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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가 8년 전 대학교에서 주워 온 유기견의 이름은 자기 이름과 비슷하게 지은 도란이다. 도란이는 온갖 피부병에 걸려 얼마나 많이 떠돌았는지 온몸의 털이 땅바닥까지 닿아 냄새가 심했다. 딸이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도란이 수발은 매일 내가 챙기게 되었다. 그래도 주말이면 작은 아이가 직접 챙긴다.

비오는 날 주워와서 제 저금통을 털어 애견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시켜 제 동생으로 삼은 아이. 도란이를 목욕시키고 뽀송뽀송 말린 뒤 다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는 매 주말, 또는 주중이라도 틈이 나는대로 집으로 내려와 도란이와 산책하고 목욕시키고 올라간다.

"이거 어떻게 넣어가라구? 샴푸랑 옷가지도 넣어 가방이 무겁단 말이야!"
"저번 설날에도 만두 안 가져 가려고 하더니 갖고 가서 잘 먹었다며. 보름날도 명절이니 오늘 같은 날은 사먹기 보다는 집 밥 넣어 가서 먹는 게 좋아! 속이 따스하고 든든한 게 최고야!"

아이는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취나물을 포함한 여러가지 나물과 동태전, 오곡밥 및 아이가 좋아하는 무황태국을 배낭에 챙겼다. 어제는 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내려 오는 시간에 터미널에 마중나가서 태웠다가 오늘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음식 싸주는 것들을 잘 안 넣어 가려고 하더니 독감과 장염으로 링거도 맞는 등 고생을 한참 하더니 집밥의 소중함을 안 것 같다. 아이를 보내고 늘 그렇듯이 묵향뜨락으로 가서 청소를 하고 환기를 시킨 후에 난로도 틀고 음악도 틀고 눈을 감고 먹을 갈았다. 그리고 하다 만 캘리그라피 하나를 수십 장의 종이를 버린 끝에 몇 점 건져 마무리하였다.

아이를 서울로 보내면서 내가 직접 경험하며 당부한 말이 있다. 어떤 목적을 성취해서 행복한 것보다는 그 목적을 향해가는 순간들에 집중하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물론 목적을 성취하면 행복감은 배가 되지만 목적이 성취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공부를 한 순간들은 그냥 그대로 행복한 시간들이라고. 돈은 아무리 모아도 사라지지만 공부한 것은 줄어들지 않는 저금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올해 논문을 써야 하는 아이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뒷바라지하는 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등록금 전액이 면제 되는 조교를 자청했다. 아마도 올해 아이는 논문과 동시에 조교 역할을 하느라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어 시간 안배를 해야한다. 매 순간 상당한 집중력을 쏟아야 할 것이고 많이 지치고 많이 힘들 것이다.

이런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언가는 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건이 안 좋고 몸에 장애가 있지만 내 나름대로 새로운 학습 기회를 부지런히 만들어 해나간다. 작년에 학부 하나를 졸업하고 그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자격증을 세개를 취득했지만 올해도 나는 예술과 관련된 경영학부에 편입을 했다. 결과를 위한 도전이 아니라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청신경장애로 전정기관에 문제가 있어 문서나 어떤 기억들을 잘 잊는다.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를 잊으면 두 개나 세 개를 다시 학습하는 끊임없이 반복이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려고 애를 쓴다. 혼자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하고 혼자서 자료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잘 모르는 주변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대로 내가 머리가 좋아서 또는 공부에 미쳐서 또는 욕심이 많아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머리가 나빠서 또는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그리고 아무런 욕심이 없어서라고 쉽게 말한다. 그럴 때 나는 그냥 웃는다. 왜냐하면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공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이 내 공부하는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며칠 전 아이에게 한밤중에 문자가 왔다.

"엄마! 서울에서 일이 안 풀리고 답답할 때가 많지만 문득 참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한 것 같아. 그게 다 엄마덕분인 것 같아. 할 수 없다는 편견을 세상이 엄마에게 가져도 하나 하나 멋있게 해나가는 엄마가 내 곁에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들어. 힘들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도 결국은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하게 되니깐."

무척 고마웠다. 아이가 초등학교때 이혼가정이 되었다. 그리고 중증장애엄마, 그 엄마와도 6년을 떨어져 지낸 딸이다. 한때는 자격지심을 감추고 자존심과 신경을 곤두세워 사느라 너무나 까칠하고 한때는 남들 눈을 많이 의식하던 아이이기도 했다. "왜 나는 이래야 하나?" 하는 절망 속에서 소중한 내면의 보물에 등을 돌릴 뻔하기도 한 아이다.

떨어져 있을 때 아이가 너무 많이 아픈데도 나는 만날 수가 없어서 밤새워서 난을 치며 기도를 하며 아이의 쾌유와 건강한 성장을 빌었던 적도 있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거나 흐름이 꾸준한 강물일수록 달빛이 그대로 그림처럼 비친다. 아이는 중증장애엄마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 세상을 향한 눈을 바로 뜨기 시작했다. 많이 배워서 아는 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믿고 서로 밀어주는 사랑만큼 세상을 살아가야 행복한 것을 느끼게 된 아이가 고맙다.

며칠 전에는 어떤 공기관의 센터에서 '마음을 움직이라'는 글을 부탁해서 마무리 하니 이번에 수녀님이 부탁한 글은 '사랑샘'이다. 사랑은 실천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가파른 산모양을 배경에 깔고, 낮은 곳을 지향하자는 의미와 항상 마음을 다하여 더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새처럼 가볍게 훨훨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네모 안에 마음 심자 한자와 새모양을 돌에 새겨 찍었다.

오늘 제작완료한 사랑샘
▲ 사랑샘 캘리그라피 오늘 제작완료한 사랑샘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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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사랑샘은 그저 사랑을 나누는 관계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물만으로는 샘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돌멩이들이 있어야 하고 주변에 나무와 풀들도 있어야 한다. 나의 사랑샘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나의 장애이기도 하고 내게 눈물이 나게 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지금 현재 나와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태그:#사랑샘, #엄마와 딸,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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