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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 일을 하고 있다. 한옥 목수일을 2년 넘게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직종을 비교하면서 형틀 목수의 노동 일기를 기록해보았다-기자 말 

한옥 목수 3년차인 지난해 12월 한 달을 일없이 보내게 되었다. 한옥 목수로 현장에 나와 세 번째 맞는 겨울이었는데, 첫 해에도 역시 두 달 여를 일없이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양 가족이 생겼기 때문에 그 때처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옥 목수일은 구직 사이트에서 찾기보다는 현장에서 만난 목수들을 통해 또 다른 현장을 소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많은 목수들이 '겨울 방학'에 들어갔고, 혹 일하고 있더라도 새로 사람을 쓸 정도의 규모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한 선배 목수로부터 경상도 지역에서 작은 제실 짓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일주일 뒤에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유일하게 희망적인 답변이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이에 따른 불안감이 컸던 시기였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이때 G목수로부터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자신도 일이 없어 친구가 소장으로 있는 아파트 현장 철근팀의 반장일을 하고 있는데, 옆 형틀 팀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형틀 목수일을 하기로 한 세 가지 이유

이 제안을 쉽게 거절 못한 분명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서울에 있는 현장이라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집이 인천이었는데 한옥 일을 할 때는 주말부부도 모자라 이주말부부로 지내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또 일과가 끝난 후 이것저것 배워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나중에 밝히겠지만 물론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둘째, 필요한 공구가 많치 않았다. 빠루 망치와 '시노(손지레)' 가 기본 도구였고, 이에 더해 못 주머니와 커터칼, 연필, 줄자만 있으면 언제든지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손지레'만 철물점에서 3000원에 구입해서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한옥 목수의 경우에는 필요로 하는 공구가 많다. 손 연장으로 대패와 끌이 치수별로 있어야 하고, 망치 역시 몇 종류, 곡자, 각도자 등의 수공구는 제대로 갖출 경우 수십 종류가 넘는다.

전기대패를 비롯해, 엔진톱, 홈대패, 원형톱 같은 기계공구도 기본으로 갖춰야 했다. 무엇보다 이들 공구를 갖고 다니기 위해선 차가 있어야 했다. 나 역시 월급을 쪼개 공구를 구입했지만, 차량은 구입할 형편이 못 되었다.

현장을 쫓아 이동하는 떠돌이 목수에게 차량이 없다는 건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초기에는 몇 십kg이 넘는 연장 가방을 이고지고 기차를 탄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망치와 '손지레'만 있으면 일할 수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큰 매력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일당이었다. 2011년 여름 한옥 학교를 수료하고 첫 한옥 현장에 갔을 때 받았던 일당이 7만 원이었다. 평균적으로 일년에 만 원 정도씩 오르긴 했지만,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자 입장에서 1년을 기준으로 보면 노동의 강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었다(요즘에는 첫 시작을 9만 원부터 하는 현장도 일부 있다고 한다).

이이 비해 형틀 일은 보조일도 10만 원부터 시작한다. 내 경우에는 공종이 전혀 다른 한옥 일이었지만, 그래도 '망치질을 한'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었다(물론 지역별 현장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형틀 일이었지만, 망설이게 되는 이유도 있었다. 한옥 목수는 사회 계급적으로는 일용직 노동자에 불과하고 노동강도는 특히 세고 일당은 짠 편이었다. 그래도 계속했던 것에는 '전통한옥'에 대한 환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육체 노동에 대한 천시를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일부에게나마 한옥 목수는 장인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나 역시 처음에는 이 묘한 사회적 지위(일용직 노동자이면서 장인)를 내 자부심의 동기로 이용했다.

몇 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환상은 깨졌다. 그래도 집 짓는 과정에서 대부분 참여하고, 나무라는 소재를 이용해 가공하고 집의 뼈대를 세우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었다.
반은 관성으로 반은 자부심으로 하던 한옥 목수였는데, 형틀 일은 그 반쪽의 자부심과는 별개로 정말로 '노가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틀목수 일은 목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나무보다는 쇠를 다루는 일이 더 많다. 사진은 거푸집을 짜고 있는 장면.
 형틀목수 일은 목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나무보다는 쇠를 다루는 일이 더 많다. 사진은 거푸집을 짜고 있는 장면.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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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옥일에 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채 나갔던 첫 현장에서 들었던 20년 경력의 도편수의 말이 생각났다.

"이 일을 하는 첫째 이유는 호구지책이다."

그 당시에는 완전 동의 하지는 못했던 말. 그러나 2년 반의 한옥일을 하면서는 완전히 동의 하는 말.

그랬다. 자부심을 가지는 게 나쁠 건 없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내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해야 했다. 난 지금 당장 돈이 급했다. 자부심은 밥을 먹여주지 못하고,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 이렇게 결정하고 2014년 1월 2일 드디어 현장이 있는 장소로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그런데 난 출근 첫날 예상 외의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gertie/30187177693 에도 목수의 노동일기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형틀목수, #한옥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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