이 아니기에 습관처럼 대부분의 건물에서 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울의 지구단위계획과 비교만 해봐도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자세가 드러난다. 서울에서 지난 2011년에 마련된 지구단위계획 표준(안)을 살펴보면 "건축물의 1층 바닥높이는 접한 보도 또는 도로로부터 일반인 및 장애인의 진출입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와 달리 이미 보행약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져 있다.

도시건축을 구축하는 방법을 보면 공동체의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무심코 만들어지는 한 뼘 15cm의 턱 때문에 누군가의 삶에 '불가능'이란 절망이 찍힌다. 우리사회가 보다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있도록 지구단위계획의 변경이 절실하고, 점차적으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법에서 정해지지 않더라도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도시공간이 구축되길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새전북신문에 실립니다. 글쓴이는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 대표) 입니다.



태그:#장애인, #베리어프리, #유니버셜디자인, #높이차, #지구단위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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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효형출판)저자, 건축스튜디오 사람 공동대표, 건축사사무소 예감 cck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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