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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국경일인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기념하는 첫 해가 된다. 한글날을 기념할 수 있게 됨은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한글)을 10월 9일에 반포함에서 유래하였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문맹에서 해방되고, 지식의 수준이 급격히 향상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게 됨은 한글의 보급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세종이 백성에게 쓰도록 한글을 반포한 한글날은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해방이후에서 작년까지 국경일로 지정되어 한글날 행사는 진행되어 왔다. 지금까지의 한글날 행사는 세종대왕의 업적과 우리 문자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기리는 일에 치중하였다.

올해부터는 공휴일에 한글날 행사를 치르게 되었기에, 이 행사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일제강점기 한글날 행사를 주관하여 오다가 목숨까지도 잃은 애국선열들의 업적을 기리는 일도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뒷날의 조선어학회)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1926년부터 한글날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일제시기에 한글날 행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아는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장지영, 김윤경, 권덕규, 이병기 등 국어학자들이 주관하였다. 이와 더불어 민족운동 인사들인 안창호, 여운형, 송진우, 김병로, 한용운 등을 포함하여 매년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맞서, 조선어학회가 우리 민족과 민족성을 유지하는 언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자, 일제는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다. 관련 인사 33인을 체포하여 함흥감옥에 수감하여 감옥살이를 시켰다. 일제로부터 고문도 많이 받아 이윤재와 한징이 순국하였다. 이극로, 최현배 등 핵심 인사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야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극로와 최현배의 노력으로 1946년부터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공휴일로 이 날을 기념할 수 있게 되었다.

김윤경, 이중화, 이극로, 장지영, 김병제, 최현배, 정태진의 모습이 보인다.
▲ 1946년 덕수궁에서 한글날 기념식을 마치고 김윤경, 이중화, 이극로, 장지영, 김병제, 최현배, 정태진의 모습이 보인다.
ⓒ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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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는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인사의 대부분에게 독립유공 훈장을 수여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된 인사 33인의 출신지가 전국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서울과 경기도 출신이 10명이다. 서울 출신으로 한징(중구), 장지영(서대문구), 이중화(종로구)가 해당된다. 경기도 출신이 7명인데, 이희승(의왕시), 김윤경(광주), 권덕규(김포), 김도연(김포), 안재홍(평택), 정태진(파주), 이석린(연천)이 해당한다.

경상도 출신이 10명인데, 경북 출신으로 이인(대구), 김법린(영천)이 있고, 경남 출신으로 이윤재(김해), 이극로(의령), 최현배(울산), 윤병호(남해), 이우식(의령), 이은상(마산), 안호상(의령), 정인섭(울주) 등 8명이다.

전라도 출신이 8명인데, 전북 출신으로 정인승(장수), 이병기(익산), 김선기(옥구), 장현식(김제), 권승욱(정읍) 등 5명이다. 전남출신으로 서민호(고흥), 김종철(구례), 김양수(순천) 등이 있다. 충청도 출신이 3명인데, 충북 출신으로 정열모(보은), 이강래(충주)가 있고, 충남 출신으로 서승효(청양)가 있다. 강원도 출신으로 이만규(원주)가 있다. 황해도 출신으로 신윤국(연백)이 있다.

신윤국, 이중화, 윤병호, 최현배, 김양수, 정태진, 정인승, 서민호, 권승욱, 이병기, 김윤경, 이석린, 정열모, 장현식의 모습이 보인다.
▲ 1949년경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어학회 사건 관련 인사들 신윤국, 이중화, 윤병호, 최현배, 김양수, 정태진, 정인승, 서민호, 권승욱, 이병기, 김윤경, 이석린, 정열모, 장현식의 모습이 보인다.
ⓒ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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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인 가운데 몇 분 인물의 업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윤재는 일본놈들에게 단돈 1전도 줄 수 없다고 종로에서 신촌에 있는 연희전문까지 걸어 다니며 민족의 얼을 심어주었다. 한징은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말을 쓰고 조선말을 사랑하는데 무슨 죄가 있느냐?"라고 일제 형사에게 항의하다가 옥사하였다. 이극로는 식민지 조선의 심장부인 서울 종로에서 언어독립운동을 14년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최고의 국어학자인 최현배는 '한글이 목숨'이라는 좌우명을 지니고 우리말의 문법을 집대성하였다. 이희승은 일제시기 민족어 규범 수립에 기여하고 해방 후 국립 서울대학교에 재직하여 수많은 국어학자를 배출하였다. 정인승은 민족문화의 금자탑인 <조선말큰사전>의 완간에 헌신하였다. 정태진은 "말과 글은 민족의 피요, 생명이요, 혼이다"라고 말하며 <조선말큰사전>의 원고를 지키다가 순국하였다.

이중화는 <조선의 궁술>이라는 명저를 남겨 조선 민족의 꺾이지 않는 기상을 드러내고 국어사전의 편찬에 헌신하였다. 이우식은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을 위해 가장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다. 김법린은 '조선어의 쇠퇴는 조선 민족의 멸망을 의미한다.'라고 강론하여 우리말 사랑을 촉구하였다. 이인은 1000여 건의 항일변론을 통해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양수는 조선어 사전 편찬 후원회를 관리하여 주었다.

김도연은 2·8 독립선언의 주역이었다. 장지영은 민족어 규범 수립운동에 기여하였다. 정열모는 청년 학생들에게 조선 독립 운동의 투사가 되라고 말하였다. 김윤경은 민족 구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말과 글이라고 인식하여 언어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만규는 불멸의 <조선교육사>를 집필하면서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역임하였다.

이처럼 전국에 걸쳐 있는 항일투사의 업적을 한글날 행사에 선양하는 일을 함께 한다면, 한글날의 의미가 더욱 빛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지방에는 문화원과 조선어학회 인사의 기념사업회가 활동하고 있다. 예로 들면 이희승과 정인승의 경우 기념관이 있고, 이극로, 최현배, 안호상, 안재홍, 이병기의 경우 기념사업회가 활동하고 있다. 이런 단체와도 협의하여 한글날 행사를 진행하면, 풍성하게 행사를 거행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남 김해의 경우 이윤재 추모 한글 백일장을 한글날에 치르고 있다.

김해 나비공원 안에 있음
▲ 이윤재선생 기념조형물 김해 나비공원 안에 있음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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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경우처럼 우리 말글을 빛낸 자기 고향 출신의 애국선열을 기념하는 '한글백일장'을 열면, 초중고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다. 애국선열이 있는 면사무소와 교육청이 협조하면 '한글날 기념 백일장' 행사도 잘 진행될 수 있다. 

한글날 행사를 주관하는 중앙의 정부 기관(문화체육관광부)은 지방자치 단체와 상의하고, 넉넉하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어 자기 고장을 빛낸 항일독립투사 33인의 업적을 선양해 주기를 바란다. 한글날 행사가 전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진행된다면,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한글날, #세종대왕, #최현배, #한글학회, #조선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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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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