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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에 결혼을 하고 2006년 4월 이 집에 들어와 6년을 살았다. 그러는 동안 우린 아이들 둘을 낳아 길렀고 이제 큰 아이가 여섯 살 작은 아이가 네 살이다.

3500 올려달라는 말에, 이사를 결심했으나

2006년에 전세금 8000만 원이었던 우리집은 2012년 4월 재계약을 할 때 1억 2천으로 올랐다. 중간에 500만 원을 올려주고 살았으니 이 집에 살려면 35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했다. 그러기는 어렵겠다 싶어 이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동안 전세값은 왜 이리 많이 올랐는지 결국 25평에서 22평으로 집을 줄여 9000만원에 계약금 400만원을 걸고 전세계약을 했다.

다행이 미술학원을 하던 집이어서 미리 짐을 빼주어 이사 들어가기에 앞서 청소도 하고 배관교체 공사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을 줄여서 가야했기에 줄일 수 있는 짐은 다 줄여야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침대도 처분하고 책상이랑 TV받침대는 부평구 재활용센터로, TV는 아빠집으로 보냈다.

짐이 많으면 이사 비용이 추가된다고 해서 온갖 묵은 짐을 다 꺼내서 고물상으로 부지런히 날라 처리했다. 이사 전날에는 준비하는 김에 다 해버리자 하며 천천히 해도 되는 우편물 변경신청을 열댓군데 다 해놓았다. 이사날 가스 끊어달라고 예약하고 인터넷 연결해 달라고 전화해 놓으면서 '와~~ 보통일이 아니다'하며 '내일 잔금 처리하고 이사만 하면 모든 게 완벽해!'하며 쉬고 있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집에 들어오기로한 사람들이 오전 11시까지는 잔금 준비가 어렵다고 연락이 왔다며 보통 이러면 늦어도 2시까지는 될 거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대로 이삿날 아침 8시부터 이삿짐을 쌌다. 11시가 안 되어 우리집에 있는 모든 짐은 이삿짐차에 다 옮겨졌고 11시 쯤 이삿짐차와 사다리차는 이사할 집으로 도착했다. 우리는 점심 식사 먼저 하시라고 하고 이런 저런 다른 일을들 다 처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밥집에 갔다. 그리고 1시가 되었다.

이삿짐 다 옮겼는데,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이사하는 모습
 이사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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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시간까지 우리에게 돈을 주어야 할 세입자는 연락이 없었다. 오후 1시가 넘으니 이삿짐 센터에서 "3시에 이사 예약을 받아 놓은 것이 있어서 지금 짐을 풀지 않으면 그곳 일을 해줄 수 없어 손해가 커서 곤란하다"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부동산에 연락해봤지만 부동산도 "연락이 안 된다, 정확한 대답이 없다"고만 했다.

그렇게 해결되는 일 없이 2시가 되었다. 이삿짐 센터 책임자는 더 이상은 기다리기 어렵다며 우리짐을 이삿짐 보관소에 보관해놨다가 잔금 처리가 되면 짐을 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사비는 이사비대로 다 내야하고 보관소에 들어갔다 이사가 들어가면 이사를 한번 더 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보관소 사용비와 이사비 해서 70만원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둘도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기가 막혀 부동산에 전화해 잔금을 제 때 처리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서는 그쪽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사짐 차는 6년간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세간살이를 싣고 보관소로 떠났다. 그런데 부동산에서 4시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당연히 4시에 잔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었는데 그때부터 황당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에게 잔금을 처리해야 하는 세입자 부부가 번갈아가며 나랑 남편에게 전화를 해온 것이다. 잔금 날짜를 미뤄줬으면 좋겠다부터 4500만원 먼저 받고 나머지 돈은 나중에 받으면 안 되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는 결국 부동산에 모두 모였고 계약을 깰 것인지 아니면 잔금 날짜를 미룰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들은 화요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마련할 수 있으니 그리고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는 모두 책임지겠으니 잔금 날짜를 미뤄달라 했다. 그래서 그럼 4500만원 먼저 내고 나머지 돈은 화요일에 받는 것으로 하자 했더니 이런 저런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지금 4500만원도 사실 없고 화요일에 한꺼번에 처리하겠다고 한다.

5일간의 더부살이...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당장 우리는 오늘이 금요일인데 화요일까지 집도 없이 짐도 없이 아이 둘과 살아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5일 가까운 기간 동안 짐보관소에서 다 녹아 내리고 상하게 될 냉장고 속 음식 생각부터 그동안 이사하기 위해 내가 들였던 품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나갈 세입자와 들어올 세입자끼리 난리가 났는데도 집주인은 바쁘다는 이유로 코빼기 한번을 비추지 않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5일간 가까이 사는 우리 아빠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아빠 집이라고는 하나 우리짐 하나 없이 몸만 들어갔기에 남편은 이삿날 입은 추리닝 그대로 전철타고 출근을 하는 일이 벌어졌고 아이들은 뭔가 잘 못된 걸 몸이 먼저 알아차렸는지 열이 나고 기침, 콧물에 골골 병이 났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저녁이 되어 내일은 내가 열심히 가꾸어 놓은 집으로 이사를 들어가겠구나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우리집 들어오기로 한 사람들 결국 잔금 마련 못했대. 그래서 계약 파기한다고 연락왔어. 우리 내일 다시 원래 살던 우리 집으로 들어가야해. 집주인한테 전화해서 피해받은 금액 물어달라고 했고 집주인이 그러겠다고 했어."

이 험한 꼴을 당해가면서 며칠을 기다려줬는데 결국 계약파기라니. 기가 막혔다. 집주인만 이 사람들이 계약금으로 건 1000만원을 공짜로 번 셈이 되었다. 화요일 아침 원래집으로 들어가는 이삿짐을 쳐다보니 하도 허망하여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은 내가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아도 뺀 짐 다시 집어 넣는 꼴이니 알아서 척척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일을 했다.

이삿짐이 다 들어오고 센터 사람들이 돈을 받고 떠나고 난 뒤 제일 먼저 냉동실을 열어보았다. 냉동실 안은 얼었다 녹은 음식물이 질질 흘러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시어머님이 챙겨주셨던, 얼려서 아껴먹으려했던 귀한 음식들도 다 먹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나름 커다란 볼에 음식물을 버리다가 이걸로 될 일이 아니다 싶어 고무 대야를 끌고와 음식을 버렸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 구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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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중개수수료 벌고, 집주인은 계약금 벌었지만...난?

대야 안을 가득채운 음식을 보며 속이 상하고 분통이 터져서 푹푹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뻔히 아는 부동산에서 우리집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며 보러 가도 되겠냐고 전화를 해왔다. 내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차갑고 매몰차게 화를 내본 적이 있던가.

"지금 제정신이세요? 그말이 나오세요? 오지 마세요. 싫어요."

부동산은 오직 중개수수료 벌려는 생각밖에 없고 집주인은 오로지 전세비를 올려 받으려는 생각밖에 없다는 걸 참으로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 안에서 누가 어떤 기막힌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집 없는 서러움이 이런 거구나 싶어 달러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만다 싶다가도 계약한 2년은 버텨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남편은 일터로,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갔지만 나는 널려있는 짐들을 보면서 손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밥은 자꾸 밖에서 사먹게 되고 온가족이 오붓하게 뒹굴거리며 책 읽던 즐거움도 누려지지 않고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지지 않고...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집이 있고 이웃과 가족이 있어 함께 밥을 해 먹고 옷을 빨아 입고 함께 편안히 이야기 나누고 따뜻하게 뒤엉켜 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오랫동안 살아왔던 터전을 누군가가 함부러 건드리고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몹쓸 짓인지... 그러더니 뜻밖에도 얼굴 한 명 아는 사람이 없는 강정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괴롭고 아플까. 용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생각났다. 사는 게 얼마나 지옥같을까. 집을 상품으로 거래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거래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터전을 잃은 서러움과 아픔을 겪었을까.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에서 집 없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나는 세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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