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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물론 나는 세입자다. 대학 때 마당 한가운데 공동 수도를 쓰는 자취방에서 살던 어느 날은 충동적으로 긴 머리를 숏커트로 자른 적이 있다. 한 번은 공동수도에서 머리를 감으려는데 자취방 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뛰쳐나와 '(내) 머리가 길어서 수돗물을 많이 쓴다'며 내게 다급한 투로 쏘아대었기 때문이다. 순간 황당함에 어쩔바를 몰랐고 머리를 감지 못한 억울함에 사로잡혔다.

그리곤 나의 머리 길이와 수돗물 때문에 주인 할머니를 더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날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다음날 한 선배에게 짧게 잘라 드러난 뒤통수가 잘 생겼다는 칭찬을 듣고서야 억울함과 내 자학적 대응의 상처를 누그러뜨렸던 기억도 남아 있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나는 이혼 후 다시 세입자가 되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3평이나 되었을까. 나는 1호부터 나란히 배열된 몇 개의 자취방들 구석에 (남은 공간을 버리기 아까워서) '덤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은 지하방을 소개받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큰 방이 나면 옮겨 주겠다는 집주인의 인사치레를 받고 그 방에 입주했다. 장마철이었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방의 자물쇠는 열려 있고 방안이 온통 새까만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화재가 난 것이다. 벽에 부착된 콘센트로부터 벽을 타고 천장까지 균열이 나서 방을 옮겨 달라고 말한 지 한달 즈음이 지나서였다.

화재 조사를 위해 나온 경찰이 전기제품이 왜 이렇게 많냐고 내게 나무라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작은 방에 들어갈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좁은 자취방에 쌓인 짐들, 이혼할 때 들고 나온 전자레인지가 그의 눈에 거슬린 걸까. 얕잡아 볼 수 없는 위엄과 기름기를 풍기던 경찰 아저씨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한테 뭐 그리 대단한 전자제품이 있나, 이 방이 사람 살기에 좁은 거 아닌가'라고. 나는 하루 아침에 전 살림을 잃은 데다가, 경찰의 구박에 대한 내 소심한 주장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속이 편치 않았다. 

나는 많은 것을 잃은 후에 넓은 방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집주인은 그렇게 입주 초에 내게 인사치레로 한 말을 지키게 되었다. 곰팡이와 같이 사는 것은 기본이고 집 안에 사는 사람도, 살림살이도 창 밖에서 다 들여다 보여 마음 놓고 창문도 활짝 열어놓지 못하는 반지하에 사는 세입자가 높은 층에 입주하는 꿈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지하방에서 자취생활을 몇 년 하고 나서 지하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며, 지층을 사람이 살 주거지로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 혹은 주장을 가지게 되었다. 여하튼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모으기 위해서 적금을 하며 인생을 위한 별다른 계획을 갖지 못하고 사는 나를 돌아보면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전세보증금을 위해 돈을 모으는 일을 보류하고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지층을 피해 낙후된 지역과 서울의 변두리로 이사를 다니면서 세입자면 다들 한다는 보일러 싸움도 몇 번 해보았고 내가 견딜 수 없는 또 다른 주거환경에 노출되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일조권은 둘째치고 바짝 붙어있는 옆집에서 하는 통화소리가 내용까지 세세히 다 들리니, 내가 하는 은밀한 말과 소리까지 옆집에 다 들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런 셋집에서는 도저히 살고 싶지가 않다는.

얼마 전 한 친구가 온라인 카페에 '좋은 집주인은 없는 건가요?'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는데 세입자로서 가져온 설움 혹은 황당함이 짐작이 되어 백번 공감하였다. 하지만 집주인이 그리 나쁜 사람이기만 한 것도, 세입자가 뭐 그리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인 것도 아닐 것이다. 주거 공간이 어떤 집주인에게는 생계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세입자에게는 자신의 몸이 누울 곳이지만 내 집 같지 않은 자괴감을 동반하는 생존의 문제가 되어 있으니 살기가 이리 퍽퍽한 것일 테다.

임대아파트 살려면 외로움은 감수하라네요

한 임대아파트 모습.
 한 임대아파트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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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임대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말이 좋아 임대아파트지 높은 입주가격 때문에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중산층이라며, 벌이가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불안정한 세입자 처지를 한탄하곤 했었다. 그런데도 내가 덜컥 임대아파트에 당첨되었을 때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나는 잠시 중산층이라도 된 듯 들뜨고 기쁘기도 하였다.

전세 보증금 정도로 '내 집'(과 같이 안정적인 주거환경) 마련을 했다며 어쩌다 찾아온 행운을 좀 심하게 자랑거리로 삼은 것 같기도 하다. 허나 한편으로는 훌륭한 사람들이면 다 한다는 괜찮은 문화생활이나 여가생활을 즐기지 않고,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성향을 발달시켜온 대가로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점을 떠올리면 쓸쓸하다.

나는 저소득 단독 세대주라는 임대아파트 입주 조건을 가졌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안정적인 주거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 의지와는 무관히 비혼을 고수해야 하고, 행정적으로 동거인을 갖지 않아야 한다. 안정적인 주거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외로운 주거형태라는 제한'을 대가로 받다니 단박에 이해되지 않는 묘한 상황이다. 내가 앞으로 '내 삶의 이 제한적 가능성'을 넘어서서 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루 일과가 타인의 눈과 귀에 노출되지 않도록 생활권을 보장받고, 건강에 해롭지도 않으며, 원하는 파트너나 동거인과의 거주여부를 선택할 권한을 가질 수 있고, 몸과 정신이 편히 쉴 수 있는 기능을 충족하는 주거환경을 나는 확보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나이가 들어가고 할머니가 되어서 길거리만 아닌 곳에서 살다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주거와 생존에 대한 솔직한 불안이다.

지난 여름에 제주도 해안마을을 따라 걸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하나 없고 하늘은 드넓었다. 낮은 돌담안 집마당에 이불과 빨래들이 넉넉한 햇빛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느긋함과 푸근함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서울에 돌아와 늘 자식들이 살아갈 걱정을 놓지 못하고 집에 대한 걱정과 중요성을 강조했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앞으로 마당에 이불 널 수 있는 집에 살고 싶어.' 살기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 알려준 답을 이미 다 안다는 듯 엄마는 대답했다. '꿈도 크다.' 그랬다. 엄마 걱정만큼 불안한 집들에서 살아온 내가 '내 집'에 대한 꿈이 생겼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당에 빨래를 널 수 있는 집에서 언제고 살 수 있다면 그게 내 소유가 아니고 교환가치가 없다면 어떤가.

나는 여전히 세입자다. 전세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전셋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멋없고 심심한 인생을 살아온 내가 내 집에 대한 꿈을 꾸고자 하는데, 집도 땅도 없는 사람들의 주거권에 대한 계산식을 바꿀 의지가 없는 이, 이의 있는가?


태그:#주거권,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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