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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로서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다. 다 한 번씩은 불러봤을 거다. 군인은 노동자도 되고 농민도, 선생님도 된다. 나는 운전수로 바꿔 불렀다. 단조의 노래가 다 그렇지만 부르는 목은 비감하고 듣는 귀는 처량해진다. 운전사로 산지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20년이다.

큰 차는 운반비 엄청 받지요?

나는 영월, 제천에서 시멘트를 실어 각지의 레미콘 공장으로 운송하는 벌크시멘트(포대에 담지 않고 그대로 출하하는 시멘트) 트레일러(BCT)운전을 한다. 성남에서 덤프 트레일러 기사를 반 년 남짓 탄 걸 빼곤 계속 그렇게 살았다.

2009년으로 기억하는데 영월에서 아산의 어느 레미콘 공장으로 가는 짐을 싣고 가다 식당에서 1톤 용달차 운전사를 만났다. 빈 벌통을 싣고 자기도 영월에서 아산 가는 길이란다. 이 아저씨가 자꾸 묻는다.

"이렇게 큰 차는 운반비 엄청 많이 받지요?"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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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크니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 무렵 운반비가 1톤당 1 만원이 조금 넘어 26톤을 실었으니 26만 몇 천원이라고 말해줬다(지금도 그렇다). '에이 거짓말' 이런다. 정말이라고, 그럼 아저씨는 얼마 받느냐고 했더니 24만원이란다. 그러면서 운임표를 보여준다. 가로축에 출발지가 빽빽하고 세로축의 도착지와 만나는 칸에 깨알 같은 숫자가 적혀 있는데 영월 아산은 24만원이 맞다. 참 거시기했다. 어째서 26톤을 실은 트레일러의 운반비가 1톤 용달차와 비슷할까? 왜 우리에겐 책받침처럼 생긴 운임표 하나 없는 걸까?

서울 강남터미널에 한 사람이 서 있다고 치자. 부산을 가고는 싶은데 버스비 2만 3천원이 아깝다. 이 사람, 승강장에서 버스 문을 두들기고는 이런다.

"기사님, 빈자리도 많고 나 하나 태운다고 기름 더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1만원에 자리 하나 채워 가시면 안 될까요?"

고속버스 기사가 뭐라고 할까? "가서 표 사갖고 오세요" 이러거나 대꾸도 없이 그냥 갈 거다. 그런데 고속버스가 아니라 트레일러라면 어떻게 될까? 또 5톤에서 25톤까지의 카고(적재함이 있는 화물차량) 트럭이라면?

내가 처음 트레일러 기사를 타기 시작한 게 1993년쯤이다. 기억나는 건 그 무렵 경유가 리터 당 200-300원 대였고 타이어 한 짝이 10만 원, 단양 성신양회에서 부천 레미콘 기지까지의 운반비가 1톤 당 1만 2500 원이었다. 그 무렵의 운행일보 가지고 계신 분들은 뒤져봐도 된다. 그러나 뒤져보나마나 하나도 안 올랐다. 기름 값이 몇 배, 타이어 값이 몇 배 올랐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물가가 떨어지는 것 봤는가.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이거나 혹은 떨어진 물가가 있다. 이게 대한민국의 화물 운송비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이 손님을 한 번 태워준다. 이 손님,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한 술 더 뜬다. "나 아니라도 어차피 올라 갈 거, 8000원에 좀 갑시다."  이게 몇 번 거듭되면 이 손님은 이제 국가적 낭비 어쩌고 당신 아니라도 갈 차 많다, 위세 당당해진다.(호칭도 바뀐다.) 어설픈 비유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화물시장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화물은 두 가지로 나눠지게 되었다. '똥짐', 그리고 '똥짐 비스무레한 짐'. (기자주 : 주인이 다른 짐을 화물차주들은 똥짐이라고 표현한다.)

자꾸 변스러운 얘길 하는 게 유감이지만 세상엔 '똥쟁이'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면전에 대고 발음하면 사장님들 언짢아하시지만 알선, 주선 면허를 가진 운수업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얼마의 '똥' 을 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서너 단계를 거치며 사이좋게 원래의 단가에서 30%쯤을 떼어 나눠드신다는 게 이 바닥의 정설이다.

내가 요즘 다니는 영월 용인 구간을 한번 보자. 편도가 124킬로미터. 상하차 시간 포함 한 번 왕복하는데 6시간. 운임이 1톤 당 9140원, 26톤을 적재하면 23만 7000원이 된다. 이걸 하루 두 번, 25일 운행하면 1188만 원이 된다. 한 회전 당 유류비가 90리터 곱하기 1750원=15만 7500 원, 곱하기 50 하면 4500 리터, 금액으로 787만 5000원이 된다. 이게 한 달 매출과 기름 값이 되는데 운반비에서 기름 값을 빼면 계산 편하게 400만 원쯤이 남는다(사실 이 정도 짐은 요즘 벌크 시멘트 운송시장에선 나름 '참한' 편에 속한다)

여기에서 차량에 들어가는 소모품, 타이어, 오일, 라이닝, 기타 고장 수리비가 월 평균 120만원 정도, 이건 4308 리터를 땠을 때 정부가 돌려주는 유가환급금으로 메우면 얼추 맞는다. 부가세는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어차피 토해내야 하는 돈이니까. 지입료, 보험료가 월 40만원, 길바닥에 까는 경비와 식대가 50만원, 각종 공과금, 분담금, 혹은 과태료 등이 월 10만원, 이렇게 빼면 수익금이라고 해야 할 몫이 300만원으로 준다.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는 사람들

시멘트 공장에 작업을 하기 위해 늘어서 있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시멘트 공장에 작업을 하기 위해 늘어서 있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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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마지막으로 계산해야 할 게 차량 대금이다. 할부가 있는 차량은 할부금(사실은 여기에 차량 감가상각비를 더 빼야 한다), 기타 은행이나 캐피탈에서 대출 받은 금액을 뺀다. 나는 차를 바꿀 때 은행에서 대출 받은 게 있으므로 월 90만원을 덜어놓는다. 이럼 210만원이 남는다. 하루 열 두 시간, 주 당 72 시간을 일했을 때 이렇다. 그러나 여름 장마, 겨울 혹한기를 합쳐 1년의 2달은 거의 일이 없다고 봐야 한다. 20년을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하루에 용인 두 개씩 한다고 하면 동료들은 웃는다. 부러워서가 아니다. 이거 사실 일도 아니다. "닐니리 빵빵, 놀아가면서 하네, 차 정리하고 다른 거 하지" 이런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만약 차에 큰 고장이 나거나 사고라도 나면 저 수입으로는 복구할 길이 없다. 새 차는 더 머리 아프다. 저 계산 어디에 할부 200-300만원을 끼워 넣을 여지가 있는가. 수입을 늘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집에 안(혹은 못) 들어가고 몸으로 때우는 것. 그래서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을 차에서 지내는 '독사' 같은 인간들이 내 주변에 널리고 쌨다. 나는 한 달 해보고 손들었다. 이러니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덤프, 카고, 컨테이너, 평판 트레일러가 다 거기서 거기다. 이게 대한민국 대형 화물차 운전수의 현실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쥐어 짤 뿐. 나는 이게 더 무섭다. 20년을 돌이키면 우리는 이 길로 '이끌려' 왔을 뿐이다. 그 이정표가 '시장의 원리' 나 '보이지 않는 손'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어째서 파업 소리만 나오면 뚝뚝 떨어지던 기름 값이 파업만 끝나면 원위치 되는지? 참 노골적으로 짜고 친다. 20년 전에는 10명에 7-8명이 월급기사였다. 나도 월급쟁이로 출발했으니까. 지금은 10명에 9명이 개인 차주가 되어 법적으로는 사장님이 되었다. 내가 월급쟁이일 때 사장님들은 알선업체가 돼 이제는 전화기와 컴퓨터 하나만 끼고 번호판 장사에 수수료만 떼면 된다. 대량으로 물건을 주는 지입사(대기업)와 알선업체들 아래 있는 화물차주들은 그냥 죽어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파업을 해서 '표준운임제'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노동3권이나 4대보험? 주당 48시간 노동?(주당 40시간이 아니다.) 그런 거 없다. 우리에겐 남의 나라 일이다. 언젠가 아는 동생한테 48시간 노동에 대해 말했더니 얘가 심각하게 이런다.

지난 2012년 6월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운송을 거부하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경기도 의왕시 의왕내륙물류터미널(ICD) 앞에서 열릴 화물노동자 총파업 출정식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차량에 붙이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운송을 거부하며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경기도 의왕시 의왕내륙물류터미널(ICD) 앞에서 열릴 화물노동자 총파업 출정식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차량에 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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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머지 4일은 뭐 해?" 웃자고 하는 얘기니까 웃어라.

깨어있는 인간의 눈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늘 깜빡인다. 그런데 '깜' 에서 '빡' 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질 때가 있다. 눈을 떠보면 차는 몇 백 미터를 혼자 달려왔다. 이게 몇 차례 반복되면 졸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왜? 아직은 별일 없이 잘 지나왔으니까. 이 상태는 이미 졸음이 아니라 수면이다. 그러다 뻑, 소리에 깬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문막 톨게이트 못미처 언덕이 있고 좌로 크게 굽은 길가에 간이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 뒤 옹벽에 길게 긁어놓은 자국을 볼 때마다 나는 별놈의 생각이 다 든다. 졸다가 내가 낸 상처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낸 상처 뿐 아니라 밤새 일하며 달려오다가 졸음 운전으로 낸 상처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나는, 계속 달려도 되는 걸까? 혹시 주차 브레이크 당겨야 할 때가 이미 지난 건 아닐까?

양희은은 지금도 노래한다.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년이라고. 뭐 어쨌거나 10년 남았다. 그런데 지금의 수입을 생각하면 10년, 20년 후에도 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로 달려야 할 것 같다. 그땐 또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까.

덧붙이는 글 | 이정훈 기자는 화물연대 조합원으로, 2013년 1월 1일 발표된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입니다.



태그:#특수고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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