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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의 줄거리 일부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 포스터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 포스터 ⓒ 소나무픽쳐스


범인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실제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최신 영화·드라마의 범인으로 자주 출몰하는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 위장을 잘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과 나쁜 짓을 일삼으면서도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잘 섞여 지내며 자신을 포장할 줄 알기에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범죄 행각을 미연에 알아차리고 방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해,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소시오패스형 범인의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변인들에게 인터뷰한 내용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 친구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 , "인사도 잘하고 참 착한 친구였는데..." 범인이 자신을 정말 잘 포장했단 얘기다. 스물 여섯 살의 범인은 주변 이웃들로부터 내성적이지만 인사도 곧잘 하며 자신의 일에 성실한 청년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범인, 로버트 한센(존 쿠삭 분) 역시 '소시오패스'다.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그의 겉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만을 골라 변태적으로 강간하고 살해하는 악마의 본성이 숨쉬고 있다. 그 악마가 수십 명에 달하는 여성의 목숨을 앗아 갔다.

수사관 잭 할콤(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한센을 지목하고, 최근에 그에게서 도망쳐 나온 유일한 한 여성인 신디(바네사 허진스 분)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듣는다. 당시 신디의 증언을 무시한 시 경찰은 주변 이웃들로부터 평판이 좋은데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한센을 범인으로 의심치 않는다. 경찰들과도 안면이 있는 걸 보면 아마 경찰들이 의도적으로 그를 보호하는 모양이다.

당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증언을 넘어서는 확실한 증거와 용의자로 지목된 한센의 자백. 잭은 그의 자백을 받기 위해 그 안의 숨어 있는 악마와 싸운다. 악마는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얼어붙은 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1971년부터 1983년까지 알래스카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당시 범인이 저지른 범행의 잔혹성과 치밀함보다는 수사관 잭이 수사를 진행시키며 겪는 은밀한 외압, 부조리, 증인 프로그램의 허술함 등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자체도 어찌 보면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이중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겉은 평범한 범죄 영화의 틀로 포장하고 속은 범죄 영화의 일반과 다르게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생각보다 잔인하거나 불쾌한 범죄 장면 혹은 피해자의 모습 등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센을 용의자로 지목하며 그를 교도소에 잡아넣으려는 잭과 그런 잭을 은근히 방해하는 세력, 이 둘의 알력 다툼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에서 수사관 잭 할콤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에서 수사관 잭 할콤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 ⓒ (주)소나무픽쳐스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프로즌 그라운드', 즉 '얼어붙은 땅'은 1차적으로는 범인 한센이 피해자를 묻은 알래스카의 땅 덩어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2차, 3차적으로는 한센 주위에서 적당한 이해관계를 구축하며 그를 의도적으로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하려는 혹은 이 사건 자체를 덮어버리려는 세력의 묵과를 의미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센과 관련 있는 시 경찰 외에 잭의 수사 진행을 막고자 하는 세력의 은근한 외압(이는 마치 국가 혹은 지역의 안정을 위해 사건자체를 묵살하려는 상부 권력의 작용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얼어붙은 것 같은 수사의 분위기 등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이 가능하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인 일정 범위의 지역. 즉, 차가움으로 견고해진 폐쇄적 사회에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가 자연 발생할 수 있으며 본의 아니게 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은연 중에 경고하고 있다. 한센을 숨겨뒀던 것은 한센 스스로의 재능이 아닌 '내 가족의 안녕, 내 지역의 안녕'을 소망하고 맹신했던 한센의 주변인들이었다. 의심하지 않았기에, 혹은 의심해도 믿지 않았기에 한센은 그 더러운 장막 안에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빵을 팔 수 있었다.

추격전 대신, 디테일과 심리전으로 긴장감 채웠다

냉랭 건조한 분위기의 영화는 잭과 한센, 수사관과 범인의 너무나도 다른 일상(?)을 교차시키며 최후에 이들이 대면하는 클라이맥스까지 긴장감을 고수하려 한다. 잭은 신디로부터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증언과 증거들을 확보하고,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신디를 친구처럼 보호해야 할 의무까지 지게 됐다.

그 사이 한센은 또 다른 범죄를 비슷한 방식으로 저지르며 악행을 반복한다. 이때까지 잭과 한센은 같은 영화에 출연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따로 논다. 불행히도 이런 시간이 영화 안에 꽤 길다. 둘의 대결구도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맥 빠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범죄 영화의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지 않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추격전, 잭이 한센을 추격하고 한센이 잭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가는 식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한다. 한센이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이다. 한센은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심하게는 그런 사실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 인간이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이 경찰을 피할 이유가 없다. 도망갈 필요가 없다.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에서 연쇄 살인범 로버트 한센 역을 맡은 존 쿠삭

영화 <프로즌 그라운드>에서 연쇄 살인범 로버트 한센 역을 맡은 존 쿠삭 ⓒ (주)소나무픽쳐스


소시오패스 한센과 수사관 잭의 대결이 본격화되는 지점은 둘이 얼굴을 맞대고 심리전을 펼칠 때다. 이 영화에서는 이들의 심리전이 범죄 영화의 흔한 액션을 대체한다. 감추려는 자와 들춰내려는 자 간의 치열한 신경전은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쿠삭의 흡입력 있는 연기 덕분에 흥미롭게 완성된다.

인상 깊은 몇 장면이 있다. 신디와 한센이 각자의 집에서 TV를 보는 장면이다. 신디가 보는 TV에는 만화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이 보인다. 거대한 톰을 피해 도망 다니는 제리, 제리는 벽 안쪽에 살짝 숨었다가 톰에게 복수할 때를 기다린다. 제리의 모습이 신디와 닮아 있다.

반대로 한센은 동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악어의 사냥 장면. TV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악어가 돌아 왔습니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네요, 악어의 기이한 행동이 이상하지만 곧 정체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악어는 자연히 한센을 상징한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돌아왔고, 진흙처럼 폐쇄적이고 안일한 지역사회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자신의 악마 본성을 숨기는 데 활용했다. 그리고는 곧 발톱을 드러냈다.

영화는 이처럼 서사 전개 이외에 갖가지 상징을 심어 놓는 데도 정성을 쏟았다. 잭의 수사과정을 따라가며 증거와 범인의 범죄를 연관지어 보는 재미나 한센의 극악무도한 범죄행각의 과격한 묘사는 없지만 대신 다른 것들이 영화를 알차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 무겁고 건조해 장르 영화 특유의 밀고 당기는 극적 긴장감은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것과 한센이 응당 치러야 할 범죄의 대가가 관객의 분노를 해소할 만큼 시원하지 않은 점 등이 아쉽지만,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를 잘 녹여낸 것만으로 이 영화를 볼 이유는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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