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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들개들>의 줄거리 일부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들개들>의 포스터

영화 <들개들>의 포스터 ⓒ 골든타이드픽쳐스

삼류 신문기자 소유준(김정훈 분)은 불륜 선배 기자의 부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사명감에 시작한 기자질, 지금 그에게 남은 건 불륜이 준 상흔과 도박 빚이 전부다.

그는 무작정 강원도로 취재를 떠난 선배 기자를 찾아 떠난다. 그를 죽이고 그의 부인을 본격적으로 차지할 속셈이다. 그가 도착한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면서도, 밤이 되니 막걸리 파티를 열어주는 이중성을 보인다.

선배 기자의 흔적을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잡아떼는 그 곳에서, 그는 우연히 한 집에서 벌어지는 성폭행 사건을 목격한 뒤 마을 남자들 모두가 이 성폭행에 공범임을 알게 된다. '들개들'의 소굴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전북 무주에서 벌어진 '지적 장애 아동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들개들>은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추악하고 부끄러운 사회를 정화하는 데 필요한 서사를 선택했음에도 정작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낡고 서투른데다 게을러 영화 본연의 의미를 유효하게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의감만으로는 좋은 영화가 완성되기는 힘들다는 사실, 2012년 <26년>에 이어 올해 <들개들>이 다시 한 번 입증해냈다. 소재 선택과 이를 영화화한 용기는 좋았으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공분할 만한 현실에 대한 정의감은 좋으나...그게 다다

영화 속 가득찬 정의감, 그리고 현실을 관조하되 과장하지 않으려는 투의 작법과 태도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실제 사건에 충분한 예의를 보이고 있다. 영화는 기자로 등장하는 소유준(김정훈 분)의 시선을 통해서만 관객이 사건을 들여다보게끔 일정부분 사건의 실체와 적절히 거리를 두는데, 그런 장면들에서 이 사건에 대한 감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감독의 이러한 선택으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는 물과 기름처럼 중간 항을 찾기 힘든 모순 관계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진지하거나, 지나치게 가볍고 엉뚱하거나 말이다.

사건 장면과 사건 외 장면으로 구분해서 영화를 들여다보자. 사건 장면에는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앵글과 카메라의 이동을 최대한 배제했다. 이로써 사건에 대한 감독의 진지한 태도가 드러난다. 이에 반해 사건 외 장면들은 스릴러라기 보단 정치 코미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벼운 템포에 어수선한 분위기다.

마을 사람들의 과장된 행동과 이에 반응하는 이방인 소유준. 절대 섞이지 않을, 섞여서도 안 될 이들의 관계부터 어수선한 상황. 이들의 관계가 진행될수록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는 보는 내내 기시감을 자극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어설픈 캐릭터와 부족한 디테일, 스릴러의 활력 불어넣지 못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사건, 내막, 관련 인물 등 모든 것을 흥미롭게 구성해놓고도 시작부터 끝까지 스릴러의 활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데 있다. 다큐에 가까울 정도로 안정감만 있는 앵글, 극적 긴장감을 일으킬 위기 혹은 반전 요소 하나 없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편한 복수 플롯은 관객의 시선을 빼앗기에 미진해 보인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태도가 '정의감'을 넘어서 '착함'이라고까지 여겨질 정도다.

'시골 스릴러'라 불리며 된장이나 감자로도 사람을 죽였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에서 자행되는 복수는 악독하게 당해야 할 상대의 입장에서 너무 쉽고 간편하며 고통스럽지가 않다. 은희(차지헌 분)가 '들개들'로부터 당했던 세월이 얼마인가. 그의 복수는 더욱 잔혹해야 했다. 그래야 관객의 마음도 조금 더 편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문제는 배우들의 연기다. 주인공 소유준 역을 맡은 김정훈은 삼류 기자라는 직업을 어설프게 기른 콧수염과 아무데나 굴러 자도 될 것 같은 야상 점퍼로 표현했을 뿐, 연기로는 표현하지 못했다. 유준은 끔찍한 사건을 여러 번 목격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먼저 다녀간 선배는 사진이라도 찍는 대범함을 보였지만 그는 애써 이를 무시하려 했다. 고구마를 먹고 체하는 장면 등이 그가 마을에서 겪는 일들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전부라 봐도 무방하다.

 영화 <들개들>에서 주인공 소유준 역을 맡은 배우 김정훈

영화 <들개들>에서 주인공 소유준 역을 맡은 배우 김정훈 ⓒ 골든타이드픽쳐스


영화가 애초에 소유준 캐릭터를 두고 '삼류기자에게 사명감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라는 태도등으로 설정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직업이 '기자'라는 것을 보여줄 만한 상황이 적은 점과 배우 김정훈의 연기가 기자라는 직업과 잘 조화되지 않는 부분들은 그를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하게 한다. 이 영화 안에서 그가 해냈다고 할 만한 일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음지에 있던 사건을 수면 위로 들춘 것이 전부. 결과적으로 복수는, 은희가 다했다.

명계남·이재포 등 마을 사람들의 연기는 새로울 것이 없다. 감독의 도식적인 디렉션에 따라 상황에 맞는 감정을 표출할 뿐, 디테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캐릭터는 명확한 설정 없이 수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보일만큼 변별되는 매력이 없다.

명계남은 이 마을의 이장으로서 무시무시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위시되지만, 그 권력의 파워나 크기가 어떠한 지에 대해 가늠할 구체적인 에피소드 하나가 부재하다. 이재포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포는 은희를 최초로 성폭행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소유준의 차를 고쳐주는 데 최선을 다할만큼 이중적인 인간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두 모습을 동시에 연상하여 대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저 영화 안의 그는 기술 좋고 힘 좋은 나쁜 아저씨일 뿐이다.

영화적으로 평범한 선택, 결국 긴장감 주는 데 실패한 '들개들'

실제 사건을 영화화할 때, 특히 이 영화에서처럼 대중의 공분을 폭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건이 영화의 중심 소재인 경우, 대부분의 영화는 실제 사건보다 영화 속 사건을 과장해서 그리며 사실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하지만 <들개들>은 사건을 과장하지 않으며 사건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피력했다. 대신 사건을 제외한 캐릭터와 드라마를 좀 더 편하게 그려내며 상업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장르가 엄연히 '충격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라는데 있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스릴러 특유의 긴장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큰 위기 없이 마을을 잘도 빠져나가고, 복수할 때마다 편하게 성공을 거두는 안일한 전개는 쾌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적으로는 지나치게 평범한 선택인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을 반드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겠다는 감독의 들끓는 정의감과 스릴러 장르를 완성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한데 어울리지 못한 영화 <들개들>. 사건의 실체를 목격하고 싶다면 차라리 관련 다큐나 기사를 찾아보는 것이 낫겠지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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