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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로서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나는 얼마전까지 물류업체 대기업에 근무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약 250만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지입차(운수 회사의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 - 택배, 화물차, 대형마트 배달차량)와 관련된 노동자들임을 감안할 때 그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 지난 크리마스날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새벽에 울린 휴대폰

한 택배기사가 배달 물건을 옮기고 있는 모습. 택배기사 차들은 대부분 지입차들이다. (자료사진)
 한 택배기사가 배달 물건을 옮기고 있는 모습. 택배기사 차들은 대부분 지입차들이다.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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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새벽, 휴대폰이 울렸다. 새벽부터 내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칠 사람은 없을 테고, 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특히나 물류업계 실무직에 있는 사람들은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 통화들이 대부분 교통사고나 과적 적발 등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걸려오기 때문이었다. 설마 크리스마스에 사고를? 어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데 눈 때문인가?

팀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고객사의 물량을 새벽에 배송하던 기사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다친 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어쨌든 가야 할 점포에 물건이 가지 않을 것이니 고객사의 클레임에 대해서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이야기였다.

불안했다. 내가 지금까지 7년을 넘게 이 바닥에서 일 해오면서 교통사고를 본 적이 꽤 있지만, 얼마나 다쳤냐는 질문에 즉답이 없다는 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눈이 오면 기사들이 천천히 운행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잦아도 크지는 않는 법인데, 이번에는 기사가 얼마나 다쳤기에 그 상태를 모르겠다는 것인가.

고객사 등에 전화를 걸어 미배송에 관한 일들을 정리해놓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사고 난 기사의 형이었는데, 평소 동생과 함께 그 일을 하다가 오늘만은 다른 일이 있어 나가지 않고 다른 동료가 대신하기로 했었다고 했다.

"여보세요? 기사님? 동생 분 어찌 됐어요? 많이 다쳤나요?"
"어떡하죠? 죽은 것 같아요. 지금 경찰서로 가는 중이에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 놓았다며 요란법석인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집을 나왔다. 그리고 회사에 가서 근조기를 챙긴 뒤 연락 받은 안산의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제발 이 일이 한낱 꿈이기를 바라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길 바라며.

이윽고 도착한 안산 병원의 영안실. 그 곳 풍경은 내가 본 영안실의 모습 중 최악이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서른 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넋이 나간 상태로 서 있었으며, 그 주위를 우리 3살짜리 둘째 쯤 되어 보이는 남아 하나가 뱅뱅 돌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여기 왜 있는 지도 모른 채 그 넓은 공간이 마냥 좋은 아이.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괜히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평소 내 동생 같은 나이에 친분도 있고 해서 대부분의 1톤 차량 기사들이 하고 싶어 하는 새벽일을 선의로 준 것뿐인데, 그리고 그 기사도 몸은 조금 고생이지만 돈은 더 벌 수 있다며 좋아했는데, 그 결과가 이리 처참한 사고로 귀결될 줄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사는 고속도로에 올라 눈이 다 치워져 있었다며 속력을 내었다고 한다. 함께 동석한 이가 약속보다 늦게 나와 센터 입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과속을 한 것인데, 노면이 미끄러운 관계로 차는 뒤집어졌고 기사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상반신이 창밖으로 튀어나와 그대로 차에 깔린 것이다.

시신 부검도 끝나지 않았고, 빈소도 다른 병원에 차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까 영안실에서 보았던 그 꼬마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떠올랐다. 남들은 모두들 기뻐하는 크리스마스, 녀석은 그 날 제사상을 차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운전기사는 회사의 직원이 아니다?

지난해 6월 화물노동자 총파업 출정식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차량에 붙이고 있다.
 지난해 6월 화물노동자 총파업 출정식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차량에 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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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와 계약한 화주의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새벽같이 나왔다가 죽은 기사. 물론 과속을 한 것도,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것도 기사 본인의 잘못이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그가 우리 회사의 일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이 사실에 대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분명 회사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기사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님을, 엄연히 회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일반사업자일 뿐임을 강조했다. 요컨대 지입기사들의 사고에 대해서는 회사가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회사는 기사의 죽음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사람이 죽으면 부의금 명목으로 얼마라도 내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그렇게 되면 오히려 지입기사가 회사 직원으로 오해되어 법적분쟁의 소지가 생긴다며 일절 아무 것도 지원하지 않았다. 나와 팀장 등 관계된 직원들이 낸 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부의금이 전부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기사의 유족은 반발하고 나섰다. 아무리 사업자 등록증을 갖고 있는 지입기사라고 하지만, 어쨌든 운행을 하기 위해 회사가 공고를 내어 기사를 모집하고 차량과 번호판 값을 다 지원해주었는데, 그리고 오로지 같은 회사의 일만을 했었는데 어찌 이 기사를 같은 회사 직원으로 대우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유족들은 회사를 대상으로 고발을 준비했고, 회사는 노무사를 통해 법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절대 지입기사를 직원으로 인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 사건이 선례가 되어 앞으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회사가 모든 걸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입기사가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명절에는 거래처의 개념으로 선물을 줘도 노동절에는 기사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았던 회사 아니던가.

결국 이와 같은 회사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나를 비롯한 관련 동료였다. 죽은 기사의 형은 아직까지도 회사의 일을 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고와 관련된 회사의 방침을 그대로 전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위해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운송 시장의 문제점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회사의 비도덕적인 대응. 그러나 그런 회사를 마냥 탓할 수도 없었다. 물론 내가 그 회사의 소속원인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운송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지입제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기사를 직원으로 고용하지 않고 차량과 번호판을 구매한 기사와 계약관계를 갖는다면, 보험에 드는 비용은 물론이요, 사고 등의 책임 역시 고스란히 기사 개인에게 전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라면 어느 회사가 지입 제도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회사가 영업용 번호를 강제라도 한다면 이는 기사들에게 더욱 불리한 조건이 된다. 영업용 번호판이 시장에서 한정적인 이상 기사들은 대부분 운송사들이 제시하는 영업용 번호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운송사는 여기에 매달 지입비를 부과하며 또한 돌려주지 않는 보증금을 300만 원 정도 별도로 청구하기도 한다.

대형마트 쇼핑몰 상품을 배달하는 차량도 지입차들이 대부분이다.
 대형마트 쇼핑몰 상품을 배달하는 차량도 지입차들이 대부분이다.
ⓒ 이마트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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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영업용 번호가 필수인 대형마트 1톤 냉탑 기사들의 수입구조를 보자. 그들은 대부분 대형마트와 계약관계에 있는 운송사의 지입기사들인데 보통 1개월에 300만 원 정도 받고, 25~30만 원의 관리비 및 지입비, 50~60만 원의 유류비, 15~20만 원의 감가상각비를 지불하여 200만원 안팎의 돈을 지급받는다. 문제는 이 남은 돈에서 자신이 구매한 차량의 할부금이 나간다는 점인데, 그렇게 하면 실제로 기사가 지급받는 돈은 140~150만원에 불가하다.

그렇다면 월 300만 원 정도 받는 1톤 냉탑차량을 운행하느니, 월 500만 원 이상 받는 대형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어떠냐고? 문제는 기사들이 처음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목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대형마트에 지원하는 기사들은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들이 큰 돈을 대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톤 차량이 바로 그들의 최선인 셈이다.

미소금융의 지원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기사들은 결국 비싼 이자를 지불하면서도 운송사에게, 혹은 그 관련 캐피탈에 대출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들 대부분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지나간 뒤 나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물류업에 7년 넘게 종사하면서 그와 같은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취급당하는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자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가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안락은 가장 약한 고리의 사람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잉여가 아닌지.

아내가 임신 8개월이었던 작년 12월. 아이를 임신한 사람은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난 기사의 빈소를 찾았다. 비록 나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지막 길에 인사라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영정에 절을 하고 나자, 기사의 형이 나를 맞이했다. 그는 동생이 나 덕분에 좋은 일자리를 더 얻었다며 즐거워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제수씨와 조카가 한동안 자신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과연 그 아이는 큰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럽고 미안했다. 무엇이 그를 죽인 것이며, 그들은 그렇게 무력하게 눈물만 흘려야 하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민해 본다. 살아남은 자의 몫은 무엇일까?


태그:#지입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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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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