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7일 두 건의 상관모욕죄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고등군사법원 재판부가 '변론재개'를 하자고 변호인에게 연락해왔을 때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다. 이미 변론이 종결됐고, 2~3주 뒤에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꽤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장이 두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공언한 터였다. 

하지만 29일 오전 10시 20분부터 시작된 변론재개에서  재판부의 심문은 군검찰의 수사 내용을 재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않았다. 이에 상관모욕죄 사건으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두 현역 군인은 중간중간 묵비권 행사로 맞섰다.

묵비권 행사한 이 중사... 군검찰 "군통수권자 인식 못했다니 황당"

이날 변론재개에서 재판장은 이아무개(29) 대위와 이아무개(34) 중사에게 군검찰 조서를 제시하며 "검찰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모욕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의 '상관'의 개념에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포함되지 않느냐는 논지로 심문을 진행했다.

재판장은 먼저 이 중사에게 "피고인에게 대통령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이 중사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다"라며 "그런 점에서 (국민으로서) 그분의 잘못된 행동 등을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대답했다.

이에 재판장은 "당신은 현역 군인이고 간부다, 그런 지위를 인식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어떤 존재냐?"고 재차 물었지만 이 중사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만 생각했지 다른 지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이러한 이 중사의 답변에 군검찰은 "헌법과 군조직법상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 나와 있는데 이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황당하다"며 "설사 (군통수권자임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유죄로 인정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또한 재판장이 "'쥐새끼' 등의 표현이 대통령을 모욕했다고 해서 군검찰이 피고인을 기소한 것인데 이것이 모욕이라는 것을 인지했느냐?"라고 묻자, 이 중사는 "묵비하겠다"고 맞섰다. 그는 "대통령을 상관이라고 생각하느냐?" "공소사실에 나와 있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동기나 목적이 뭐냐?" 등의 질문에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14년 군생활이 입 다물고 있었던 대가라 생각하니 가슴 아파"

29일 이 중사는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많은데, 우리가 그것을 단번에 파헤칠 수 없지만 그런 의혹들이 제기되면 깨끗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29일 이 중사는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많은데, 우리가 그것을 단번에 파헤칠 수 없지만 그런 의혹들이 제기되면 깨끗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다만 이 중사는 "나도 나라를 많이 사랑한다"고 운을 뗀 뒤,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많은데, 우리가 그것을 단번에 파헤칠 수 없지만 그런 의혹들이 제기되면 깨끗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을 모욕하기 위해서 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 그런 글을 보고 대통령이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거듭 의도성을 부인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쥐새끼' 등의 표현을 쓴 동기도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인가?"라고 비꼬기성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간부로서 일반 군인들이 대통령을 '쥐새끼'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중사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 중사의 변호인인 이재정 변호사는 "이 중사는 최고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정책 등을 비판한 것이지 군수통권자로서 대통령을 비방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지난 2009년에서야 대통령령인 군인복무규율이 개정돼 대통령을 상관에 포함시켰다"며 "이것은 군형법상의 상관 개념이 해석상 모호했다는 점을 반증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중사는 최후 진술을 통해 "14년간 군인으로서 훈련하고 부대중심으로 인생을 살았는데 트위터에 올린 작은 글 때문에 여기에 서 있다"며 "지난 14년의 군 생활이 입 다물고 있었던 대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중사는 "제가 군대를 떠난다면 남아 있는 많은 군인들이 저 때문에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정말 가슴 아프고,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상관모욕죄, 대통령 욕하는 걸 규율하기 위해 존재하나"

임기 5년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로 귀가하며 환영나온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임기 5년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지난 2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로 귀가하며 환영나온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군검찰의 수사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심문은 이아무개 대위에게도 되풀이됐다. 재판장은 군검찰 조서를 보여주며 이 대위가 상관모욕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대위는 "어떤 사건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군검찰실로 데려가 조사했기 때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며 "군검찰의 조사는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 대위는 "대통령을 군통수권자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군형법상 상관모욕죄 대상으로는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간인이 군을 통제한다는 '문민통제원칙'에 따라 군을 통제하는 민간인 최고 상관으로 대통령이 있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왜 기소됐는지 아느냐?"고 물은 뒤, "사실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대통령의 정책이나 입법 활동을 모욕했다고 해서 상관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쥐새끼' '가카새끼' 등 일반인이 들어도 모욕이라고 느낄 만한 표현을 썼기 때문에 군검찰에서 기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 대위는 "군인들이 술집에서 대통령을 욕한다고 상관모욕죄로 잡아가지는 않는다"라며 "트위터도 술집처럼 사적인 공간"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쥐새끼' '가카새끼'라고 비방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느냐?"고 캐물었고, 이에 이 대위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런 이 대위의 대응에 군검찰은 질문을 던져놓고는 "묵비하시라"라고 비꼬았다.

약 1년 동안 이 대위를 변론해온 이재정 변호사는 "군인들이 사석에서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규율하기 위해 상관모욕죄가 존재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고, 이 대위는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 진술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 대위와 이 중사의 상관모욕죄사건 항소심 선고는 4월 둘째 주에 동시에 내려질 예정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 사건들은 모두 대법원의 상고심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태그:#상관모욕죄, #고등군사법원, #이재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