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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학교폭력 사망사건이 등장한 진주외고 전경
 잇따라 학교폭력 사망사건이 등장한 진주외고 전경
ⓒ 진주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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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봄, 잔인한 4월이다. 천지간에 벚꽃이 지듯 잠깐 사이에, 경상남도 진주의 한 고교에서 두 명의 학생이 열흘 남짓한 사이를 두고 친구 혹은 선배에게 '맞아서' 죽었다.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삼가 명복을 빈다.

지난 달 31일 이 학교에서는 1학년 학생 두 명이 학교 옥상에서 싸우다 1명이 숨졌다. 지난 11일 밤에는 이 학교 기숙사에서 기숙사 자치위원인 선배가 후배들이 거짓말을 한다며 후배를 엎드려뻗쳐 시킨 뒤 배를 발로 걷어차 영원히 숨을 멎게 했다고 한다. 결코 흔하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만 것이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이 학교, 현직인 고영진 경남교육감의 부친이 인수했고 사퇴 의사를 밝힌 이사장은 고 교육감의 아내다(이사장과 교장 등은 사표가 아니라 파면이나 해임의 중징계를 해서 교단으로 복귀하는 걸 막아야 한다).

1997년 지금의 이름인 진주외국어고등학교(아래 진주외고)로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이 학교는 종합고등학교(아래 종고)였다. '종고'는 한 학교 안에 인문 과정과 실업 과정을 함께 운영하는 학교다.

그리고 지금도 이름만 '외고'로 바꾸었을 뿐 진주외고는 특목고인 외국어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현재에도 이 학교에서는 영어과와 보통과로 나누어 종고 형태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종고에서 마치 특목고를 떠올리게 하는 외국어고로 교명을 바꾼 것은 일종의 이미지 세탁을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라는 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다 알아차렸을 터이다.

진주외고 '교육벌' 살펴보니... 허벅지 때리기·오리걸음 등 명시

잇따라 학교폭력 사망사건이 발생한 진주외고 교문에서 지난 8일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이 실시되고 있다.
 잇따라 학교폭력 사망사건이 발생한 진주외고 교문에서 지난 8일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이 실시되고 있다.
ⓒ 진주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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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과 좀더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법한 이 학교의 생활규칙과 기숙사 운영규정을 살펴보자. 먼저 '진주외국어고등학교 생활규칙'에는 현재 법으로 금지한 폭력적 체벌이 '교육벌'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명시돼 있다. 엄연한 위법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조 8항에는 "학교의 장은……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 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적시했다. 체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진주외고 생활규칙에는 '교육벌'을 6개 조항에 걸쳐 상세히 명시하고 있다. 생활규칙 제53조(교육벌의 정의 및 종류)에서는 "교육벌이란 교사가 학생 훈육의 목적을 가지고 학생에게 일정한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직접교육벌'과 '간접교육벌'로 구분하여 설명해 놓았다.

'직접 교육벌'은 "교사가 도구를 사용하여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예 : 교편으로 손바닥, 종아리, 허벅지 등을 때리는 것 등)를 말한다"라고 돼 있고, '간접 교육벌'은 "교사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예 : 손들기, 꿇어앉기, 운동장 돌기, 청소하기, 팔굽혀펴기, 오리걸음 등)"라고 적었다.

이를 위한 '교육벌의 방법'으로 구체적인 체벌의 도구와 횟수, 시간 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56조(교육벌 방법)
2. 교육벌 도구
가. 길이는 50cm 이내로 한다.
나. 굵기는 지름이 2.5cm 이내의 둥글거나 넓적한 형태의 회초리로 한다.
3. 교육의 횟수 및 강도
가. 직접교육벌 : 사안에 따라 경중이 있겠지만 1회에 10대를 초과해서는 안 되며, 신체적 손상이 유발되어선 안 된다.
나. 간접교육벌 : 1회 1시간 이내로 한다.

진주외고는 법으로 금지한 폭력을 허용하는 규정을 학교가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위와 같은 내용은 모두 상위 법률인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위반에 해당한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폭력적 상황에 쉽게 노출되었고 그를 통해 폭력을 내면화했을 개연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학생이 학생을 '지도'... 기숙사 자치위원도 문제

다음은 '기숙사 운영규정'(아래 '운영규정')이다. 진주외고 '2014학년도 기숙사 자치위원회 조직도'를 보면 3학년인 자치위원장을 정점으로 2층장과 4층장 남녀 각 2명, 2학년 남녀학생 대표 각 2명, 1학년 남녀학생 대표 각 2명씩 모두 13명의 자치위원이 있다. 이들이 사감을 도와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이 학교 기숙사에서 벌어진 사건은 기숙사 자치위원회 자치위원인 2학년 선배가 1학년 후배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불상사라는 게 언론을 통한 경찰의 설명이다. 운영규정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운영규정의 기숙사 자치회 역할 가운데 "기숙사 생활 및 상벌과 관련된 자치활동 주관"이라고 명시한 대목이 그것이다. 그날의 불행한 사건도 이 규정에 따라 기숙사 자치위원인 2학년 남학생 대표가 1학년 후배들의 "기숙사 생활 및 상벌과 관련된 자치활동을 주관"하다가 벌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는 학교가 자치회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이용해 학생이 학생을 통제, 지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학생이 학교(교사)의 권력을 입고 동급생이나 후배 학생을 지도, 단속하는 것을 '자치'라고 이름 붙인 것은 매우 잔인한 통제 방법이다. 선도부라는 미명으로 학생에게 학생을 단속하는 권한을 주고 교사(학교)의 충견으로 부리는 반교육적, 반인권적 행위가 기숙사 자치위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뿐이다.

사실 누군가가 죽는 뜻밖의 일만 벌어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같은 선배의 폭행과 폭력은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정당하게 자행되고 있었을 테다. 협력과 배려의 관계가 아닌 철저한 서열과 질서를 우선시하는 선후배 관계에서 폭력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학교 또한 학생들끼리의 권력 관계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불행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했다. 당시 폭행이 이루어지던 사고 현장에 다른 선배 5명이 더 있었다는 후배들의 증언이 그를 방증한다.

학교 스스로가 불법적인 폭력을 생활규칙에 명시하고, 기숙사에서는 또래들끼리의 폭력을 용인하는 규율을 법처럼 갖춘 학교에서 결국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말 일이 이번에 겹쳐서 터진 셈이다. 이사장과 교장 등의 사표 수리가 아닌 파면·해임의 중징계를 포함하는 상당한 수준의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 10월. 강원도 강릉의 한 고교에서도 학생이 죽었다. 운동장 전체 조회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선배가 후배를 때려죽인 사건. 그리고 다시 2014년. 또 친구가 친구를, 선배가 후배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 연거푸 벌어졌다. 무섭고 끈질긴 악순환이다.


태그:#진주외고, #진주외고 폭행, #고영진교육감, #기숙사 폭행, #난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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