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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에 있는 덕수궁 대한문 서까래 아래 꽹과리와 징소리가 요란하다. 스피커를 통해 한국말과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들려온다.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들이 수문장 교대식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진 찍는다. 하루 6만6천여 명의 서울시민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서울시청 앞 광장의 모습이다.

이곳 대한문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작년 4월부터 분향소를 지었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먼저 세상을 떠난 24인을 기리며 자리를 지켰다. 작년 5월 합류해 계속 대한문 분향소에서 지내온 쌍용차 해고노동자 유충렬(45)씨는 "'살 곳이 없어서' 대한문에서 산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대한문에서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24인의 죽은 동료를 추모했던 분향소이자, 그를 포함한 4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 동료가 먹고 잔 집을 10일 철거당했다.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된 자리에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시민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된 자리에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시민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 심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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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계속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대한문에서 기독교 단체와 함께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기도회를 하고, 해고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콜트콜텍, 대우자판과 함께 오후 3시 금융감독원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후 6시 30분 대한문 앞에서 천주교 주도의 정리해고 철회를 기원하는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24인의 영정사진이 쓰레기 차에 실렸다... 화가 났다

쌍용자동차 분향소는 두 번 무너졌다. 지난 4월 4일 화단에서 쫓겨난 뒤, 반쯤 걸쳐진 비닐 아래에서 살아왔다. 그나마 천장이 있었는데 이젠 천장마저 없어졌다.

온종일 바쁘게 움직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유재선(34)씨는 몸이 무겁고 많이 안 좋아졌다고 얘기했다. 그는 "어차피 평소에도 길바닥에서 잤는데 비닐만 없어진 건데요 뭐, 평소대로 잤죠"라고 말했다. 어젯밤(11일) 내내 자리를 지켜준 30여 명의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그는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와서 연대해 줬다"고 말했다. 평소 대한문 분향소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3, 4인만이 밤새 자리를 지켰다.

전날(11일) 대한문 분향소 철거 상황을 물어보자 유씨는 차분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현장을 전했다. 그는 10일 철거 이후 경찰의 압박이 심해졌다며 "지난 4월 4일 철거 때는 병력배치를 안 해서 (가분향소를 만들) '깔판'을 깔 자리가 있었다"며 "이제 불법집회라 규정 짓고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현장에는 3개 중대의 280여 명의 경찰이 순환하며 상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바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바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심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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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해 선거 때 박근혜 대통령이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거 당시에는 표가 필요해서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약속했다가 당선된 뒤에는 부담이 되고,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부담인 것"이라며 "이제 보기 싫다는 게 아닌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자신들이 1년 넘게 지켜온 천막이 뜯기던 장면을 회고하며 윤충렬씨는 "우리 집이 무너져내려 쓰레기차에 실리고 천막이 뜯겨나가는 게 허탈했다"며 "하지만 계속 겪으니까 악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4분의 영정사진을 쓰레기차에 실어 가려고 했을 때 정말 화가 났다"고 회고했다. 경찰은 철거에 항의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6인을 포함해 일반인과 성직자까지 모두 16명을 연행했다.

윤충열씨는 "5월 29일 <꽃보다 집회> 시위를 기점으로 사법부가 대한문 분향소를 불법 폭력집회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며 "이전의 집회마저 불법으로 규정해 버렸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분향소 철거와 관련해 "대한문 앞 쌍용차 범대위 천막과 플래카드 등은 경찰이 불법집회로 규정한 시설물"이기 때문에 "3일과 7일 각각 등기로 계고장을 보냈고 수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10일 철거 전에 계고장을 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도로에 주저앉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곁엔 시민들이 함께했다. 지난해부터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문화제에 참석해 왔다는 맹경숙(54)씨는 쌍용차 해결 촉구 미사를 진행하던 신부가 연행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신부 면회를 위해 은평경찰서에 가던 중 대한문에 들렀다. 그는 "속상한 마음의 표현을 억압하고 무자비하게 잡아가는 건 과거 독재정권과 다를 것 없다"며 "한국에 살기 싫다"고 울화를 터트렸다.

그와 함께 온 방영희(66)씨도 "쌍용자동차 분향소의 노동자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전하며 "근본을 해결해야지 때리고 구타해서 연행하는 건 해결 방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자리엔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다. 모두 철거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이었다. 패널을 들고 인도에 걸터앉은 한 시민은 "어제 미성년자 친구가 코피가 나고 쓰러졌는데도 잡혀들어갔다"며 분노했다. 남궁한(20·녹색당 대의원)씨는 "마치 도둑이 내 집을 털고 가족을 죽인 느낌이었다"며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13일,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로 합법과 불법 갈려

하지만 쌍용차 해고자와 그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을 보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구청장 사퇴하라'고 쓰인 패널을 든 시민에게 "나라를 생각해야지 데모나 하고 다니니까 철거당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윽박지르던 노신사는 "10대 경제국가에서 거지처럼 뭐 하는 짓이냐"고 나무랐다. 중년 여성도 "외국인도 있는데 뭐 하는 짓인지…"라면서 혀를 차며 지나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쌍용차 해고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280명의 경찰중대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무심히 지나갔다.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미사를 위해 음향장치를 설치하려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미사를 위해 음향장치를 설치하려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 심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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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서울 곳곳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활동을 마치고 복귀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3인이 돌아왔다.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진행하는 미사가 시작될 즈음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경찰은 음향장치를 설치하려는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불법'이니 설치하지 말라"며 제지했고 쌍용차 해고자들은 "(미사는 종교활동이니) '불법'이 아니다"며 대응했다. 한동안 고성과 함께 실랑이가 오가고 나서야 음향장비가 설치될 수 있었다.

비와 바람이 거세졌지만,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민 70여 명이 모였다. 그들은 미사가 끝난 이후에도 분향소를 잃고 잘 곳을 잃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다.

현재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남대문서의 집회금지 통고에 대해 금지통고 취소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의 가처분에 대한 판결이 나는 13일, 쌍용차 해고자의 분향소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정해진다.


태그:#쌍용자동차, #분향소 철거, #집회금지,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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