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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1월 1일 판결을 청취하기 위해 광주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등 소송단.
▲ 나고야근로정신대 소송 지난 2013년 11월 1일 판결을 청취하기 위해 광주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등 소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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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가 중노동을 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소송에 나섰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27일 오전 11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김재림(84)·양영수(85)·심선애(84) 할머니와 숨진 오길애 할머니의 남동생 오철석(78) 할아버지 등 4명. 오길애 할머니는 1944년 12월 7일 일본 도난카이 대지진 당시 공장 건물더미에 갇혀 숨졌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김재림 할머니는 일본에 끌려가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회사에서 하루 종일 군용 비행기의 부속품을 깎는 일, 비행기 날개에 페인트 칠을 하는 일 등을 했다. 김 할머니는 "힘든 내색을 하면 '괜히 일하기 싫어 꾀를 부린다'면서 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하지만 해방이 되어 돌아올 때까지 월급은 구경도 못했다"고 호소했다. 

양영수 할머니는 야마모토라는 일본인 담임 선생이 한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에 가게 됐다. 양 할머니는 "식사는 가끔 빵이나 감자를 주기도 하고 밥도 겨우 한 숟가락 정도이고 반찬도 단무지 정도여서 항상 배가 고팠다"고 회고했다. 양 할머니는 나고야에 지진이 난 이후 도야마라는 지역으로 이동해 작업을 해야 했지만 미군의 폭격 때문에 정상적인 작업은 어려웠다고 했다.   

"미쓰비시, 공개 사과할 것 촉구한다"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미치도쿠 공장 부지 부근에는 도카이지진으로 희생된 근로정신대를 추모하는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비석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왼쪽은 한국의 시민단체가 세운 추모비.
▲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미치도쿠 공장 부지 부근에는 도카이지진으로 희생된 근로정신대를 추모하는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비석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왼쪽은 한국의 시민단체가 세운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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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의 청구액은 1억5천만 원씩 모두 6억 원. 사실상 마지막 근로정신대 관련 손해배상 소송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는 13~15세의 어린 소년 약 300명이 전남, 충남지역에서 동원되었다. 이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군용정찰기 생산에 혹사당했다.

이날 시민모임은 호소문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 한국인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같이 근무하던 일본인이 불법적 노역을 강요당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다 무일푼으로 귀국한 한국인 피해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양심선언을 통해 피해보상을 호소한 적"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피해보상과 공개 사과할 것을 한일의 양심적 시민과 함께 미쓰비시 중공업에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했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11월 양금덕(83)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로 하여금 양 할머니 등 4명에게 각각 1억5000만 원씩을, 숨진 아내와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김중곤(90) 할아버지에게는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으나 미쓰비시는 항소한 상태다.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 미야나가 슌이치(宮永俊一) 사장은 최종적으로 패소가 확정되더라도 손해배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소장 제출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하며 오랫동안 지원활동을 펼쳐 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공동대표 등 3인이 함께 했다.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들, 일본 기업에 소송 제기

승소 판결 후 국립 5.18 민주 묘지를 찾아 소송 도중에 돌아가신 김혜옥 할머니의 묘소를 찾은 피해자들과 한일 지원단체 회원들이 승소 판결을 전하고 있다.
▲ 김혜옥 할머니 승소 판결 후 국립 5.18 민주 묘지를 찾아 소송 도중에 돌아가신 김혜옥 할머니의 묘소를 찾은 피해자들과 한일 지원단체 회원들이 승소 판결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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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하루 전인 26일 중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일본 기업들의 중국인 강제징용 관련,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 등 37명이 일본의 2개 기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강제징용 노동은 일본 군국주의가 대외 침략전쟁과 식민통치 시기에 저지른 엄중한 범죄행위로 아직 적절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역사가 남긴 문제"라면서 "일본이 역사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로 관련 사안을 성의 있고 적절하게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소송지지 입장을 밝혔다.

모한장(牟漢章), 장스제(張世杰)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 37명은 이날 오전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 일본코크스공업주식회사(전 미쓰이광산), 미쓰비시(三菱)머티어리얼(전 미쓰비시광업주식회사) 등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중국의 원고측은 미쓰비시(三菱) 머터리얼과 일본 코크스공업주식회사(전 미쓰이 광산)에 대해 피해자 1명 당 100만 위안(약 1억 7400여만 원)의 배상과 사죄를 요구했다.

피해자 전원의 배상이 인정될 경우 총액은 94억 1500만 위안(한화 약 1조 6300억 원)에 달한다. 원고측 자료에 따르면 강제징용에 관련한 기업은 35개, 피해자는 3만 8953명. 앞으로 중국 국내에서 같은 소송이 일어나 대상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은 높다.

한편 이번 소송과 관련해 중국 법조계 관계자, 전직 고위 관리, 일본 전문가 등 32명으로 구성된 고문단은 연명으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일본을 상대로 한 민간의 배상 청구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했다.

1972년 중일 양국의 공동성명으로 중국이 일본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정부간 교섭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지만 최근에 개인 청구권이 별개라는 인식이 중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야스쿠니 참배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일본 정부의 반역사적 행동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은 공동보조를 취하는 형국이다. 중국 하얼빈역에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이어 한국과 중국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창안구(長安區) 두취진(杜曲鎭) 지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비를 설치키로 합의하고 조만간 기념비를 제작할 계획이다.


태그:#근로정신대, #미쓰비시중공업, #도카이지진, #야스쿠니신사,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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