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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선생님, 어제(6월 11일) <오마이뉴스>에 올리신 글(역사에서 사실과 가치에 대하여) 잘 보았습니다. 먼저, 이 글은 선생님 글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이라기보다 선생님께서 제기한 역사에서의 '사실'과 '가치'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 데 취지가 있음을 밝힙니다. 역사적 '사실'과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봄으로써 과거 역사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나 의식을 다시 한번 냉철하게 되볼아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역사 교과서 논란을 촉발한 보수 '진영'(선생님께서는, 혹은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싫어하시리라 생각하는 말입니다만, 지금 문맥이 문맥인지라 어쩔 수 없이 쓰도록 하겠습니다)을 향한 제 나름의 '역사 전쟁'을 좀더 효율적으로 끌어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동어반복적으로 진행될 공산이 큰 논쟁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고 싶겠지만(사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교학사 교과서의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검정 통과로 비롯된 역사 교과서 논란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먼저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이번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대표 필자인 권희영 교수나 그밖의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 그리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는 이번 교과서 논란이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 진보 진영이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어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령 지난 6월 5일 자 <동아일보>의 '홍찬식 칼럼'에서 홍찬식 수석 논설위원은 최근의 역사 교과서 소동이, "일부 매체가 이슈를 제기하고 야당이 받아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은 뒤, 일부 누리꾼이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진보 진영의 여론 몰이가 이뤄지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홍 논설위원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진보 진영이 조직적으로 허위 사실을 동원해 여론 몰이를 하는 것은 '양심 세력', '진실 추구 세력'이라고 자부해 온 진보 진영이 갈 길이 아니라고 부르댑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비유적으로 '역사 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한 이번의 역사 교과서 논란이 결코 '우리'가 먼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경향신문>이 단독으로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국편 검정 통과 사실을 최초로 기사화한 것은 지난 5월 31일자 신문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는 문제의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한국현대사학회와 보수적인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보수적인 <조선일보>가 후원한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중 · 고등 한국사 교과서 분석과 제언"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회의는 2008년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 모임인 교과서포럼에서 펴낸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대안교과서)의 집필진 중 하나였던 김용직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가 맡았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 학술회의가 개최되기 전날인 5월 30일 자 지면을 통해 "지난해 검정을 통과해 올해 중학교 1학년부터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에 여전히 좌편향 문제가 있다."며 이날의 학술회의 내용을 미리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학회 참석 학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중학교 교과서들이 친일 · 반일, 민주 · 파쇼의 대립을 강조하고 보편적 · 헌법적인 가치 대신 이분법적 사관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이 쓴 역사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킨 기관(국편)이 심사한 또 다른 역사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 문제'니 '이분법적 사관'이니 하며 '먼저' 비판한 의도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 스스로 역사 논란을 일으켜 기존의 교과서, 혹은 '그들'의 교과서를 제외한 다른 교과서에 '좌파 종북'이나 '편향'이라는 딱지를 붙여 사람들을 현혹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을런지요. 문제의 그날(5월 31일) 이후, '그들'이 침을 튀기며 내뱉은 말들이 그 정확한 증거들입니다.

예의 학술회의에서, 정몽준 국회의원이 명예 이사장으로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인호 이사장은, "뉴라이트가 교과서를 뒤집으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거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교수는,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이 공유하는 인식이 (기존-기자 주) 역사 교과서 서술의 기본 프레임"이라고 외쳤습니다. 권희영 교수와 함께 교학사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그 며칠 후에 이루어진 한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기존 한국사 교과서가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의 양분법으로 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결국 '그들'이 일제 시대의 근대화나 자본주의화, 60~70년대 박정희 정권하의 경제성장과 반공논리에 좀더 비중을 두는 식으로 역사 서술을 이끌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지요.

그러므로 다시 문제는, 선생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하신 대로, 역사적 '사실'과 '가치'의 구별과 이를 통한 역사 연구, 또는 역사 서술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뉴라이트가 아니면 식민지 시대를 연구하면 안 됩니까? 식민지 시대의 생활사를 연구하면 안 되나요?"라며 궁금하다고 하십니다. 역사 비전공자인 저의 과문 탓이겠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런 '제한'을 말한 적이 없다고 믿습니다. 대체 어느 누가 뉴라이트만 식민지 시대를 연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말이 되지 않지요.

이 대목에 담긴 선생님의 취지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제가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해 보여주는 까닭은, 지난 번 글에 이어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구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번 글에서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 해석의 태도와 지향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가치'의 구별이야말로 역사 해석의 태도와 지향성을 통해 결정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오늘 글에서 이런 점들에 덧붙여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역사 서술의 범위에 포함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과연 '어떤' 사실들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실들이 서술되는 맥락이나 방식, 태도 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분명 2008년 대안 교과서에 '5 ․ 16'은 '쿠데타'로, '5 ․ 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백범 김구에 대한 묘사에서도 '항일 테러 활동'이라는 말을 쓰긴 했으나, 이는 '그들'이 '좌빨 교과서'로 몰아세운 2008년의 금성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조사해보니 금성 교과서는 오히려 '항일'이 없이 '테러 활동'으로만 기술했다더군요). 실제 백범이 <백범 일지>에서 '테로 활동'이라는 말을 썼다고 하니, 두 교과서 모두 '사실'에는 충실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번 봅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역사 교과서에 '5 ․ 16'이 '쿠데타'로 쓰여 있으니 그것이 '사실'에 충실한 역사 서술이라고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그들'은 대안 교과서에서 한치의 가감도 없이 '5 ․ 16'을 '쿠데라'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5 ․ 16'을 "새로운 세력이 국가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한 일대 변혁"이자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이때 "'5 ․ 16'은 '쿠데타'"라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5 ․ 16'은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라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김세중 연세대 교수는, 이런 모순적인 진술이 담긴 2008년 대안 교과서의 집필진 12명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올해 1월 31일 자로 발행된, 한국현대사학회의 학회지인 <한국현대사 연구>(제1권 제1호)에 실린 논문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를 "역사 발전에 커다란 퇴보를 기록한 시기"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표면적 후퇴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또는 심층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근대사회로의 명실상부한 대전환을 준비한 시기"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이곳의 "'표면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와 "'심층적인' 대전환" 중에서 김 교수가 진실로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 않을런지요.

'사실'은 그저 '사실'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것을 최초로 보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말이나 글로 서술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한시도 빈틈없이 '가치'의 조종을 받습니다.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합니다만, 저는 역사에서 '가치'의 자장권 안에 있지 않은 '사실'은 결코 없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 자체보다 '어떤' 사실이느냐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줄곧 '역사 쓰기'에서 사실과, 사실을 확인하는 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는 서로 다른 의견과 가치관이 있지만, 사실과 이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의견과 가치관으로 쓰인 역사 교과서는 자기 멋대로 불온한 딱지를 붙이고 비판을 가하면서도, 자기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에는 눈과 귀를 막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극도의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들' 먼저 '역사 전쟁'을 선포해 놓고, 정작 '역사 전쟁'에 임하려는 '우리'에게는 나중에 책이 나오면 말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레드 콤플렉스'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진보 진영에는 식민지 시대와 뉴라이트에 대해 이런 증상이 없을까요?"라고 반문하십니다. 그러고는 덧붙이고 계십니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마음에 와닿는 말이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말입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말씀하신 레드 콤플렉스나 '식민지 ․ 뉴라이트 콤플렉스'(?)로 부를 만한 것들을 가진 이가 어찌 없겠습니까. 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선생님 말씀처럼, '역지사지'라는 말을 떠올리며 왜 '그들'이 저토록, 억압적인 일제 식민 통치 시대나 강압적인 유신 독재 체제를 "엄정한 학문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발버둥치는지(?) 이해해줘야 할까요. 아니면 예의 '콤플렉스'를 가진 '우리'가 왜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그들'이 이해해야 할까요.

1920년대, 일제가 백화점, 카페, 극장, 댄스홀 등 자본주의의 '사생아들'을 경성 거리에 퍼뜨리기 시작했을 때, 저 머나먼 만주 벌판에서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을 견디며 조국 독립 운동을 하다 스러져 간 애국 열사들을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920년대의 백화점, 카페, 극장, 댄스홀 들이, "일제가 없었더라도 어차피 우리가 했을 일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서술하더라도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제가 예의 '사생아들'을 퍼뜨린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런지요. 그러니 일제가 그것들을 퍼뜨린 것과, 그 똑같은 것들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필요에 의해 받아들인 것 사이에는 당연히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일제가 없었더라도 우리가 했다."는 말은 "그러므로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한 일은 자연스러운 과정의 결과물이다."는 논리로 이어지지 않겠는지요. 저는 이런 논리가 '무서운' 것입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주변 상황을 보니 이번 역사 교과서 논란은 벌써 숙지막해진 듯합니다. 최초 논란의 주인공인 교과서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으니 이는 당연합니다. 진짜 '역사 전쟁'은 아마도 최종 검정 결과가 발표되는 8월 말쯤이나 되겠지요. 그 늦여름의 막바지 열기와 함께 우리들의 '역사 전쟁'이 진정으로 뜨겁게 이뤄지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라이트, #교학사 역사 교과서, #사실, #가치, #역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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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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