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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학교라는 제도가 초등학생 학부모 사이에선 제법 화젯거리다. 아예 관심 두지 않는 사람이 외려 적어 보이고, 주변에서 아이를 국제중학교에 보냈거나, 보내려 했거나 한 경우도 상당수다. 듣자니 서울 시내에 있는 국제중학교 두 곳은 서류 전형으로 3배수를 뽑은 후 추첨으로 최종 입학 여부를 결정한단다. 서울시 교육청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몇 해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부쩍 호기심이 동했다. 그냥 '성적순대로'가 아니라 마지막엔 '운에 따라'라니, 새로운 발상이 아닌가?

마침 '선거를 보충하는 추첨제' 제안을 읽은 직후이기도 했다. 가라타니 고진의 어느 글에서 부딪힌 대목이었는데, 대표를 뽑아 결정권을 위임하는,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게 대표들에게 엉뚱한 특권의식을 안겨주기 십상이라는 것이 문제의식의 요체였다고 기억한다. 선량(選良)이라는 말대로 뽑힌 사람들은 자신이 잘나서, 능력이 있어서 결정권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투표로 뽑히는 각종 의원이며 기관장들이 내멋대로식 질주를 일삼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투표를 통해 2~3배수를 뽑되 최종적인 결정은 추첨으로 해보는 편이 어떤가. 추첨제라면 능력 있어 대표 됐다는 환상을 부수는 데 적합할 테고, 의원이며 기관장들에게 조금이나마 겸손을 가르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고 보면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도 본래 추첨제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

국제중학교 입시를 정치에서의 민주주의와 혼동해버려선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추첨'이라는 발상은 흥미로웠다. 중·고등학교 입시가 '뺑뺑이'로 바뀌던 무렵에도 비슷한 생각들을 했을까? '뺑뺑이'와 달리 요즘 국제중학교 식 추첨은 위계 자체를 해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 소식을 듣다 보니, 추첨에 대한 반응이 그리 호의적인 건 아닌 것 같다. 3배수에 들었는데 추첨에서 떨어져버린 학생들은 그 사실을 납득하기 훨씬 힘들어하기도 한단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수긍하겠는데, 마지막엔 운에 맡기라니, 외려 공정치 못해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어른들이 짊어지고 있는 '입시'와 '뺑뺑이' 사이 딜레마를 10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떠맡긴 셈이니, 그걸 다 이해하는 편이 더 이상하겠다 싶다.

원칙이 미덥지 못할 때, '뺑뺑이'만 한 대안이 어디 있나

"준비하시고… 쏘세요!"

'추첨'이라면 주택복권 당첨자를 정하던 그 회전판이 먼저 생각난다.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빙빙 돌아가는 판에 화살을 쏴 숫자를 정하는 과정은, 어린 마음에도 나무랄 데 없이 공정해 보였다. 아파트 분양권을 얻고 동호수를 정할 때, 중·고등학교를 배정할 때, 군 복무 근무지를 정할 때, '뺑뺑이'는 최상의 해결책이다.

성적대로, 실력대로, 하는 원칙이 미덥지 못할 때, 혹은 그 원칙이 적잖은 폐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될 때, '뺑뺑이'만 한 대안이 또 어디 있는가. 허나 한편, '뺑뺑이'만으로 질서가 구성되지 못할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그러니, '실력'과 '운', '경쟁'과 '뺑뺑이'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평형을 잡기보다 우왕좌왕하기 쉬운 게 통례다.

1980년대 초·중반 '뺑뺑이' 한복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선 한 반에 온갖 이질적 분자가 공존했던 그 시절이 참 다행스러웠다. 강북의 공립이었던지라 분위기는 산만했고 입시 성적은 형편없었고 뒤 몇 줄은 제법 불량스럽기도 했지만, 그 덕에 간접적으로나마 세상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걸러진' 혹은 '살균된' 분위기에서 지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막상 경기 북부의 작은 아파트촌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은, 고등학생 시절만큼 확고하게 '뺑뺑이'를 지지하기가 힘들다. 소문만인지, 그래도 험악하다고 고개 젓는 집 근처 중학교에 아이를 보내야겠다고는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다들 딴 길 찾는 대신 공교육을 탄탄하게 하는 게 정도겠지만, 추락해버린 '뺑뺑이'의 세계를 피해 더 나은, 더 안전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게 비단 나만은 아닌 것 같다.

매춘여성이 국회의원 되고(<대한민국 헌법 제1조>) 평범한 공무원이 시장 되는(<7급 공무원>) 그런 상상력은 영화 속의 '뺑뺑이'에서만 가능한 걸까. 입시와 뺑뺑이 사이, 선거와 추첨 사이 또 어떤 실험이 필요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권보드래 기자는 현재 고려대학교에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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