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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이 북한을 다녀와 1993년에 낸 여행기 제목은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 분단 40여 년 세월 동안 북한에 대한 남한 사회의 선입견과 호기심은 '직접 가서 보니 거기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더라'라는 제목으로 소개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물론 이 원로 소설가는 귀국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의 징역을 살아야 했다. 전 세계 오지 구석구석을 누볐던 바람의 딸 한비야에게도 북한은 그녀가 디딘 지구 위 '아흔 세 번째' 나라여야 했다. 그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아버지의 고향이 함경도였지만, 2005년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 팀장이 되어서야 간신히 가볼 수 있는 오지중의 오지였던 것이다.

이들도 이럴진데, 나같이 평범한 대한민국 소시민에게 북한은 차라리 남극이나 달나라보다 먼 땅이다. 금강산 관광이 열렸을 때는 매일 정신없이 일하던 때라 갈 엄두를 못 냈고 추석이나 설 같은 연휴에는 민족의 명절답게(!) 투어계획이 없다는 안내를 듣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통에 그나마도 불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나에게 북한은 오직 TV나 신문, 잡지를  통해 상상만 하는 나라일 뿐이었다.

며칠 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저스틴이 북한을 다녀왔단다. 설마 싶어 확인했더니 노스 코리아, 그 북한이 맞댄다. 저스틴이라면… 몇 년 전, 동네 학생들의 아지트라 불러도 무방할 우리 아랫집에 살던 호기심 많고 파티 좋아하던 그 친구 아닌가. 대학 졸업하고 고향인 제임스타운(James Town) 공항서 매니저로 일한다는 얘긴 들었지만, 믿겨지지 않았다. 주체사상탑 앞에서 찍은 그의 페이스북 사진을 직접 보기 전까진.

서울에서 북한이 궁금해지다

공원에서 야유회하는 북한 사람들. 맥주병으로 만든 간이 의자 때문에 찰칵~
 공원에서 야유회하는 북한 사람들. 맥주병으로 만든 간이 의자 때문에 찰칵~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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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처음으로 저스틴 케이브 (Justin Cave, 28)를 만났다. 학생 때보다 약간 그을리고 건강해 보이는 얼굴, 영하 30도의 날씨임에도 재작년 서울서 샀다는 한글로 된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대강의 안부를 묻고, 나로서는 언감생심인 그의 북한 여행에 대한 질문이 시작됐다.

- 먼저, 북한은 왜 간 거니?
"궁금해서. 난 지금까지 서른여섯 개 나라를 여행했는데, 그 중 서울이 무척 인상적이었어. 높은 빌딩에 엄청난 차들과 교통 체증 그리고 화려한 밤 문화와 정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게 신기하더라고. 그런데 그 서울서 버스로 두 시간 올라갔더니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그리고 북한이 침략을 위해 몰래 팠다는 땅굴이 있더라. 흥청거림과 전쟁의 긴장이 그렇게 가깝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어. 그때 생각했지. 저 건너편 북한도 가봤으면 좋겠다."  

- 보름 넘게 있었다고?
"지난해 4월 6일에 들어가서 4월 20일 베이징으로 나왔어.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 주간이라고 관광객들을 많이 받지 않은 시기에 운 좋게 간거더라고. 나는 영국에 본사가 있고 베이징에 지점이 있는 고려 여행사(Koryo Tour)를 이용했는데, 찾아보니 도쿄에 있는 우리 투어(Uri Tours)를 비롯해 북한 여행을 취급하는 여행사가 꽤 되더라. 우리 일행은 총 15명이었는데, 대다수가 유럽인이었고 나를 비롯해 미국인이 3명, 호주인 그리고 네덜란드 국적의 한국 아줌마도 한명 있었어.

비용은 1인당 6000달러라 좀 비싸다 싶었는데, 베이징에서 평양 순안 공항을 왕복하는 비행기부터 15박 16일 동안의 숙소, 식대 그리고 이동 비용, 입장료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여행을 마치고는 오히려 싸게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는 북에서 제일 좋다는 양각도 호텔에서 묵었어. 인터넷도 되고 TV 채널도 많고 전망과 시설이 좋더라. 식사도 매끼 북한 전통 음식과 외국인 입맛에 맞게 요리들이 푸짐하게 나와 아주 만족스러웠고.

"강남스타일? 물론 알지"

만수대에서 가이드는 경의 차원의 '목례'를 한다 했다. 하지만 절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우리 팀원들은 각자 판단 하에 행동했다. 사진은 평양 대성상 혁명 열사 능.
 만수대에서 가이드는 경의 차원의 '목례'를 한다 했다. 하지만 절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우리 팀원들은 각자 판단 하에 행동했다. 사진은 평양 대성상 혁명 열사 능.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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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여행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먼저, 대동강 맥주. 난 독일계로 독일에서도 살아봤던지라 술맛을 좀 아는데, 소주 맛은 남한과 비슷했지만 맥주는 이제까지 먹어본 어떤 맥주보다 맛이 일품이었어. 물어보니 동독의 맥주 기술을 전수받은 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사람들. 꼬마들이 우리 일행에게 헬로(안녕), 헬로(안녕)~ 하면서 말을 걸고,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한테 음식 나눠 먹고 놀다 가라고 잡는 거 있지. 이건 외국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잖아. 우리 일행 중 이번 북한 방문이 세 번째인 호주 아저씨가 있었는데, 북한 여행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 분도 북한 사람들의 이런 푸근한 인정을 못 잊겠다고 했어. 그리고 산업 시찰 차원으로 간 함흥도 인상적이었어. 자전거가 많은 가난하지만 깨끗한 도시라는 느낌이었지."

- 북한 사람들하고 얘기도 해봤어?
"통역이 도와주긴 했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어. 북한 사람들도 남한처럼 제일 처음 묻는 말은 '어디서 왔니?' 난 매우 조심스럽게 '아메리카'라고 말했지. 한국전쟁 때부터 미국이 북한의 철천지원수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솔직히 겁이 났거든. 그런데, 그냥 쿨하게 '그렇구나' 그러는 거 있지. 오히려 내가, 너희 아메리카 싫어하지 않아? 하고 물을 정도로. 그랬더니, '싫어하지. 그런데 그건 제국주의 미국 정부지 너희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냐. 특히 관광객은 미국인이 최고지' 그러더라고.

좀 안심이 되더라고. 나중엔 사람들과 친해져서 이런 저런 얘길 하다 혹시 '강남스타일' 아냐고 물어봤거든. 그러자 반가워하며, 아 이거~하면서 따가닥 따가닥 말춤까지 추며 몇 소절을 부르는 거야. 깜짝 놀랐어."

휴대폰 통화하며 평양거리를 걸어가는 군인.
 휴대폰 통화하며 평양거리를 걸어가는 군인.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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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방송도 봤어?
"호텔 방에 있는 TV엔 10개의 채널이 있더라고. 그 중 세 개는 음악, 세 개는 뉴스 채널이었어, 노래방이 나오는 채널도 있었는데, 모두 한국어라 내용은 잘 모르겠어. 그 중 한 채널에서 BBC 월드뉴스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더라. 북한 땅에서 BBC를 통해 보는 북한 뉴스를 보니 좀 묘한 느낌이었어. 좋은 내용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아, 그리고 북한 TV에서 곧 텔레토비(Teletubbies)가 방송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  

- 북한이 유럽과는 친한 모양이야?
"우리 구성원 대다수가 유럽인들었는데, 기본적으로 나 같은 미국인들보다 북한에 대해 덜 경직된 것 같더라고. 북한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유럽 사람들에게 더 호감을 보이고. 나빴던 경우가 많았던 미국-북한과는 달리, 유럽과 북한은 이런 저런 교류가 많았던 모양이야. 독일 맥주 기술이나 이탈리아 정통 피자 식당, 영국 BBC 방송처럼. 우리 통역을 맡았던 미스터 한이라는 친구도 동독에서 태어났대. 그래서 우린 독일말로 대화하기도 했어.

가이드가 그러는데, 일본이나 미국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관광에 제약이 많대. 하지만 유럽은 보다 자유롭게 더 많은 북한 지역을 다닐 수 있고, 중국 관광객은 거의 제한 없이 다닐 수 있대. 나라별 교류의 정도와 북한에서의 자유가 비례한다는 느낌이었어."

- 근데,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 건 아닐까?
"물론 통제도 있었어. 예를 들어, 군사 시설이나 시골 가난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소달구지로 밭을 가는 모습 같은 것은 사진을 안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연신 셔터를 눌러도 그냥 모른 척 하더라.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 태양궁전의 경우, 절대 사진을 못 찍게 한 유일한 곳이었어. 하지만 그곳을 빼고는 우린 별 제약을 받지 않았어.

난 남과 북 양쪽 판문점을 다 가본 몇 안 되는 미국인이 아닐까 싶은데, 오히려 남측에선 사진을 규제하던데 북측은 상관하지 않더라고. 아침, 저녁으로 호텔 근처를 산책 할 수도 있었고 인터넷과 국제전화도 큰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지레 겁먹고 휴대폰을 두고 간 게 좀 후회되더라고."

북한에서 찍지 말았으면 한 풍경이지만, 제지하진 않았다.
 북한에서 찍지 말았으면 한 풍경이지만, 제지하진 않았다.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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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지구상 가장 오래된 위험 지역, 북측 판문점에서.
 현존하는 지구상 가장 오래된 위험 지역, 북측 판문점에서.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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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 나오는 모습이 다일까?'

- 북한을 다녀온 전, 후의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 여행이나 그렇지만 다른 사회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는 것. 김정일 사망 당시, 북한 주민들이 통곡하는 뉴스가 나왔는데, 미국 미디어는 가짜 울음이라고 했어. 하지만 직접 다녀오니 그 해석은 다른 문화의 몰이해에서 오는 왜곡과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덕분에 미디어에 대한 의심이 좀 생겼어.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아는 건 뉴스 화면에 등장하는 일사불란한 군대 사열이나 정교한 카드섹션, 전당대회 모습이 다잖아. 통제되고 억압적이고 개인의 자유나 권리는 없는. 그런데 실제 가서 보니 TV 화면에 나오는 게 다는 아니더라고. '이렇게 다양한 면이 있는데, 왜 그건 안 보여줬지?'라는 궁금함. 더 나아가 지금 미국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시리아나 이집트의 모습도 다는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

- 이런 저런 사건들 때문에, 북한을 간다니 주변에서 말렸을 것 같은데?
"솔직히 북한을 가는 건 가족들이나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괜히 걱정만 끼칠 것 같아서. 역시나 다녀와서 털어 놓으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 미리 알았으면 절대 못 가게 했을 거라면서. 하지만 내가 보고 경험한 얘기를 듣고 나서는 다들 잘 다녀왔네… 하는 분위기가 되더라. 이것저것 신기해하고 궁금해 하면서. 특히, 나의 친할아버지가 많이 놀라셨어. 그 분은 한국전 참전 용사시거든."

손자의 북한 사진에 눈물 흘린 참전용사

평양 전철역의 아침 풍경
 평양 전철역의 아침 풍경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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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라고?
"응. 하지만 다른 참전 용사들과 달리 우리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의 당신 얘기를 거의 하지 않으셔. 가족들조차 당시 경험담에 대해선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 아마도 어리고 가난한 20대 때 전쟁터에서 겪었던 트라우마가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상처로 남은 게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지.

이번에 북한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드렸더니 굉장히 자세히 이것저것 물으시더라. 평양과 함흥에서 찍은 거리 풍경이며 건물들, 북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 내가 만난 재밌던 사람들 얘기를 열심히 들으시더니... 나중엔 눈물까지 흘리시더라고. 할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나도 처음 봤어. 난 우리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코리아를 사랑하고 전쟁을 미워하던 분이었구나 느낄 수 있었어."

손자 저스틴이 다녀온 북한은 그의 할아버지가 그 손자 나이에 내몰려 갔던 땅이다. 손자의 여행은 뜻밖에도 할아버지 안의 오랜 상처를 상기하게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평안해 보이는 그 땅 사람들의 얼굴은 평생 아물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마음에 좋은 연고가 되었던 것 같다. 그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전쟁은 모든 이들에게 상처와 아픔으로 참 오랫동안 남아 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 모두가 피해자로 말이다. 더불어, 우리 땅에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상처들은 언제쯤 아물까 싶어 깊은 한숨이 나왔다.

평양 아이들 사이에 롤러 블레이드가 인기였다.
 평양 아이들 사이에 롤러 블레이드가 인기였다.
ⓒ 저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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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미국 청년 저스틴의 북한 방문은 그에게 많은 질문과 대답을 준 여행 같았다. 미국 사회에 이상한 나라로만 각인된 북한 땅을 직접 밟고 경험한 그는 할 얘기가 많아 보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War(전쟁), Peace(평화), Unification(통일)같은 말은 그래서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내가 만난 많은 (젊은) 한국 친구들은 통일이 되면 귀찮은 일이 많아질 거라 했어. 가난한 북한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한다면서. 그런데 그건 서로 잘 몰라서 생긴 오해(같아). 두 나라는 정말 닮은 게 많거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많이 교류하는 건 중요한 일이야. 두 나라 젊은이들이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

미국의 평범한 20대 젊은이가 안타까운 얼굴로 하는 말에 난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황석영, 한비야를 떠나 더 복잡다난해진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모자랐다.


태그:#북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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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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