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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아들이 승강기에 갇혔습니다. 다행히 승강기 내 전등은 꺼지지 않습니다. 인터폰은 살아있는데 대답이 없습니다. 함께 갇힌 아주머니는 흔한 스마트폰도 없습니다. 아주머니와 그 딸이 좁은 승강기 안에서 "살려 달라" 소리를 지릅니다. 20분 뒤, 승강기 타려고 기다리던 사람이 구조 소리를 듣습니다. 이 사람은 곧바로 소방서에 신고했고 아들과 모녀는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구조됐습니다.

지난 9일 오후, 퇴근이 늦었습니다. 현관문 열고 집에 들어섰더니 둘째 아들이 대뜸 스마트폰을 사달랍니다. 난데없는 소리에 황당합니다. 스마트폰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사기로 약속했거든요. 둘째는 스마트폰이 필요하다며 잠시 운을 떼더니 이내 포기합니다. 둘째 얼굴을 보니 시무룩합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저는 책 보고 있는 둘째를 불렀습니다. 둘째에게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짐작컨대, 둘째는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겠지요. 아니면 아주 특별한 게임을 발견했거나요.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승강기에 20분 동안 갇힌 9살 아들

좁은 승강기 안에서 둘째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었더라면 승강기 안에서 빨리 구조 됐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좁은 승강기 안에서 둘째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었더라면 승강기 안에서 빨리 구조 됐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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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둘째로부터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를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둘째는 제게 '살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말했습니다. 둘째가 승강기에 갇혔다가 구조됐거든요. 좁은 승강기 안에서 둘째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었더라면 승강기 안에서 빨리 구조가 됐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둘째는 승강기에서 구조된 뒤 저를 보자마자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른 겁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저는 둘째에게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사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아들, 참 많이 섭섭했겠지요? 아들 말을 들으니, 갇힌 승강기 안에 있는 인터폰으로 연락했는데 대답이 없더랍니다.

둘째가 승강기에 갇힌 그 순간 경비실 아저씨는 바쁜 일로 잠시 자리를 비웠나 봅니다. 때문에 옆 동 지인 집에 들렀던 둘째는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둘째는 아파트 8층과 9층 사이에 멈춘 승강기 안에서 119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약 20여 분간 갇혀 있었습니다.

마침 함께 갇힌 모녀도 스마트폰이 없었답니다. 때문에 외부로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왜 이런 아찔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지 A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본사에 물었습니다. A아파트관리사무소 소장은 "평소 가끔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또 "아파트가 워낙 낡아서 그런 일이 가끔 생긴다"고 대답합니다. 덧붙여 "날씨가 흐리면 오작동이 가끔 일어난다"며 "승강기가 멈춰도 추락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A아파트 본사도 종종 발생하는 일인 듯 별일 아니라는 반응입니다.

비상통화장치만 있었어도

A아파트는 유예기간을 이유로 비상통화장치를 아직 갖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칫하면 둘째가 당한 사고를 또 누군가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A아파트는 유예기간을 이유로 비상통화장치를 아직 갖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칫하면 둘째가 당한 사고를 또 누군가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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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승강기시설안전관리법'은 이 같은 사고를 '중대한 고장'으로 정의합니다. 법은 승강기에 결함이 생기는 경우를 크게 '중대한 사고'와 '중대한 고장'으로 나누는데, 중대한 사고는 사망자나 중상자가 발생한 경우를 말합니다. 또 중대한 고장은 승강기가 정상적으로 문이 열려야 하는 구간에서 멈추지 않거나 해당 구간에서 멈췄지만 문이 열리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문이 열린 상태에서 운행하거나 호출층 또는 지시층으로 운행되지 않은 경우도 중대한 고장입니다.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승강기 관리 주체는 지체 없이 건물명, 소재지, 사고 발생 장소, 사고 발생 일시 및 피해 정도를 한국승강기관리원에 알려야 합니다.

승강기가 중대한 고장을 일으킨 경우에는 고장 사실을 알게 된 후 3일 이내에 한국승강기관리원에 알려야 합니다. 이렇듯 정부와 법은 승강기 사고와 고장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현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합니다.

지난 2011년 9월 전력대란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승강기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2012년 3월 14일 정부는 승강기 검사기준을 고쳤습니다. 고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승강기 내 인터폰 외에도 비상통화장치를 갖추도록 했습니다.

비상통화장치는 인터폰을 받을 사람이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가 인터폰을 받지 못 하더라도 미리 저장해 둔 전화번호로 자동 연결돼 승강기 고장을 알리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개정된 법에 따라 비상통화장치를 갖추었더라면 둘째가 승강기 안에서 공포에 떨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여, 승강기안전관리원에 비상통신장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언제까지 설치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관리원 담당자는 "'비상통신장비'는 법적 의무 설치 대상"이며 "2012년 3월 14일 법 개정으로 2013년 9월 15일부터 승강기 내 비상통화장치 설치가 의무화 되었고 이는 소급적용되는 규정이다"고 알려줬습니다. 다만, 이 장비를 설치하는 데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습니다.

A아파트는 유예기간을 이유로 비상통화장치를 아직 갖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칫하면 둘째가 당한 사고를 또 누군가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작은 사고가 쌓이면 대형 재난이 발생합니다. 굳이 '하인리히 법칙'까지 들먹일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너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승강기에 비상통화장치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비좁고 어두운 승강기 안에 갇혀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를 모릅니다.

돈이 많이 든다며 비상통화장치 설치를 늦추면 많은 이들이 고통 받습니다. 또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뒷북치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전은 돈과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둘째는 더 이상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습니다.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둘째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못한 일이 못내 찜찜합니다. 완벽한 안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큰 사고를 미리 알려주는 작은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 길이 제2의 세월호를 막는 방법입니다. A아파트는 기자의 취재가 시작되자 승강기안전관리원에 승강기 고장을 알렸습니다.


태그:#승강기, #승강기 사고,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비상통화장치, #전력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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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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