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일 오후, 교원노조 활동을 하는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반대하는 거리 선전전을 끝내고 간단히 회의를 마친 뒤였다. 보쌈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인 조촐한 식사를 하면서 각자 일하고 있는 학교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교폭력 예방 및 해결 등 기여 교원 승진가산점 부여 추진계획(변경)'(아래 승진가산점제)이 화제로 나왔다.

"말도 마세요. 난리도 아니라니까요."

중학교에서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김갑식(가명) 선생님의 일성이었다.

"어느 정도예요?"

나는 학생부 소속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처럼 들려오는 승진가산점제 이야기가 솔깃했다. 실제 학교에서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학생 생활 지도 한 번 하지 않은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도 가산점을 얻기 위해 신청서를 내고 있다니까요."
"학생부장도 아닌 일반 부서 부장들이 특별히 신청할 수 있는 실적도 없을 텐데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다. 승진가산점제는 학교폭력 예방과 해결에 기여한 교사들에게 교원의 40퍼센트 범위 내에서 0.1점의 승진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교육부의 추진계획상으로는 부장교사나 학생지도 담당, 담임교사 등 원칙적으로 모든 교원이 부여 대상자가 될 수 있다.

학교의 모든 교원이 가산점 신청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증빙 등 첨부자료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인지는 특정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이 서류를 형식적으로(혹은 가짜로) 꾸려 제출할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고 있는 셈이다.

똑같이 고생해도 기간제 교원들에겐 신청 자격 없어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를 점수나 돈과 연계해서 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를 점수나 돈과 연계해서 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 sxc

관련사진보기


'모든' 교원이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말 그대로 '원칙적으로'만 그렇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부' 교원만 신청할 수 있다. 교육부 공문은 교장 및 수석교사와 기간제 교원, 산학겸임교사, 명예교사, 강사 등 계약제 교원들은 승진가산점제 부여 대상자 신청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공무원 승진규정 미적용 교원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각급 학교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기간제 교사 등의 비정규교원들이 부여 대상자 신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전국 중학교의 비정규 교원 비율은 2010년 9.1퍼센트에서 2013년 17.8퍼센트로 늘어났다. 2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고등학교의 비정규 교원 비율도 10.2퍼센트에서 15.7퍼센트로 상당히 늘어났다. 학교 현장에서도 담임이나 학생부 등과 같이 정규 교원들이 기피하는 업무나 부서에서 일하는 기간제 교원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일반 정규 교원과 똑같이 고생하면서도 승진가산점 부여 대상자 자체가 될 수 없다. 신청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승진가산점 부여 여부는 3~7인으로 구성된 학교 내 선정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결정한다. 이 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별 문제가 없겠다. 하지만 학교에 설치되는 각종 위원회의 위원 선임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교무회의에서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심사 과정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은 것이다. 최종 선정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 보면 담임 경력이나 학생부 업무 경력, 부장 경력 등의 정량적인 수치를 통해 기계적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승진가산점으로 주는 '0.1점'은 승진에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점수다. 승진에 관심 있는 교사들로서는 결코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이다. 근무 기피 지역에서 꼬박 1년을 근무해야 얻을 수 있는 점수가 '0.1점'이다. 소수점 두 자리 아래까지 살펴 최종 승진 여부가 결정되는 교원 승진 시스템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나와 얘기를 나눈 김 선생님은 학생부장만 2년째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올해 처음 시행되는 승진가산점제에 신청하지 않았다. 그의 논리는 명쾌했다. 학생부 교사, 아니 모든 교사가 당연히 해야 할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점수화해서 승진에 연계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특히 힘들지만 교육자적인 사명으로 묵묵히 업무에 열중하는 대다수 학생부 선생님들이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가장 크다고 했다.

점수나 돈과 연계해서 일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서 나랑 친하게 지내는 인근의 또 다른 중학교 학생부장인 이을선(가명) 선생님과도 통화했다. 이 선생님은 승진가산점제를 한결 더 강하게 비판했다.

"내가 바로 전날까지 승진가산점제 폐지 서명을 받고 다녔어요. 그런데 어떻게 신청을 해요?"
"그래서 신청하지 않으셨군요?"
"아니, 신청은 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하고 말았지."
"'하고 말았다'니 무슨 말씀이에요?"
"교무부장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러는 거예요. 학생부장이 안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기도 했겠네요."
"사실 처음에 학생부 선생님들은 전체적으로 하지 말자는 분위기였어요. 학교폭력 업무는 학생부의 일상적인 일인데, 승진점수 달라고 신청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죠."
"근데 결국 교무부장의 성화로 신청을 하게 됐다는 거군요."
"네."

그래도 이 선생님이 계신 학교는 양호한 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저런 파행 사례가 적지 않다. 처음에는 학생부 교사만 신청할 수 있었으나, 신청 자격을 '원칙적으로 모든 교원'으로 확대 변경하면서 생긴 일일 것이다. 교육부가, 엄청난 후폭풍이 뻔히 예상되는 제도를 만들면서도 얼마나 졸속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계획을 세웠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승진가산점 부여 대상자는 학교별 교원정원의 40퍼센트로 해야 한다. 인성교육중점학교나 공립대안학교 등은 10퍼센트 범위 내에서 가산할 수도 있다. 상당한 비중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 학교에서처럼 학생부 소속 교사들이 신청을 하지 않으면 40퍼센트를 채우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학교폭력 업무와는 무관한 '엉뚱한' 교사들이 신청서를 내는 경우가 생겨난다. 평소 승진 점수에 목을 매는 교사들에게는 또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겠는가.

조금만 둘러봐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이야기들이 많다. 평소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교사로 찍혀 있는 교사들이 공공연히 신청서를 내기도 한다. 승진 점수를 철저히 관리하는 교사들은 대개 교장 측근인 경우가 많다. 교장이 이들에게 신청서를 내라고 앞장서서 독려(?)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 나이부터 스펙을 관리하고 승진 점수를 챙기는 젊은 교사들이 신청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승진가산점제 신청을 둘러싸고 교사들 간에 싸움질까지 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를 점수나 돈과 연계해서 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대다수 교사는 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업을 하고, 담임을 맡으며, 공개 수업을 한다. 아이들과 상담하고, 학교폭력이 생기면 당연히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애쓴다. 학교가 아이들 전체 성적에 관심을 두고, 아이들이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힘쓰는 것도 학교가 해야 하는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교육부는 그 모든 일상적인 업무들을 점수화하라고 한다. 그 점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책정된 돈을 개인·학교성과급 명목으로 교원과 학교에 뿌려댄다. 승진에 필요한 점수에 가산을 해서 '유혹'한다. 점수와 돈 때문에 교사들 간에 반목과 불화가 생기든 말든 상관 없다는 투다. 성과급 제도는 교장들도 반대하고 있다. 이번의 승진가산점제는 경쟁과 효율을 좋아하는 보수적인 교원단체인 교총마저도 시행을 유보하라며 교육부에 건의서를 제출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서남수 장관의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교원 평가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

나는 자신이 하는 일이 몇 점짜리고, 돈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따지면서 교직 생활을 하는 교사들이 있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당국은 이 '어처구니' 없는 믿음마저도 깨뜨리려 하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히 해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점수와 돈이 걸린 일이 돼버렸다. 점수와 돈에 관심이 없는 교사들이 그런 일을 하면 점수와 돈 때문에 하느니, 승진 때문에 하느니 하며 뒷담화의 주인공이 돼버린다. 사명감을 가지고 힘들게 일하면서도, 보람은커녕 자괴감만 갖게 하는 제도 때문에 대다수 교사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학교폭력의 최일선에 있는 학생부 교사들도 그런 점수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다. 학생부는 학교 내 여러 부서 중에서도 업무가 가장 폭주하는 부서다. 그들은 그 수많은 업무를 수업 시간 틈틈이 해내야 한다. 교사 본연의 수업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들이 최소한의 수업 시수 감경과 같은 배려만으로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교원 평가·승진 시스템 자체를 대대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승진가산점 제도를 강행하고 있는 교육당국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사방천지에서 들려오는 이 아우성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직 승진가산점제가 그 목적으로 표방한 "학교폭력 근절 분위기 조성과 교원의 사기 진작"에 과연 0.1퍼센트라도 기여할 수 있다고 여기는지 말이다. 이 제도가 교육부 어떤 관료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는 학교 현장의 분위기를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일 것이라는 점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승진가산점제 따위로는 0.001퍼센트도 해결할 수 없다. 아이들은 비민주적이고 획일적인 학교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폭력 문화에 노출된다. 비민주와 획일 자체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민주주의와 협력에 바탕한 공동체 문화나,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적인 학교 분위기 속에서 평화와 인권 등의 감수성을 기른다. 사랑과 믿음으로 뭉쳐진 학교에서 학교폭력은 절대 발을 붙이지 못한다. 제발, 교육부의 전향적인 변화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교폭력 승진가산점제, #학생부, #교육부, #기간제 교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