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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상정 과정에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박진 위원장(당시 한나라당)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민주당 위통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봉쇄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따라서 국회 경위들이 회의장 앞에서 위통위원들의 출입을 막은 행위 역시 위법하므로, 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경위들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폭력이 있었더라도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공무원(국회 경위)에게 대항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외통위) 박진 위원장은 2008년 12월 1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상정 등 의사일정에 관한 여·야 간사협의가 결렬되자 간사들에게 이틀 뒤인 18일 외통위 전체회의를 개최해 비준동의안을 상정할 계획임을 통보했다.

또한 비준동의안의 상정을 반대하는 야당 관계자들의 회의장 점거 등 회의 방해에 대비해 국회사무처에 '위원회 회의장 질서유지'라는 제목 하에 국회 경위 및 방호원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회의장 안팎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활동을 수행함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른바 질서유지권 발동이다.

전체회의가 예정된 18일 아침 박진 외통위원장 및 한나라당(새누리당) 외통위원 9명은 야당 관계자들의 회의장 점거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회의장과 내부에서 연결되는 위원장실과 소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위원장 비서실을 제외한 회의실, 소회의실, 위원장실 출입문은 외부에서 바로 들어갈 수 없도록 잠겨 있는 상태에서 경위들이 출입문 앞에 배치돼 있었으며, 위원장 비서실에서 소회의실로 들어가는 내부 출입문도 잠겨 있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이 외통위원장실에 들어갔다가 이런 상황을 확인하고 당일 개최 예정이던 민주당 의원총회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내부에 있던 박진 외통위원장, 새누리당 소속 외통위원들과 국회 경위 등은 유일하게 열려 있던 외통위원장 비서실의 문을 잠그고, 의자와 소파, 책상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출입을 차단했다.

이를 알게 된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및 보좌직원, 당직자 등은 외통위 회의실 앞 복도에서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들을 입장시켜 줄 것을 주장하면서 출입문 앞에 배치된 국회 경위, 새누리당 국회의원 보좌직원, 당직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외통위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기 위해 회의장 출입문 앞에 배치돼 출입을 막고 있던 국회 경위들을 밀어내기 위해 옷을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등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책상, 탁자, 소파 등 집기 및 회의장 출입문이 손상됐다.

이로 인해 국회의원 및 비서관, 당직자 등 9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1심인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김태광 판사는 2009년 11월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공용물건손상 혐의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500만 원을 선고했다.

공무집행방해와 관련, 재판부는 "박진 외통위원장이 회의 개최예정일 2일 전부터 국회 경위 및 방호원들로 하여금 회의장 안팎에서 질서유지를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회의장 출입문을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개폐하도록 하게 하는 내용의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으로서 이는 국회법의 규정에 근거하지 않은 질서유지권의 발동"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위 질서유지권의 발동에 근거한 국회공무원들의 회의장 질서유지에 관한 직무집행은 법률상 요건과 방식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서 적법성이 결여된 만큼, 피고인들이 그들의 옷을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등 폭행을 했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국회 내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어 무겁게 처벌해야 마땅하나, 피고인들이 범행에 외통위원장의 무리한 질서유지권 발동도 하나의 원인이 됐으므로 범행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 야당 당직자들의 경우 소속당의 지침에 따라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서 그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해 공직 또는 당직을 박탈시키는 것은 가혹하다고 판단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인 서울남부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손왕석 부장판사)는 2010년 9월 손아무개씨와 박아무개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손씨와 박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나머지 피고인들의 양형은 유지됐다.

재판부는 "박진 외통위원장이 회의장 점거 등 소란행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국회법에 근거한 조치로서 적법하다"며 "따라서 피고인 손씨와 박씨가 경위들의 옷을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등 폭행한 것은 위원회 질서유지에 관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행위로 원심은 질서유지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피고인들에게 대해 무죄를 선고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민주당 당직자 손아무개씨, 박아무개씨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서울남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박진 외통위원장이 회의장 출입구를 폐쇄하고 출입을 봉쇄해 다른 정당 소속 외통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막은 행위는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질서유지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또 "국회 상임위원회의 의사·의결정족수를 규정한 국회법 제54조는 모든 위원회의 구성원에게 출석 기회가 보장된 상태에서 자유로운 토론의 기회가 부여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누구든지 국회의원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본회의장 또는 위원회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국회의 경호 업무 등을 담당하는 국회 경위가 상임위원회 위원의 회의장 출입을 막는 것은 정당화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며 "회의장 근처에 배치된 국회 경위들이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막은 행위는 외통위원장의 회의장 출입구를 폐쇄하고 출입 봉쇄 등의 위법한 조치를 보조한 행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역시 위법한 직무집행"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당직자로서 그 직무가 국회의원의 의사활동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 소속 정당 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라 회의장 앞으로 소집된 피고인 손아무개, 박아무개씨가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들을 회의장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출입문을 막고 있는 경위들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옷을 잡아당기는 등의 행위를 했더라도, 이는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공무원에게 대항해 한 것이므로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국회 내에서 외통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봉쇄한, 위법한 외통위원장의 조치를 보조하는 국회 경위들의 행위도 위법하다는 점을 밝힌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질서유지권, #공무집행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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