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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제20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제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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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을 만화로 재구성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10년 만에 완간됐다. 지난 7월 하순,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제20권 '망국' 편이 발간됐다.

제19권은 '고종실록 제1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제20권은 '고종실록 제2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20권은 단순히 고종시대 후반기를 다룬 게 아니라 왕조 멸망의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래서 제20권에 붙은 '망국'이란 타이틀이 아주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고종 다음에 순종이 있었지만,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은 고종이다. 순종은 조선이 이미 망한 뒤에 등극한 군주다. 따라서 고종은 망국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학계 일부의 움직임이 있다. 고종이 책도 많이 봤고 세계 흐름도 잘 이해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고종은 유능한 군주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통치자가 보통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보고 세계 흐름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을 갖고 통치자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통치자를 평가하는 최대 기준은 '얼마나 국가를 잘 지켰는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종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 따라서 그를 훌륭한 통치자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점은 '고종처럼 살면 안 된다'는 점뿐이다.

고종, 백성보다 외세의 소리에 주목

자기 백성의 역량을 활용해서 왕권을 강화하는 통치자는 흔히 자주적인 지도자로 불리고, 외세의 역량을 활용해서 왕권을 강화하는 통치자는 흔히 외세의존적인 지도자로 불린다.

고종은 두 번째 유형이었다. 그는 무분별하게 시장을 개방하고 외세를 끌어들였다. 이 때문에 서민경제가 파탄되고 국가 위기가 발생했다. 그는 조선을 외세의 각축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로 인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조선 내부의 움직임이 바로 동학농민전쟁이었다. 이것은 서민대중의 혁명적 역량을 응집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고종은 이런 방식으로 조선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청나라 군대의 힘으로 동학군을 진압하려다가 실패했고, 나중에는 일본군의 힘을 빌려 동학군을 싹쓸이했다.

조선을 구할 유일한 희망인 서민대중의 혁명적 역량은 그렇게 파괴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 무대를 장악했고 결국 이것은 조선의 국권 상실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동학군의 패배는 조선의 멸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고통치자인 고종이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군을 진압하니, 양반 지도층 인사들이 동학군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점은 동학군이 진압된 뒤의 현상에서 잘 드러난다.

동학군이 진압된 뒤에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일본에 대항한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이때 동학군의 잔존 세력도 의병 활동에 가담했다. 그러자 양반 출신의 의병 지도자들은 동학군(만화 본문 표현은 '동비') 출신들을 찾아내서 축출함으로써 자기 부대의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켰다. "반외세 역량의 어이없는 분산이었다"는 제20권의 문장이 인상적이다. 

제20권 100쪽 상단.
 제20권 100쪽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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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권 100쪽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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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권 100쪽 하단.
 제20권 100쪽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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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동학전쟁으로 표출된 서민대중의 혁명적 역량만 분쇄한 게 아니다. 그는 지식인과 상류층이 주도하고 민중이 호응한 독립협회 운동의 개혁적 혹은 혁신적 역량도 탄압했다.

처음에 고종은 독립협회가 주관하는 시국 토론인 만민공동회에 대한 백성들의 참여를 보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그는 독립협회를 이용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협회를 분쇄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결국 고종은 성공했다. 제20권에서는 "황제는 황제권에 대한 집착으로 독립협회가 가진 에너지를 개혁의 자산으로 삼지 못한 채 무너뜨리기에만 급급했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내부의 역량보다는 외세의 역량을 더 선호했던 고종은 동학군을 분쇄한 데 이어 독립협회마저 분쇄했다. 그렇게 그는 조선을 구할 수 있는 내부의 원동력을 모두 파괴하고 말았다.

물론 고종이 백성의 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한때 동학군과 타협을 시도했고 독립협회와도 타협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일시적 위험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위기의 본질을 모색하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충정에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기에 결국에는 두 조직을 철저히 와해시켰던 것이다.

고종은 앞장서서 외세를 끌어들이고 무분별하게 시장을 개방했다. 그리고 외세를 이용해서 자신과 조선의 안전을 기약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내부의 역량을 모조리 파괴하자, 외세는 그에 등을 돌리고 조선을 집어삼켰다. 고종은 백성의 소리를 외면하고 외세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지만,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외세는 결국 조선을 멸망시켰다. 그래서 <고종실록>은 실은 <망국실록>이었다. 

제20권 212쪽 상단.
 제20권 212쪽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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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민보다 외세과의 의사소통에 주력

취임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박근혜 대통령은 벌써부터 고종을 닮아가고 있다. 그는 국민의 소리보다는 외세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국민과의 의사소통보다는 외세와의 의사소통을 훨씬 더 중시한다.

박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에 둔감하다는 점은, 불법 대통령선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도 서해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거짓 주장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고종처럼 대통령직을 고수하는 데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에 둔감하다는 점은, 그가 양극화의 해소를 통한 실질적 국민통합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여 내각을 꾸리고 형식적 국민통합의 외양을 만들어내는 데만 급급한 것이 그의 한계다. 

박 대통령이 외세의 소리에 더 민감하다는 점은,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환수를 연기하려 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5년 이후에도 한국군을 미군에 종속시키고 외세와의 동맹관계를 통해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지휘해야 할 군대를 외국 통치자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 더 외세의존적인 행위가 세상에 또 있을까.

박 대통령은 미국 및 중국 방문에서 나타났듯이 외국 국민들과의 의사소통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다. 물론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한국 대통령이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은 한국민과의 의사소통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은 양극화의 해소를 희망하고 한국 시장의 수호를 희망하고 한국의 정치적·군사적 자주를 열망하며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런 희망사항의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도 고종처럼 국민의 소리를 귀를 기울이는 포즈는 취했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듣지 않고 진심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 어느 문제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이렇게 박 대통령은 외국 국민과의 의사소통에 힘쓰고 외국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데만 힘쓰고 있다. 그의 모습이 고종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근혜실록>이 <망국실록>이 되지 않는 방법은 박 대통령이 고종과 정반대의 행보를 걷는 것뿐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 개국, 개정판

박시백 지음, 휴머니스트(2015)


태그:#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고종,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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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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