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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 된 홈런이 모습. 팔다리가 뿅뿅 나왔다.
 9주 된 홈런이 모습. 팔다리가 뿅뿅 나왔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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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이렇게 큰데 아직까지 모르셨어요?"
"아, 네….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큰 줄은 몰랐어요."
"밖에 사람이 많이 기다리지만 않으면 심장 소리도 들려드리는 건데, 아쉽네요. 제가 이 아기가 생긴 걸 제일 처음 안 사람이네요. 축하드려요."


이것이 내가 아기와 처음 대면한 순간이다. 지난 달 19일,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날이었다. 여의도 건강검진센터 복부초음파 검사실에서 나는 아기와 처음 만났다. 7주차, 1.5센티미터의 아기. 아기라고 하기에는 아직 정말 작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하루 종일 눈물을 참게 한 존재, 나와 남편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이 축복해준 작지만 큰 존재를 그렇게 갑자기 만났다.

나는 부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매일 아이들을 만나며 살고 있었다. 아이들과 사랑의 눈빛을 나누기도 하고 투닥투닥 다투기도 했고, 본성 그대로에 가까운 아이들을 만나며 즐거웠지만, 때로는 괴로움과도 친구가 돼야 했다. 늦은 봄의 어느 날, 아이들과 캠프를 다녀온 후 한 선생님이 물었다. 아이들을 참 예뻐하면서 아기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사실 안 해봤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막 돼가는 때였고, 내가 내 아이를 가진다는 건 지금 만나는 이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 질문을 받고서 아이들이 더 예뻐졌다. 그리고 내 아이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다. 저렇게 예쁜 아이가 내 아이라면 좋겠다. 저 아이의 당당한 모습이 내 아이에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가 결국 나는 한 아이를 붙잡고 "너 같은 아이를 낳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엄마에게 물어보고 와라"는 주문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다섯 살 아이에게.

까닭 없는 구역질과 피로... 그게 다 아기 때문이었다니!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태교 책들. 고맙습니다.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태교 책들. 고맙습니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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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때 즈음 우리 아기가 남편과 나에게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에 대한 생각과 스트레스 때문에 내 몸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늘 지나다니는 출근길에 역한 냄새가 나서 구역질이 날 때에도 '요즘 아침을 자주 안 먹어서 속이 안 좋아졌구나' 했다. 까닭을 모르게 몸이 자꾸 피곤한 것은 '여름이라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가정의 달 행사로 가득 찬 5월과 마을장터 행사가 예정된 6월 그리고 여름방학을 준비해야 하는 7월. 하도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4월 말 이후 돌아오지 않은 월경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몸이 더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결국 일터에 일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나를 돌보지 않다가는 나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다 아기 때문이었다니! 어쩌면 아기가 참고 참다가 이제 그만하라고 내 몸에 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생겼다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는 뭔지 모를 감동이 벅차올라 목이 메어서 시부모님께 직접 말씀도 못 드렸다. 그날 오후 산부인과 병원에서 다시 확인받는 순간에도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미안했다. 아기가 온 것을 일찍 알고 환영해주지 못하고 건강검진센터에서 만나게 된 것, 아기가 자리를 잡는 동안에도 그것을 모르고 몸을 아끼지 못한 것, 아기가 보낸 신호를 알아주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낸 것이 몹시 미안했다.

그리고 요즘엔 두렵다. 여기저기서 태교에 대한 책들을 선물받고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을 책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는데, 출산 과정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 되기' 일기를 써보려 결심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긴 여정 가운데 출산의 고통만이 전부가 아닐텐데, 그 무서움에 사로잡혀 아기와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흐려지는 것이 싫었다.

글을 쓰면서 내 감정들을 보아주고 정리하며 아기와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 홈런이(아기의 태명)를 만나게 될 2014년 3월까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조난당하지 않으면서, 내 중심을 갖고 나와 홈런이, 우리 가족을 존중하면서 홈런이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주 만에 팔다리가 뿅뿅... 가슴이 벅차다

이제 홈런이에게 생명이 생긴 지 10주째다. 심한 입덧도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임신징후도 없고, 아직 아기가 작으니 태동도 없어 내가 임신부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병원에서 심장 소리를 듣고서야 '이렇게 작은 심장이 열심히 바쁘게도 뛰는구나' 하며 홈런이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다. 내가 엄마가 된다는 사실도 아직은 그리 실감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초음파 사진으로 처음 홈런이를 봤을 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역시나 눈물이 날 것 같고, 어느 순간 내가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고 아기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꽤 든든하기도 하다.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엄마와 영양분과 감정을 나눈 것처럼, 이제는 내가 '몸 안의 몸'을 내 안에 담아두고 앞으로 남은 여덟 달 동안 이것저것 잘 나누며 함께 살아야 한다니. 참 가슴 벅차다.

처음 본 초음파사진에서는 어디가 머리고 꼬리인지 알 수 없었던 홈런이. 2주 뒤에 만났을 때는 키도 1센티미터나 더 커졌고 팔다리도 뿅뿅 나와서 'ㄷ'자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 곧 손가락 발가락도 생기고, 조금 있으면 소리도 듣고, 조금 더 크면 양수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나 여기에 있다'고 내 배를 두드리는 순간도 오겠지.

한편 여기저기 유산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홈런이의 생사가 많이 걱정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기가 먼 곳에서 우리에게까지 온 그 여정과 내 배 속에 자리 잡고 10주를 건강하게 자라온 그 생명력을 믿는다. 그 믿음이 아기를 더욱 건강히 살게 할 테니까.

다음 주에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과 식구들을 만나 뵙고 전남 강진으로 가족여행을 간다. 시부모님이 대구에 계셔서 임신한 것을 전화통화로만 전하고 직접 뵙지 못해 마음에 걸린 터였다. 그런데 드디어 홈런이를 가장 반가워하시고 축복해주시는 분들을 뵈러간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다. 아기가 생긴 후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한 이번 강진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생길지도 기대된다. 지금 남편은 나보다 더 들떠 있지만.


태그:#태교, #태교일기, #엄마되기, #임신,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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