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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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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요즘에는 어떤 책을 읽든 신문을 보든 방송이나 팟캐스트를 보고 듣든 글쓰기라는 화두를 가지고 다가간다. 둘째, 그러다가 발견하게 된 사람, 임승수라는 저자를 알게 된 거다.

팟캐스트를 뒤지다 발견했다. <임승수의 좌변기>라는 독특한 제목의 팻캐스트에 출연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오고 이공 관련 회사에서 5년을 다니던 글치 공학도였는데 뒤늦게 글을 쓰게 되었고 그것도 인문사회 서적들을 수권이나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저서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언젠가 서점을 갔을 때 표지를 본 기억이 있다. 출판사에서는 제목으로 확 끌어당겨보자는 의도에서 지었겠지만, 당시 나는 그 책을 들어보지도 않은 거로 기억한다. 제목이 내 '필'이 아니었던 거다. 원숭이가 이해하니까 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원숭이띠였다면 혹시 모르겠다. 만약 그때 내가 그 책을 들었고 몇 장을 읽었고 구매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면 글쓰기에 대한 나의 깨달음은 좀 더 빨라졌을 것이다. 그를 이제야 만났으니 말이다.

팟캐스트 <임승수의 좌변기>가 나의 관심을 끈 건 이미 꽤 오랫동안 해온 원숭이 자본론 때문이 아니었다. 글쓰기에 대한 방송이 4회 정도 있어서이다. 지난 4월 4일 방송된 '글쓰기의 생명은 디테일' 편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명색이 22년차 방송작가로서 글쓰기 직업인인 나를 전율하게 했다. 글쓰기에서 디테일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임승수 저자는 매우 쉽게, 한마디로 설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처음엔 정봉주씨인가 했다. 음색과 말투가 꽤 닮아있었다. 글쓰기라는 자칫 딱딱하고 쉽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재미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부끄러웠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겠다는 생각과 결심을 하게 했다. 계속 이어진 '나만 알고 싶은 글쓰기 비법', '글쓰기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관점의 전환/책을 통해 저자가 건넨 말에 답하기'를 들었다. 글쓰기 관련 팟캐스트가 단 4회로 끝난 게 아쉽기도 했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러니 방송에서 그가 몇 번이나 얘기했던 광고,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바로 이 책 <글쓰기 클리닉>을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으랴.

재미있었다. 그동안 읽어온 글쓰기 책들과 견주어볼 때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재미'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글쓰기 책에 '재미'와 '실용성'을 담겠다는 장담을 상당부분 이루었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적지 않게 쓰곤 하는 여러 유형의 글쓰기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 업무 이메일, 기획서 및 제안서,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업무 관련 글들과 독후감·서평, 칼럼, 인터넷 글쓰기, 책 쓰기와 연애편지라는 생활 글들을 쓰는 법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글들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게 강점인데 이를테면 '독후감'이란 '저자가 건넨 말에 대한 독자의 대답'이라는 거다. 지금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예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하면 솔직히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가 많았다. 생각 끝에 기껏 쓴다는 게 내용을 요약하고 나의 느낌을 추가하는 정도였다. 독후감이라는 게 말 그대로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이라고만 생각해서인지 딱 그 정도의 생각과 글만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임승수 저자는 독후감이란 저자가 책을 통해 말을 했으니 그 말에 대해 너의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한 주장에 대해 긍정을 하든 반박을 하든 어쨌든 읽은 사람이 대답을 하라는 거다. 그러니 굳이 저자가 3백 쪽에 걸쳐 한 말들을 들은 사람이 요약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저자는 <글쓰기 클리닉>을 통해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글을 쓴다는 걸 절대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글은 맞춤법에 맞게 쓴 글도 아니요,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도 아니라고 한다. 어떤 글이든 그 글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감동을 목적으로 쓴다면 감동을 줘야 잘 쓴 글이고, 정보 제공이 목적이라면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하면 좋은 글이다. 자기소개서는 자기를 소개하는 게 목적이 아닌 취업에 성공하는 게 목적인 글이니 그에 걸맞게 써야 한다고 한다.

나는 22년차 방송작가로서 시청자가 독자가 되는 글을 주로 쓴다. 때로는 기획안이 통과되는 것이 목적인 글을 쓰고 광고주를 만족시켜야 하는 글도 쓰곤 한다. 각각의 글이 목적이 다르다. 같은 방송 글도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감동이냐 정보 제공이냐 웃음이냐 달라진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목적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도대체 왜 쓰고 있는 건지 정신줄을 놓게 되는 것이다. 불현듯 기막힌 생각이 들어 미친 듯이 폭풍집필을 하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 새 나만의 성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임승수 저자의 말을 듣고 나서는 글을 쓰기 전에, 글을 쓰다가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글의 목적을 잘 아는 것으로 글을 쓰는 건 끝일까. 문제는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아도 그곳을 향해 갈 수 있는 길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거다. 수십, 수백 아니 무한대일 것이다. 그렇기에 글쓰기라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임승수 저자도 목적만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다양한 조언을 하고 있다.

글쓰기 책으로 글 쓰는 실력이 느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끊임없이 글쓰기 책들이 나오는 까닭은 뭘까. 우리가 사람인 이상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경로는 말과 글밖에 없다. 말을 잘 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 그런데 기본은 역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은 기록이 되어야만 존재가치가 있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닌 업무를 볼 때도 이메일을 통해 근거를 남겨두어야 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말을 잘 하면 왠지 '사기꾼'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글을 잘 쓰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작가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글쓰기 책들도 계속 나오고 있고 나 역시 공부를 해서 글쓰기 책들로 차려지는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승수 저자는 말한다. 글을 쓴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신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글치 공학도였는데 지금 버젓이 글로 밥 먹고 있지 않느냐고.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한껏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글쓰기 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언컨대, 스티븐 킹의 글쓰기 책보다 살짝 낫다. 아쉬운 게 있다면, '들어가며'는 있는데 '나가며'는 왜 없는지. 저자의 마무리 솜씨를 보지 못하는 걸 제외하고는, 장차 출간될 '22년차 방송작가가 작정하고 쓴 글쓰기 책'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책이라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글쓰기 클리닉 - 목적을 달성하는 결정적 한 방

임승수 지음, 비즈니스북스(2011)


태그:#글쓰기 책, #글쓰기, #임승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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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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