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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쌍계루 겨울 풍경
 백양사 쌍계루 겨울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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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매력은 하얀 눈이다. 특히 눈 쌓인 산길을 걸어가는 감동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겨울 산을 찾는다. 1월 13일, 전남 장성군 백양사로 향한다. 백암산 백학봉이 눈에 선하다. 절 이름도 하얗고, 산 이름도 하얗다. 눈이 온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눈이 남아 있을까?

백양사 가는 길 주변으로 곶감이 늘어섰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벚나무들은 볼품없는 몸뚱이를 지탱하고서 꽃피는 봄날을 기다리듯 줄지어 서 있다. 백양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앞에는 늘씬하게 잘 빠진 소나무들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섰다. 매표소에서 매표를 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갈참나무들이 영화에 나오는 나무거인들처럼 곧 움직일 듯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길 아래로 물을 가둬 놓은 계곡은 얼었다. 쌍계루가 보인다. 양쪽으로 다리가 놓였다. 가운데 볼록 튀어나온 곳에 누각을 세우고 쌍계루(雙溪樓)라는 이름을 주었다. 고려 말 정몽주가 시를 읊었으니 누각의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다리를 건너 백양사로 들어선다

백학봉을 보고 자리잡은 고불총림 백양사 풍경
 백학봉을 보고 자리잡은 고불총림 백양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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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에서 운문암 가는 길. 비자나무 숲이 겨울에도 푸르다.
 백양사에서 운문암 가는 길. 비자나무 숲이 겨울에도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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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82)에 신라 고승 여환선사가 백암사(白巖寺)로 개창하였다. 고려 때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고, 조선 선조 때인 1574년에 환양선사 백양사(白羊寺)라 개칭하였다. 백양사로 개칭하게 된 건 환양선사가 산내 암자인 영천암에서 설법하는데 하얀 양이 산에서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사라졌다는 얘기 때문이다.

7일간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태어났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상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단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고,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절집으로 들어선다. 아기자기한 절집이다. 보통 절집들은 문들을 거치면서 대웅전으로 가게 되는데, 백양사는 여염집에 들어선 것처럼 주변으로 요사들이 있고 담장을 따라 걸어가면 대웅전 마당이 나온다. 아마 백암산 백학봉을 배경으로 절집을 앉히려다 보니 이런 구조를 만들었나 보다. 학이 날개를 편 것 같다는 백학봉이 감싸고 있는 대웅전은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함을 준다.

절집에서 나와 산책로로 들어선다. 백양사에서부터 운문암까지 2㎞ 남짓 편안한 숲길이 있다. 겨울 산행이 아니더라도 걸어갔다 오기에 좋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든 숲길이 지금은 하얀 눈으로 쌓였다. 그렇다고 삭막하지도 않다. 비자나무가 싱싱함을 잃지 않고 길가로 줄지어 섰다.

눈이 쌓인 산길을 걷는다

백양이 설법을 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하 백학봉 바위벽에 자리잡은 약사암
 백양이 설법을 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하 백학봉 바위벽에 자리잡은 약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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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나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천굴
 쌀이 나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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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길을 걷다가 이정표를 만난다. 약사암 오르는 길로 들어선다. 산길은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입구에서부터 커다랗게 보이던 백학봉이 머리 위로 보인다. 백학봉 바위 밑에는 암자가 자리를 잡았다. 약사암이다. 이곳이 백양이 설법을 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약사암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 백양사가 하얀 눈에 지붕선만 보인 채 조용하다. 약사암에서 조금 내려갔다 올라가면 영천굴이 있다. 영천굴에는 석간수가 나온다. 옛날에 영천굴에 수도하는 이가 살았는데 항상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와서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 쌀이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물 한 바가지 떠서 마신다. 겨울이라 시원한 맛이 덜하다. 그냥 좋은 물이라 생각하고 마신다.

수직으로 곧추선 바위벽을 보면서 오른다. 나무 계단길이라 오르기 힘들지는 않다. 난간을 잡고 오른다. 힘들면 쉬었다 가면서 쉬엄쉬엄 오른다. 오르는 길 중간에 등산로에서 벗어난다.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은 바위 줄기를 타고 선다. 바로 아래가 낭떠러지다. 발 아래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산너울이 끝없이 넘실거린다

백학봉 오르는 길에서 본 산너울 풍경. 겨울산 장관을 느낀다.
 백학봉 오르는 길에서 본 산너울 풍경. 겨울산 장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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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봉에서 내려다본 백양사 설경
 백학봉에서 내려다본 백양사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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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봉 정상.
 백학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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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은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숨김이 없다. 산은 하얗고 낙엽이 진 가지들은 짧은 머리털 마냥 하얀 산을 덮고 있다. 바로 아래 백양사가 내려다보인다. 산 속에서 절집이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면 기분이 좋다. 올망졸망한 절집 풍경이 산 속에서 유일한 사람 사는 곳이 된다. 그곳이 낙원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눈 위에 앉았다. 절 입구에서 준비한 동동주를 한 잔 한다. 겨울 신선이 따로 없다.

산이 훤히 보이는 풍경과 마주하면서 산길을 다시 오르고 능선을 따라 간다. 백학봉 이정표가 보인다. 해발 651m. 백암산 정상은 상황봉(741m)이지만 백학봉이 마치 정상처럼 보인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내려선다.

멀리 운문암이 구름 속이 아닌 겨울 산 속에 웅크리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저곳까지 걸어가야 하지만 시간이 많이 늦었다. 백양계곡으로 내려선다. 늦은 산행에 무리하는 것은 겨울에 위험할 수도 있다. 백양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다. 설원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그렇게 내려서니 운문암 가는 길과 만난다.

숲 속에서 넓고 편한 길을 만나기 쉽지 않다. 하얀 눈이 쌓인 산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지난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낸다. 겨울 산길은 마음이 늘어지게 한다.

내려오는 길에 1004번 비자나무를 만난다. 백양사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각자 고유번호를 붙이고 있다. 대접받는 나무들이다. 1004번 비자나무는 두 그루다. 하지만 번호는 하나만 붙였다. 그래서일까? 1004번 비자나무는 추운 겨울에 꼭 껴안고 있다.

백양사에서 운문암으로 이어진 길.
 백양사에서 운문암으로 이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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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고유번호가 붙어있다.
 백양사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고유번호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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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행 안내
- 산행한 길은 백양사-(0.9㎞)-약사암-(0.8㎞)-백학봉-(1.9㎞)-백양계곡-(1.6㎞)-백양사(5.2㎞, 3:30소요)
- 주 등산 코스는 백양사-약사암-백학봉-상황봉-운문암-백양사 또는 꺼꾸로 돌아오는 길이 있다.
- 산행이 힘들면 운문암까지 2.3㎞갔다가 돌아오는 길도 있다. 운문암 가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니 힘들이지 않고 갔다 올 수 있다.



태그:#백양사, #백학봉, #백암산, #비자나무, #겨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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