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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사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

10년 전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으로 이사를 할 때이다. 이사한다고 남편은 짐 나르는 것을 도와 줄 친구를 불렀고 나도 동생들이 동원되어 함께 이사짐을 날랐다. 그리고 점심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서 다 함께 신문지를 깔고 나눠 먹었다.

요즘 이사에는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장이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사한다고 친구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은근히 쪼잔하게 보인다. 자기 돈 쓰고 포장이사 부르면 되는 것을 괜시리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포장이사가 없던 시절에는 이삿날 친구와 친지에게 무거운 짐을 날라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한번 도움을 받으면 나도 한번 도움을 주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베풀었던 친절이 나중에 또 나에게 돌아오는 자연스러운 나눔과 상생의 선순환이 분명 우리 삶 속에 존재했다. 돈이 없어도 몸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돈을 쓰고 있는 서비스나 제품들은 우리가 돈으로 때울까? 몸으로 때울까? 라는 선택의 문제에서 돈으로 때우기로 결정한 것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임에도 전문가가 하면 더 낫겠지, 내 손으로 하는 것 보다 이 기계를 쓰면 더 편해지겠지, 친구에게 부탁하느니 차라리 돈 주고 사람을 부르자 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우리는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돈으로 때우는 자녀교육의 한계

특히 자녀를 키우면 부모들은 돈과 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가를 수시로 결정해야 한다. 맞벌이라 직접 키우지 못하니 할머니나 도우미를 쓰는데 양육비를 써야 한다. 함께 놀아주는 대신에 장난감을 사주고, 직접 책을 읽어주는 대신에 책 읽어 주는 선생님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사교육 시장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도 몸이 아닌 돈으로 때우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들은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 전문가에게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말을 거의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내가 돈 벌어서 학원 보내지 내가 내 자식 가르치는 것은 속 터져서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이 과연 옳은지를 정말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위 전문가들이 정말 내 아이를 자식처럼 잘 돌봐 주고 관심을 가져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내 아이는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 중의 한 명일 뿐이다. 선생님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학생들 하나하나를 내 자식처럼 제대로 파악해서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사랑과 관심으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내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는 없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말이다. 내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덮어놓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물론 직접 아이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열불도 나고 속도 뒤집어 질 수 있다.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못하지, 머리가 나쁜가 별별 생각이 다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면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알 수가 있다. 내 아이의 한계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학원에 보내 돈으로 때우면 내 몸은 편하겠지만 그리고 나는 부모 노릇하고 있다고 마음 속으로 안심이 될 수도 있지만 정작 나는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원선생님들이 학부모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자제분이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네요"라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부모가 동의한다고 한다. 이 말은 부모들이 정작 자기 아이들을 제대로 잘 모른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혹시 나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운동, 악기, 영어가 기본? 인성도 학원에서 배울까?

어떤 것들은 돈으로 때울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기본이 운동하나, 악기하나, 영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부모들이 많다. 기본이라 하니 내 아이가 하나라도 빠질까 학원을 보내야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돈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많아져 돈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물론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습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왜 운동과 악기 영어가 아이에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가를 한번 의심해 보자. 정말로 아이에게 운동, 악기, 영어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정말로 아이들에게 기본이 되는 것은 올바른 인성이다. 그런데 이런 인성은 학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돈으로 때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올바른 인성은 부모로부터 배운다. 부모가 몸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학원에 보내놓고 부모 노릇 다 했다고 생각할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식은 돈 보다는 부모의 몸이 더 필요하다.

돈보다 몸으로 때우는 걸 많이 하자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많은 서비스가 생겨났다. 돈만 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혹은 내가 그런 도움을 주기 보다는 가장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즉 돈으로 서비스를 사서 문제를 해결한다. 

일견 이러한 변화를 생활이 더 편리해진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충분히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것도 다 돈으로 때워야 한다. 늘 돈 걱정이 가시질 않는 우리집 살림살이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돈을 적게 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모두 돈으로 구매해야만 하는 현대 도시사회 구조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돈으로 때우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이 일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우리가 직면해 있다. 그러니 돈 걱정에 앞서, 왜 돈을 적게 벌까 한탄하기에 앞서 이제 돈으로 때울 것이 아니라, 몸으로 때울 것이 무엇이 있을 지부터 한번 찾아보자. 어쩌면 돈으로 때우는 것보다 몸으로 때우는 것이 그 결과는 더 좋을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지영 시민기자의 생활경제 블로그(http://blog.naver.com/iamljy)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돈관리, #재테크, #자녀교육,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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