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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오이소. 이 늙은이는 철탑을 막기가 많이 되니(힘드니) 많이 좀 도와주이소. 덕촌할매
▲ 덕촌할매의 글 많이 오이소. 이 늙은이는 철탑을 막기가 많이 되니(힘드니) 많이 좀 도와주이소. 덕촌할매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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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오전 11시. 밀양 송전탑 반대 127번 움막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끝났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 두 분이 응급실로 후송됐다.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눈앞이 흐려졌다. 나를 본 덕촌할머니는 갈비뼈가 아픈 상황임에도 일어나 앉으려고 애를 썼다. 할머니가 입을 여셨다.

"모든 게 무너져 버렸다. 30분도 안 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어. 서울총각... 이제는 밀양에 더 이상 내려오지 마. 뒤도 돌아보지 말고. 우리는 잊어 버려."

'아닙니다. 또 올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끝내 그 말은 뱉어지지 않았다. 눈물과 콧물이 말보다 먼저 나왔다. 할머니도 울었다. 눈물이 계속 나와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할머니의 싸움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잡은 손 절대로 놓지 않을게요.'

3개월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무너진 할머니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의연했던 할머니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가슴은 뻥 뚫려 있었다.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도둑맞은 사람처럼.

어르신들의 고민과 우리들 고민의 접점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서로 돕기 위한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이 창립되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서로 돕기 위한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이 창립되었다.
ⓒ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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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내 눈에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그 날의 뉴스를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사진 속 할머니들은 몸부림을 쳤다. 소리가 나지 않는 글자들은 울부짖어댔다. '밀양과 하등 상관없는 서울 촌놈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할머니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인가 해야 했다. 상심하고 고립되어 있을 어르신들의 손을 다시 잡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밀양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로 전화해 "밀양의 어르신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밀양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6월 11일 전까지 밀양 어르신들의 싸움은 송전탑 공사를 막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송전탑이 건설될 부지에 농성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경찰과 한국전력(한전)이 언제 들어올지도 모를 불안함 속에서도 연대자들에게 손수 밥을 해먹이며 싸움을 이어갔다.

연대자로서 내가 본 그들의 모습은 경찰과 한전에 대항하는 투사에 가까웠다. 농사를 짓고 땅 위에서 살던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사라지고, 작은 몸으로 이를 악물고 건장한 사내들을 막아내려는 모습만 남았다. 그런 그들의 바람은 단순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땅에서 평화롭게 농사짓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이미 5월에는 골안마을에서 사과와 사과즙을, 6월 단장면에서는 매실과 감자를 판매하였다. 그것은 송전탑 싸움으로 제대로 농사짓지 못한 어르신들을 지지하기 위함이었다. 끝을 모를 싸움으로 일상이 파괴된 어르신들을 위한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SNS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그것은 비단 돈과 농작물의 교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의 연대자들이 송전탑 반대 싸움으로 지친 밀양 어르신들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또한 농사를 짓던 밀양의 주민들은 자신이 직접 키운 맛있고 건강한 작물을 도시의 시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행복이기도 했다.

이렇게 농작물 판매와 연대의 경험을 고스란히 쌓은 대책위는 쉽지 않은 고민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단발성에 그치는 농민과 구매자와의 만남을 보다 넓은 의미의 연대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한 고민이 바로 미니팜 협동조합(관련기사 : 밀양 행정대집행 한 달... 협동조합으로 뭉친 주민들)으로 이어졌다.

'미니팜 협동조합'이 준비하고 있는 네 가지

단장면 매실
 단장면 매실
ⓒ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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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로서의 어르신들의 싸움을 응원하기 위해 농성장을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농부인 그들의 일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싸움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그 자체를 공유하겠다는 넓은 의미의 연대이기 때문이다.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이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크게 네 가지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나눔장터 '밀양장날'(매주 개최되던 촛불집회의 성격을 바꾸어 마을별 나눔장터로 전환하여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고, 문화공연, 음식 나눔, 생활용품 나눔 등으로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
②농산물 판매(밀양 송전탑 경과지 4개면에서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인터넷을 통해 도시 연대자들에게 직접 판매)
③연대자들의 방문 및 일손돕기
④귀농 및 인문학 강좌 등을 개최

각기 다른 네 가지의 활동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더 크고 지속적인 연대를 만들 것이다. 그 연대는 언제까지나 밀양의 손을 잡겠다는 의미이다. 밀양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어르신들의 싸움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이들이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 * 구체적이고 생생한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대해주세요.



태그:#밀양, #밀양 송전탑, #미니팜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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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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