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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의 동반 자살은 '개인의 불행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인식하는 우리 사회 복지의 현 주소다.

서구 선진 사회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복지는 국민의 권리'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가난한, 생황이 어려운 사람만 골라서 혜택을 준다는 '선별적 복지'를 정부 여당이 선전하면서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비정하고 잔인한 측면도 있다. 복지는 '공짜' '다른 사람에게 고통 주는 혜택'이라는 인식만이 팽배하다.

복지 정책을 펴는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복지 대상을 줄이려 하기 때문에 복지 대상 선정 규정이 매우 까다롭고 복지 대상을 널리 발굴하는 식의 행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복지 대상이었는데 자격을 박탈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비극적 사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가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이를 지원하는 노력을 더 강화 하겠다"고 28일 밝혔다. 복지부는 "이번 일은 숨진 가족이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지원제도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사실이 없어 담당 행정기관에서 사망자의 어려운 사정을 확인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세 모녀가 정부의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터인데 신청을 하지 않아 지원이 안 된 불행한 케이스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말 정부가 복지 수혜자를 널리 찾아다니는 노력을 했을까? 신청했으면 지원이 가능했을까? 이런 질문 앞에 정부가 당당한지 확인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후진적이다. 비정하고 잔인한 측면도 있다. 복지는 '공짜' '다른 사람에게 고통 주는 혜택'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적 부담의 증가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늙는다는 것이 사회에 부담이 되고 심지어 죄책감이 드는 것이란 인식을 계속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가 경쟁에서 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복지는 국민의 권리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가 후퇴하면서 복지에 대한 인식도 후퇴하고 있다. 한국은 출산율이 세계 최저,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1/3이 넘는다. 양극화는 나날이 심화된다. 청년 실업이 고질화되면서 결혼 연령은 자꾸 뒤로 후퇴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출산율과 자살률을 생각하면, 한국은 살고 싶지 않고 후손을 남기고 싶지 않은 사회다. 인간 생지옥이라는 표현을 피하기 어려운 끔찍한 곳이다. 그러나 이런 객관적 평가에 대해 한국 사회는 완벽히 무감각하다. 모두 '부자 되세요' ' 대박 치세요'를 외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복지에 대한 정부 예산은 OECD 국가 35개국 중 맨 꼴찌 수준이다. 수출입 등 경제력은 10위권이지만 복지는 후진적이다. 수출 증대, 경제 성장이 이뤄지지만 개인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몇 개 대재벌의 호주머니만 무거워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후진적이다. 복지를 강조하면 이념 공세의 대상이 된다. 신자유주의에 비판하면 종북주의 공세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들어 서구 국가들이 복지를 정부 정책으로 포함시킨 것은 자본주의의 특성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시장 경쟁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경쟁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패자가 항상 존재하는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패자가 다시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 복지의 깊은 뜻이다. 패자를 방치하면 전체 사회를 적대시 하면서 묻지마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개인이 출현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세력은 강자 독식의 논리를 강조하면서 패자 부활전이란 배려에 전혀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는 복지 하면 도덕적 해이를 떠오르게 하는 식의 심리전이 전개된다. 사회를 향해 사기를 치며 복지 혜택을 누리는 소수를 부각시키면서 복지가 필요한 다수의 기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복지에서 '가짜 대상자'는 통계학적으로 소수가 존재하지만 이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서구 사회에 축적된 복지이론이다.

한국에서 복지정책이 본격 시작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 부터다. 노무현 정부까지 10년 동안 강력히 추진된 복지 정책은 이명박 정권 들어 브레이크가 걸렸다. 복지 정책은 정치 민주화와 직결되어 있어 평화적 정권 교체 이전 정권에서 일반 시민을 위한 복지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복지는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전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복지에 대해 전향적인 정부의 철학과 사회적 인식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 5년간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면서 복지도 당연히 후퇴했다.

2012년 대선에 즈음해 박근혜 당시 후보가 복지 공약을 민주당 뺨치게 강화하면서 복지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집권 후 시행하려던 노인 복지를 놓고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식으로 후퇴했다.

박근혜 정권의 불통과 소통 거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숨을 막히게 한다. 복지가 긍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전혀 조성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 최 약자인 노인 모두에 대해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던 보편적 복지를 뒤로 미루고 빈곤층에 국한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복지의 개념을 선진화하는 것을 저지하는 작업이 강행되고 있다.

복지는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부자 증세를 외면하면서 복지를 부정적으로 먹칠하는 복지 철학이 춤을 춘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 현실이지만 이를 부끄러워 하고 비통하게 여기면서 구조적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세 모녀의 집단 자살이 또 발생할 수 있는 참혹한 현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 등에 실렸습니다.



태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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