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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전시에 걸린 그림이 슬퍼 보이기 시작했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비단 창작의 고통에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아주 없는 상황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현실과 이상간의 사투를 의미한다. 젊은 작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봤다.

황지현 작가(33세)는 동덕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거쳐 현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7회의 개인전과 50여회의 기획·초대전을 비롯해 다수의 강연과 전시 연출 등 왕성한 활동 중이다. 인터뷰는 작년 3월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에서 세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작가의 뜻을 고려, 지금까지의 작업에 대한 매듭을 짓자는 차원에서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다. - 기자말

 2013년作 <Hidden place>앞에 선 황지현 작가.
 2013년作 <Hidden place>앞에 선 황지현 작가.
ⓒ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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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기운을 전하고 싶다.' 낙원(樂園)과 이상향(理想鄕)의 구상과 작업을 해온 작가의 소망이란 이런 것이었다. 이 부분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김양균: 황지현 작가를 두고 Bless Spreader(행복의 전파자)라는 표현을 봤어요. 이것은 종교의 영향인가요?

황지현: 저는 종교화를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신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죠.

김: 처음 들었을 때 사실 좀 오글거렸어요(웃음).

황: 사실 제가 행복을 전한다고 해서 전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스스로 '행복'을 이야기하자는 바람이기도 해요.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서른 전에는 세상의 한 단면만 봤던 것 같아요. 오로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김: 오직 작가의 길만을 추구했던 것인가요?

황: 화가에의 꿈은 한결 같았지만 가능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김: 아주 건전했네요(웃음).

황: 그래도 호기심이 발동하면 우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고집도 세고(웃음).

김: 재수 시절은 암울했다면서요?

황: 대학 진학을 앞두고 덜컥 무서웠어요. 수능을 몇 달 안남기고 미대 준비를 하면서 압박감도 심했죠. 재수라는 게 지금은 별것 아니지만, 그 나이 때 처음 맛보는 실패니까요. 또래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고 연애도 하는데, 스트레스로 여드름까지 돋으니까 죽을 맛이었어요. 자주 울었어요. '대학갈 수 있을까' 그러면서(웃음).

김: 미대 입학 후에 지켜본 작가의 생활은 어땠나요?

황: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벗어나서 '작가 황지현의 길'로 뛰어들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했었죠. 꽤 비장했어요(웃음). 물론 연구를 하면서 저만의 '길'을 발견하는 과정은 즐거웠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전업화가로서 생계에 대한 '답'은 안 나왔어요. 그런 불안감은 대학 내내 계속됐습니다. 선배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업하는 것을 계속 봐왔고, 졸업을 해도 딱히 해결되는 것은 없어 보였어요.

그는 '스스로 만들어 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노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작가로 발을 내딛으면서부터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충돌은 시작됐다.

김: 본인에게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요?

황: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도 살만하다는 말을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것이죠. 고작 저 한 명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요.

김: 맞서는 것보다 차라리 어루만지자?

황: 굳이 선택해야한다고 보지 않아요. 비판을 하면서 어루만질 수도 있으니까.

김: 그림이 아니더라도 표현할 방법은 많잖아요?

황: 무엇보다 그린다는 행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요. 한계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그림입니다.

김: 정말요?

황: 백퍼센트. 그런데 내일이면 그 확신이 깨질 수도 있어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다른 부분으로 채워지죠. 제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훈련하는 순간이 쌓이고 채워지는 그런 종류의 확신이랄까.

김: 관두고 싶은 적 있었죠?

말을 자르고 갑자기 던진 이 질문에 작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자신의 가슴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황: 여기서 매 순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겁니다.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지만 이 길에 대한 걱정, 특히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답답함은 늘 제 안에서 싸우고 있어요. 작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겁니다. 더 깊숙이 탐구하고 싶은 작가의 욕망과 삼십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반쪽짜리 어른의 좌절. 욕망과 좌절의 줄다리기를 버텨내야만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다' 이런 것이겠죠. 작가로 산다는 것은.

 끝나지 않은 길(Gouache, Acrylic on Canvas, 2013)
 끝나지 않은 길(Gouache, Acrylic on Canvas, 2013)
ⓒ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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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충돌 지점, '집'

김양균: 작품 속의 식물과 집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질적인 소재를 붙여 놓은 이유가 있나요?

황지현: 변형된 자연과 그 속의 집. 작품 속의 집은 안식(安息)의 공간이자 탈출하고픈 욕망을 의미합니다. 상반된 욕망이 충돌하는 중간에 위치하는 공간이에요. 동시에 안식의 공간을 얻기 힘든 현실을 꼬집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집을 소유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간이에요.

김: 작가만의 이상향은 어디죠?

황: 마음, 늘 파도에 요동치는 마음이죠. '잘하고 있어'라고 위안하다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렇게 작업한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나'라는 좌절의 반복. 그렇게 흔들리면서 천천히, 그러나 반듯하게 원하는 단계로 가고 싶은 겁니다. 대가를 꿈꾼다는 게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바람이죠. 처음의 열정이나 설렘을 잃지 않고 작업하고 싶은 마음. 그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김: 서서히 만들어가자?

황: 빨리 오면 더 좋고(웃음). 여러 번 떨어지던 공모전에 붙고 그림이 팔려 재료값을 마련한다거나 강의가 들어온다든지.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연구가 작품에 잘 배어져 나올 때 희열이 있죠.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어요(웃음).

김: <끝나지 않은 길(플레이스막, 2012. 10.19~11.1)>전시에서 그 전까지 선보이지 않았던 작업을 시도했어요. 기존 틀을 부수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요?

황: 설치로의 확장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물감을 굳혀 표현한 작업을 보고 주변에서 내심 걱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작업 되겠냐고(웃음). 막상 전시에 선보였을 때 작가들과 예술관계자들의 호응이 좋았어요. 작가로서도 가장 솔직한 전시였다고 봐요.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제대로 폭발시켰다는 점에서.

김: 그런데 이전 작업을 통해 어쨌든 계속 감정의 분출은 이뤄지지 않았던가요?

황: 반복된 작업 과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보여주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답답함도 있었고.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전시 준비하면서 매일 부수는 과정을 반복했고 결국 모든 감정을 완전히 토해낼 수 있었어요. 그 전까지 구축해온 저 만의 세계에서 한편으로 자유롭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고. 이 과정들을 통해 작업 영역의 확장과 함께 재료와 접근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실업자(50x31cm, 다이어리 종이·나무·아크릴, 2012)
 실업자(50x31cm, 다이어리 종이·나무·아크릴, 2012)
ⓒ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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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 전시에서 선보였던 <실업자(50x31cm, 종이·나무·아크릴, 2012>의 에피소드가 재밌더군요.

황: 한번은 친척 어른이 5만 원을 흔들면서 누가 갖겠냐고 말했어요. 그 때 '지현이는 실업자잖아. 쟤 줘'라는 말을 들었죠. 전 자존심에 금이 갔고요(웃음).

김: 그래서 그 돈 받았어요?

황: 일단 받았어요(웃음). '돈을 못 버는 사람=실업자' 라는 논리였는데, 그게 작업으로 이어진 겁니다. 사실 벌지 못하는 작가가 맞으니까 내심 와 닿기도 했고.

김: 실업자보다 센 말을 들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군요. '루저'라든지.

황: 실업자라는 말은 아파요. 결론적으로 작업의 영감을 줬지만, 그래도 역시 이 말은 여러 의미로 슬픕니다.

<실업자>를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의 단어를 매일 노력했던 흔적(痕迹)으로 채웠다'는 구절이 작가노트에 적혀있다. 작가는 일기를 조각내 작품을 메웠다. 차마 인정할 수 없는 '아픈 지적'의 부정을 위한 몸부림이 곧 <실업자>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해졌다.

김: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작가노트에 적었는데, 사실 여기에는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그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황: 작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퇴근한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스스로 컨트롤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가야만 하는 겁니다. 자율적인 창작활동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죠.

김: 만약 손에 문제가 생겨버려서 작업을 할 수 없다면요?

황: 발가락으로 작업을 하겠죠, 아마.

김: 정말요?

황: 왜냐하면 그게 절 행복하게 해 주니까요. 전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작업과 연결될 때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맛봅니다. 환경적인 이유로 작업을 못할 때면 어떻게 해볼까 '잔머리'를 굴려요(웃음). 그래야 행복하니까.

김: 아무래도 작업을 하다보면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는 일도 많지 않나요?

황: 사람들과 섞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으려고 해요. 역시 균형은 중요하니까.

김: 감정의 밑바닥을 치는 게 두려워서?

황: 생각은 갑니다. 다만 돌아오는 법을 알죠.

김: 작품을 즐기는 비법을 알려준다면?

황: 우선 직관적인 감각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궁금한 것은 작가에게 물어볼 것. 관심과 질문, 작품의 공부가 선행되면 더 좋다고 봅니다.

김: 결국 아는 만큼 재밌다?

황: 네.

 Light House(117x73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1)
 Light House(117x73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1)
ⓒ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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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빛 발광식물로 만들어진 등대

김: 푸른 빛 발광식물(發光植物)과 등대, 어떻게 시작된 것이죠?

황: 지친 날이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광판에서 빛나는 식물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말해주는 존재에의 열망(熱望)이 녹아있어요. 동시에 치유 받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작용했고요. 파란색 계열을 많이 썼고, 발광식물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집을 이상향과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김: 색 선택에 대한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황: 어떤 의도를 두지는 않고, 즉흥적이에요. 색에 대한 대략적인 계산을 두기도 하지만 특정 색을 얼마나 써야겠다는 제약은 두지 않아요. 느낌의 흐름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기약할 수 없어요. 흔하게 볼 수 없는 빛나는 식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물론 심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시작한 작업이라 밝은 색은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요.

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황: 그냥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를 두고 '작가는 명료한 이해보다 감성적 전염을 원하는 것 같다'는 평론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김: 이 작품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황: 치유 받고 싶었던 순간.

 Sweet Shelter (80x90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2)
 Sweet Shelter (80x90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2)
ⓒ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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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은신처

김: '달콤한 은신처'보다 '달콤 쌉싸름'이 어울리지 않겠어요?(웃음)

황: 그래요?(웃음) 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서의 '집'은 사실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죠. 작품속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행복하지만 도망치고 싶고, 터놓고 이야기하지만 숨고 싶은, 상충되고 모순(矛盾)된 감정을 표현했어요. 일상생활에서 집에 오면 곧장 방으로 직행해서는 컴퓨터만 보고 있잖아요? 집이란 이렇게 관계의 모순과 연속성을 지닌 공간이죠.

김: 전체적으로 밝고 예쁜데, 가만 보면 어딘가 모르게 컬트영화의 느낌이랄까요?(웃음) 식물의 한 부분이 무너져 있다든지.

황: 마냥 예쁘지만은 않다?(웃음) 사실 그 변형(變形)은 복합적입니다. 약간의 장난기도 있어요. 건드리고 싶은 충동을 닮아있죠. 손에 쥔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보고 싶고 개구리를 꽉 눌러보고 싶은. 꼬여있는 나뭇가지를 보면 꿈틀대는 연상, 그 색을 바꿔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죠. 작업의 시발점인 셈이죠.

김: 안테나와 등불은?

황: 안테나에는 세상으로 쭉 뻗어있는 관심이자 멈추지 않는 호기심을 상징합니다. 잔잔하지만 꺼지지는 등불은 의지(意志)를 뜻해요. 절대로 꺼뜨리지 않겠다는 의지 말이에요.

김: 계단도 자주 등장하는데,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건가요?

황: 어떤 특별한 곳에 도달한다? 그건 아니라고 봐요. 완성(完成)이란 없을지도 몰라요. 다만 끝없이 갈 뿐입니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회사의 승진처럼 어떤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테나를 세워놓고, 불을 꺼뜨리지 않으면서 계단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죠.
김: 작품성과 대중성. 고민한 적 있죠?

황: 대중성의 고려는 어떻게 보면 대중과의 소통(疏通) 의지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작가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의 사랑을 얻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렇지만 저만의 작업을 해 나갈 뿐이에요. 사람들은 휴식을 얻고 싶어 하는데, 제 그림이 너무 자극적이고 피곤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결국 '활력과 자극(刺戟)도 필요하다'로 정리했죠(웃음).

김: 작품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황: 장난스러운 따뜻함, 시끌벅적하지만 싫지 않은 쉼터.

 Twinkle Tree (70x70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2)
 Twinkle Tree (70x70cm, Gouache, Acrylic on Canvas, 2012)
ⓒ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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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나무

김: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버섯이 떠올랐어요(웃음).

황: 작품이 버섯을 닮았을 뿐이지, 제가 버섯을 추구한 건 아니에요(웃음). 이 작업을 하면서 채움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공간의 활용이 한결 자유로워졌어요. 작업의 시작은 사실 '선풍기 난로'였어요. 거기서 온기(溫氣)를 전하는 나무로 확장됐죠. 사실 버섯처럼 독특한 모양의 생물체에 끌리는 것도 있고요.

김: 이를테면 플라나리아와 같은?

황: 네. 그 꼬물대는 생명력 말이죠(웃음).

김: 소재 선택에 작가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황: 무엇보다 작품안의 사물은 우선 제게 '다가오는 것'이어야 해요. 작품 속 빨래를 예로 들자면, 제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엄마가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나풀거리죠. 그 나풀거림에는 향긋한 냄새가 배어있어요. 거기에 따사로운 햇빛이 어우러지면 이내 노곤해져요. 제게 다가오는 소재들이 곧 작품 속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죠.

김: 빨래의 경우에는 더할 나위없는 나른함이군요(웃음).

황: '쉼'이라고 말해 주세요(웃음). 이런 겁니다. 베란다에 햇빛이 오면 바닥에 눕죠. '난 광합성이 필요해'라고 하면서. 그런데 정말 광합성을 한 것처럼 힘이 나요.

김: 아래에 보이는 소용돌이는 뭐죠?

황: 아지랑이의 느낌으로 무엇이든지 일어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허락(許諾)되는 바람, '산타아나스'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것은 계속될 것 같아요.

김: 유독 창문과 문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황: 문, 계단, 끝없는 길, 종착점의 이미지는 제가 작업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빛이 새는 어떤 문에 대한 이미지에요.

김: 한 줄로 정리한다면?

작가는 '눈부신', '빛나는', '꺼지지 않는' 단어를 나열할 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판타지 속 소녀의 감성으로 보이기 싫어서 그러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가의 대답은 명료했다. 소녀의 감성이 뭐 어떠냐는 것이다.

김: 향후 작품은 어떻게 변할 것 같아요?

황: 자연을 통한 이상향에서 조형적인 미학(美學)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아요. 표현의 변화라기보다 그 안의 메시지의 진지함과 의미의 확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김: 그렇지만 결국 긍정에 뿌리를 두고 말이죠?

황: 네.

 작가의 세계는 긍정에 바탕을 둔 채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확장되어 간다
 작가의 세계는 긍정에 바탕을 둔 채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확장되어 간다
ⓒ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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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기자의 뉴스블로그(http://nousvoulons0.blogspot.com)에도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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