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연옥을 연기하는 방송인 유정아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연옥을 연기하는 방송인 유정아 ⓒ 연극열전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는 내로라하는 베테랑 연기자가 대거 참여한다. 그런데 한 배우의 경력이 이채롭다. 방송인 출신 유정아다. 그는 그동안 책을 네 권이나 낸 작가이다. 집필은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연극은 다 같이 한 호흡으로 맞춰 나가야 한다. 유정아는 이번 연극이 처음이 아님에도 출간보다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다음 주에 무대에 서는 그의 모습이 기다려지는 건, 인동초와 같은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나온 연기이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연옥을 연기하는 유정아를 지난 28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 아나운서 출신이라 발음 하나는 자신 있을 것 같다.
"일반인에 비해 발음이 나은 거지, 연극배우에 비해 나은 건 아니다.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키운다. 성량은 크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연극배우는 객석 끝까지 자신의 대사와 연기를 전달해야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말하기를 가르칠 때, '자기의 성대를 제대로 울려보고 죽어야 한다. 큰 소리를 낼 수 있어야 작은 소리를 낼 줄 알지, 너희들이 내는 소리만 내고 일생을 마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가르치던 내가 정작 연습하면서는 소리가 작다는 걸 실감했다. 평소 내가 내는 소리가 작다고 느낀 적이 없다. 이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나야말로 내 성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 <그와 그녀의 목요일> 무대에 서길 잘했다고 느낀 점은.
"아나운서 출신이라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덜할 것이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대사량도 많지만 독백이 많다. 혼잣말이 아니라 '안녕하세요. 저는 연옥이라고 합니다'라는 독백처럼 장이 바뀔 때마다 연옥이 화자가 되어 극 중 상황을 설명한다. 대사보다 편안하다.

연옥은 종군기자다. 아나운서를 해서 언론에 조금 익숙하지 않나 싶다. 위암에 걸리면 통증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조사했지만 종군기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실제로 종군기자를 만나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작아질 것 같았다."

- 아나운서는 사건을 분석하고 보도하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를 분석할 때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방송의 덕이라기보다는 책을 좋아한 덕이 크다. 대본을 읽기 전에는 나름 행간의 미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자부했지만 캐릭터 분석은 어려웠다. 연출가의 디렉션을 받을 때 '이게 이런 의미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문학 서적을 어떻게 읽었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연기하는 연옥은 자기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여자다. 여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학생 운동을 하고 힘겹게 자기가 가진 것보다 조금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연옥의 심리에 감정 이입하려고 애쓴다."

- 상대 배우인 조재현과 정은표, 박철민의 컬러가 다 다를 텐데.
"더블 배역인 정재은씨는 세 배우와 모두 연기하지만, 나는 조재현씨와 연기할 예정이다. 조재현씨는 도회적이고 극 자체에 충실하다. 정은표씨는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연기를 보여준다. 박철민씨는 마당극을 많이 해서인지 재미있는 애드리브가 많고 구수하다."

ⓒ 연극열전


- 아들은 엄마가 무대에 오르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
"집에서 대사를 연습하면 오글거려서 죽을 것 같다고 표현한다. 참아준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엄마에게 새로운 일이 생기면 재미있어하는 거 같다. 친구들과 보러 오겠다는 계획은 세운 거 같다."

- 맨 처음 아나운서를 하게 된 계기는.
"외할아버지가 언론인이셨다. 외할아버지를 존경하며, 소녀 때부터 여기자의 꿈을 품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인 1988년에는 언론사 입사 시험이 없었다. 올림픽에 대비해서 인원을 많이 뽑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나운서 공고가 났다. 이때다 싶어서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프리랜서를 선언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내 외모만 보면 앞날을 개척하는 도전 정신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어떤 일을 선택할 때 해야 할 거 같아서 한 적이 없다. 하고 싶어서 했다. 이성보다 감성적인 판단을 먼저 한다. 당시 두 아들이 1년 반의 간격을 두고 태어났다. 프리랜서로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연극 제의가 들어왔을 때 평소 연극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친구조차 '어떻게 연극을 하겠다고 받아들인 거냐'고 말했다. 초짜인 나를 연출가가 택한 건 내가 무모한 게 아니라 연출가가 무모한 게 아닌가도 생각한다.(웃음)"

-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시민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다.
"경선 전부터 연락이 왔다. 당시 아들이 고3이었다. 고3인 아들을 뒤로하고 경선 캠프에 참여하는 건 어려웠다. 경선을 마치고 대선 후보가 되어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들의 수능이 바로 코앞인데도 4월부터 열심히 활동했다.

투표 결과가 나온 당일에는 눈물과 코피가 한순간에 터져서 피눈물이 났다. 당시 오후 9시~10시 사이였다. 눈물이 터지는 순간, 코피가 함께 터졌다. 대변인을 하기 전에 맡았던 방송은 모두 할 수 없었다. 혹 방송사에서 연락이 와도 간부를 설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맡던 강의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나는 보기와 달리 앞뒤 계산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만에 하나 문재인 후보가 패하면 내 행보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예측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라는 감정에 나를 함몰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때를 보내다가 연극 제의를 받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 연극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연출가의 허락을 받고 문재인 후보 콘서트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 연극열전


- 첫 공연인 8일 이후에는 방송인 유정아가 아닌 연극배우 유정아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연습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나의 자의식을 지우는 일이었다. '이렇게 보일까 저렇게 보일까' 재는 건 몰입을 막는다. 방송인이 연극을 하는 게 궁금해서 찾아오는 관객이 있다면, 방송인으로서의 모습을 모두 버리고 연기자로 판단해 주셨으면 한다."

유정아 문재인 그와 그녀의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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