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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영산강 시민단체인 영산강 네트워크, 광주환경운동연합이 공동주최해 7월 11일부터 16일까지 5박 6일간 영산강 136km, 350리 전구간을 도보로 돌아봅니다.

2013년 영산강 도보순례는 우리강 도보순례(2005년 섬진강, 2006년 금강, 2007년 한강, 2008년 낙동강) 다섯번째로 열리는 행사로 이번 주제는 '영산강, 생명의 강으로'입니다. 영산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과 함께 대한민국 4대강으로 불리지만, 유일하게 4대강 중 사람이 먹지 못하는 물입니다.

이번 기행을 통해 호남의 젖줄이라 불리면서도, 먹지 못하는 물로 외면 받는 영산강의 현실을 돌아보고 영산강을 다시 생명의 강으로 바꿀 방법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5박 6일 간의 여정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알리고 영산강의 현실을 같이 고민하고자 합니다. 눈 맑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기자 말

영산강 도보순례 5일차 구간(신곡리·느러지전망대·몽탄대교·회산백련지).
 영산강 도보순례 5일차 구간(신곡리·느러지전망대·몽탄대교·회산백련지).
ⓒ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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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통해 '강의 이용'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숱하게 국민에게 보여준 4대강 조감도에는 보를 중심으로 수변 구역에서는 휴식을 즐기고 자전거를 타며 야구, 축구 같은 단체운동을 즐깁니다. 강에서는 수상스키, 요트 같은 수상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어제 승촌보부터 죽산보까지, 오늘 무안의 몽탄대교까지 일부 수변구역에 조성된 야구장 등을 제외하고 강을 즐기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제일 강조했던 자전거길에서 유유히 강바람을 가로지르며 오가는 자전거족 또한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7월 중순, 섭씨 32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일상생활 자체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왕에 조성할 거라면 양쪽에 나무 그늘이라도 있으면 쉬엄쉬엄 강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라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강을 이용하게 권장한 사람들이 제공할 최소한의 편의가 아니겠습니까? 간간이 있는 쉼터는 흔한 가림막 하나 없는 나무 벤치뿐, 그늘을 내어줄 그 어떤 구조물, 자연물 하나 없습니다. 강에 22조 원을 쏟아 붇고 그늘 하나 내어줄 나무 한 그루 없는 4대강 사업, 부시고 퍼내고 다져서 얻은 성과가 무엇입니까?

또 하나 자전거 길 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목포 하구언부터 담양 용소까지 자전거 주파 시간입니다. 9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자전거 경주 선수가 아니고서야 9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강을 즐기는 방식과 시간은 모두 상대적입니다. 누군가는 얼마나 이른 시간에 갈 수 있는가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강과 그 주변의 산과 들을 관찰하고 사색할 여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4대강은 그런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자전거족에게 평균 속도와 그에 비례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보다 그들의 발걸음이 잠시 멈춘 지역에서 강을 중심으로 어떻게 지형은 변화하여 왔고 또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지 설명해줄 표지판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늘 하나 없는 강변에서 한시라도 주저앉아 쉴 곳, 쉴 이유가 없으니 너나할 것 없이 빨리 갈 밖에요.

목포 하구언부터 담양 용소까지 자전거 주파 9시간... 과연 즐길 수 있을까

작은 나무가 만든 한점 그늘에서 도보순례단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도보순례단 휴식 작은 나무가 만든 한점 그늘에서 도보순례단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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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속도와 시간을 빼고 역사와 문화, 그 속에서 강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을까요? 4대강 사업 아니 그 이전에 치수와 개발 중심의 하천 정책의 철학인 속도전과 획일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보를 마치고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무안 화신 백련지 근처 정보화마을에서 가진 '영산강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전남대 박철용 교수님의 강연에서 그 근거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옮기자면, 흔히 초중고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꽃피었습니다. 이집트 나일강, 중국의 황하강,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인도의 인더스강이 그것입니다. 거대한 강이 운반한 수많은 토사와 그 속에 담긴 영양성분이 주변 땅을 비옥하게 하고 그 땅에서 농경과 목축이 이뤄지고 정착문명이 생긴 것입니다.

도착한 숙소에서 전남대 박철용 교수께서 '문명과 강' 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도착한 숙소에서 전남대 박철용 교수께서 '문명과 강' 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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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문명은 거대한 강의 본류 바로 옆에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일강 홍수는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자연의 반복되는 산물입니다. 인류는 함부로 그것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명들은 대신 본류 강에 합류하는 수많은 지류 근처에서 생겼습니다. 비옥함을 받되, 홍수를 막아 거스른 것은 근대 이후 대규모 치수 개념이 생기고 난 다음입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었습니다.

이곳 영산강에는 반남고분군이라는 대규모 유적지가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사적 513호로서 삼국시대 화려한 문명이 자리 잡고 있던 흔적입니다. 고분 안에서 출토된 각종 유품은 그 특징이 백제와 신라와도 달라 그 이전에 존재한 고대 국가의 흔적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남고분군은 영산강과 꽤 떨어진 위치한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듯 빈번한 홍수와 그로인한 지형의 다양한 변화로 인해 본류에는 문명이 자리 잡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황하강과 양자강은 본류에서부터 흘러내린 엄청난 양의 토사를 바다와 만나는 하류 유역에 쏟아 붇습니다. 10년이 지나면 논이 바다로 바뀌고 새로운 대규모 토지가 생길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그것이 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기술에 대한 자신감, 근대 기술혁명의 패러다임은 과감하게 본류의 홍수를 통제하고 이용하려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1970년대 4대강 개발사업이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방식은 전혀 우리 강의 실정과 현실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굽이쳐 흐르지 않고 일직선에 가까운 유럽식 강의 치수 방식을 비판 없이 수용했습니다. 강을 일직선 반듯하게 만드는 직강화와 대규모 보와 제방 그리고 하류의 하구둑은 직선에 가까운 유럽식 강의 특성이고, 서구유럽은 그 특성에 맞는 치수를 해왔습니다. 그 방식을 이식한 결과가 바로 상류와 하류가 동일한 특성을 갖는, 즉 획일화된 강의 모습입니다.

일직선으로 곧은 강은 홍수에 더욱 취약하고 치수는 더 절실해지고, 개발의 불가피성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가 그 불행한 결과입니다.

낙동강의 경천대, 이곳 영산강이 지나는 나주의 느러지처럼 우리 강의 특징은 굽이쳐 흐르는 것입니다. 굽이쳐 흐르며 수많은 모래톱, 하중도, 습지를 만들어내고 지역마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생태계를 구성해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역사를 만들어내는 우리 강의 본 모습입니다.

그런 면에서 4대강 사업은 우리 강의 본 모습을 복원하는 일과는 정반대의 방향의 사업입니다. 속도와 획일화에 매몰되어 굽이쳐 흐르는 강의 본 모습을 간과하였고, 물길이 스스로 만든 모래톱, 하중도, 습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생태적 다양성을 간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이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제라도 치수, 수질, 생태 모든 영역에서 본래 우리 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속도와 시간이 결합된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을 추구하여, 관리가 아닌 순응과 적응이 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스팔트 자전거길 위에서 열사를 피하지 못하고 몽탄대교까지...

영산강 느러지는 굽이쳐 흐르는 우리강의 본 모습이다.
 영산강 느러지는 굽이쳐 흐르는 우리강의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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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한 점 없는 죽산보의 시큼한 물비린내를 맡으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아스팔트 자전거길 위에서 열사를 피하지 못하고 몽탄대교까지 걸으며 도보 순례단은 강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더위에 지쳐 땅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그것이 강을 대하는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하구언에 가까워질수록 갈색에 가까워지는 영산강의 물빛은 절로 고개를 외면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어디를 걸어도 같은 모습, 그래서 궁금증과 호기심이 아닌 빨리 벗어나고 싶은 갈증만 유발하는 영산강의 현실, 그것을 바꾸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태그:#우원식, #영산강, #도보순례, #느러지,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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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우원식입니다. 우리시대 '을'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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