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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현관 열쇠를 못 받아 이삿짐도 못 내리고 있어요. 주인집이 바쁘다고 오후에 보증금 송금해 준다는데, 이삿짐업체는 빨리 끝내고 다른 곳에 가야된다고 난리고..."

장기 시프트에 당첨되어 기분 좋게 이삿짐을 쌓던 후배는 주인집에서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차에서 이삿짐도 못 내리고 있노라고 했다. 먼저 살던 집에서 보증금을 받아서 새로 들어갈 아파트에 다시 보증금을 넣어야 열쇠를 받아 이삿짐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주인이 식당을 한다는 핑계로 오후에 송금해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짐도 못 내리고 이삿짐 직원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을 부부를 생각하면, 아무리 바쁘기로서니 집을 가진 사람의 횡포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13년 전, 나도 결혼하고 첫 전세살이에서 똑같은 일은 겪었다.

값싸게 구한 신혼 전셋집,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IMF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8년 겨울. 서울 전셋값은 급락했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빼주지 못하는 주인이 생겨났고, 조금 싸게라도 세입자를 구하려는 주인들이 부동산 중개업소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행운이었다. 찾는 부동산 업소마다 환대를 받았고, 넉넉지 않은 가용금액으로 다가구주택 1층에 집을 구했다. 방이 두 개로 조그마한 거실이 달린 집이다. 2층에는 주인집 할머니가 혼자 살았고, 반 지하에는 또 다른 세입자가 두 집이나 살고 있었다.

나름 만족스러웠다. 드나드는 출입문이 다르니, 주인이나 다른 세입자와 마주칠 일도 드물었다. 현관 앞에 흙을 퍼다 상추도 심었고, 계절마다 화분도 바꾸었다. 여름에 첫 아이가 태어나서 짐이 많이 늘어났지만, 별로 좁다는 느낌도 없었다. 주인집에서 별 말이 없으면 재계약해서 눌러앉고 싶었다.

전세 계약이 끝나지 한 달 전, 집 소유주인 할머니의 아들(지방에 살고 있었다) 에게 전화를 했다. 집값을 올리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고 싶다고. 전셋값이 떨어지는 추세였으니 주인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방에 살고 있어 계약서 다시 쓰기가 번거로우니 구두로 합의하고 그냥 살란다. 쾌재를 불렀다. 서로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새로운 천 년, 2000년 벽두부터 전셋값은 하향을 멈추고 오르기 시작했다. TV에서 전세난 뉴스가 간간이 흘러나오더니, 부동산 중개업소는 일주일 사이 수백, 수천만 원이 오른 전세값을 문 앞에 내걸었다. 그러나 남의 일 같았다. 재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전화로 구두 약속을 했고 나중에 무슨 일이 있더라고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이전 계약이 연장된다고 알고 있었기에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이 나의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어느 날 저녁. 2층에 사는 주인 할머니가 내려왔다. 시세보다 싸게 살고 있으니 전셋값을 올려 달란다. 그것도 2천만 원이나... 말문이 막혔다. 한참 만에 할머니에게 아드님하고 전화로 안 올리기로 했다고, 그리고 재계약 전에 별말씀이 없으셨으니 계약이 연장된 것이라고. 그러나 할머니는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조건 지금 시세에 맞게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주인인 아들에게 전화하니 딱히 확정적으로 구두 계약한 것은 아니라고, 할머니하고 알아서 하라고 발뺌하다가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받지도 않았다.

ⓒ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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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설움과 분노의 저녁... 깡소주를 마셨다

할머니는 새벽이고, 밤이고, 무작정 집으로 쳐들어왔다. 2천만 원이 한꺼번에 안 되면 그만큼 월세로 돌려 줄 수도 있다고... 무슨 은혜를 베풀 듯이 제안을 해왔다. 우리 부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여유나 이유가 없었다. 아내는 무료 법률 상담소에 상담까지 받아가며 1년 동안 전세의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설 할머니가 아니었다. 처지가 너무 어려우니 용돈 주는 셈 치고, 자기에게 매달 7만 원씩만 달란다. 아들이 있고 번듯한 집을 가진 사람이 세입자에게 용돈을 달라니... 기가 찰 노릇. 용돈은 자식에서 타서 쓰시라고 험한 소리가 끝내 내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할머니는 아예 집으로 들어와서 거실에 누워 버렸다. 자기 집에서 누워 있는데 뭐가 잘못 되었냐는 할머니. 하루는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데 딸이라는 사람과 같이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안 되니까 거실에 자겠단다. 내가 격하게 싸우고 있는 동안 아내는 경찰을 불렀다. 경찰에게 주거침입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그제야 자기 집으로 물러났다.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꾼이 된 그날 저녁. 집 없는 설움과 분노에 저녁도 못 먹고 아내와 나는 깡소주를 마셨다.

할머니는 더이상 집으로 오지 않았다. 문 앞에서 마주쳐도 눈만 흘길 뿐 전셋값 올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교회 권사였던 할머니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2층 자기 집에서 절구를 찧었다. '쿵! 쿵! 쿵!' 이른 새벽 부부가 깨는 것은 물론 첫돌도 지나지 않는 아이가 놀라서 울었다. 항의를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김치를 하기 위해 마늘을 찧는다, 깨소금을 만들기 위해 깨를 빻는다'는 이유로 절구 소리는 계속되었고, 아이는 물론 우리 부부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진 부부는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 당일 또 한 번 사단이 터졌다. 이삿짐을 다 실었으니 보증금만 받아 나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기요금 등 다음 달에 부과될 공과금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저번 달의 1.5배의 공과금을 요구했다. 우리 부부는 지난달 정도 공과금을 주고, 나중에 더 나오면 청구하라고 버텼고, 할머니는 정산하고 남으면 돌려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감정이 상할 데로 상한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았다. 차에 짐을 실어 놓은 채로 2시간이나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시간은 또다시 우리 부부의 편이 아니었다. 새로 이사 들어온 사람들이 방을 빨리 비워 달라고 아우성이었고, 우리가 이사 들어가야 할 집에서는 보증금을 빨리 가져와야 이사 나가는 사람들을 내보낼 수 있지 않으냐는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톱니바퀴 물리듯이 몰려있는 세입자의 이사 행렬에서 마지막 반항조차 제대로 못 해보고 할머니 요구한 금액의 공과금을 지불하고 보증금을 찾을 수 있었다. 신혼 첫 전세살이 긴 악몽은 이렇게 끝이 났다.

최근 5년간 서울에서 전세가격이 4억4천만원을 웃도는 비싼 전세 아파트가 2.5배 늘어났다. 마포구의 경우 2008년 68가구에 불과했던 고가 전세가 현재 1천954가구로 28.7배 증가해 가장 고가 전세가 많이 늘어난 구가 됐다. 사진은 17일 현재 마포구 내 한 부동산의 아파트 매물표의 모습. 2012.9.17
 최근 5년간 서울에서 전세가격이 4억4천만원을 웃도는 비싼 전세 아파트가 2.5배 늘어났다. 마포구의 경우 2008년 68가구에 불과했던 고가 전세가 현재 1천954가구로 28.7배 증가해 가장 고가 전세가 많이 늘어난 구가 됐다. 사진은 17일 현재 마포구 내 한 부동산의 아파트 매물표의 모습. 2012.9.1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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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 전세 유랑민이 없어야

나의 신혼 초기에도 그랬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는 전세난은 끊임없이 세입자를 괴롭혔다.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못 해 집 없는 사람들은 싼 집을 찾는 유랑민이 되었다. 주택정책과 전세 대책만 꼼꼼히 세운다면 그렇게 폭등할 이유 없는 전셋값의 고공행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고는 하지만 세입자는 여전히 약자이고, 법망이 그들을 보호하기에는 너무나 허술하다.

일례로, 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세입자는 당장 다른 곳에 이삿짐을 풀 수 없는 처지에 처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런 세입자가 전화 한 통으로 실시간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제공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또 세입자와 주인의 갈등도 조정할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에서 마을공동체 구현하기 위한 많은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집 없는 세입자가 전세난에 유랑민처럼 떠다니는 현상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는 꿈같은 이야기다. 내 집 없는 세입자라도 한곳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주거문화의 장착, 무엇보다 우선 고민하고 해결할 일이다.


태그:#전세난,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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