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개막식 출연진

런던올림픽 개막식 출연진 ⓒ 오세현


제30회 런던 올림픽이 지난 27일 성대하게 개막하여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문화 산업, 창조 산업의 선두주자인 영국답게 올림픽 개막식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거대한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어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슬럼독 밀리언에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대니 보일이 총 연출한 이번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의 뒷이야기들과 그 배경들을 출연진과 현지의 반응을 통해 살펴본다.

▲ 영국 여왕은 개막식에서 왜 그렇게 지루해했나?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 런던올림픽조직위


개막식 현장 중계 화면에 잡힌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모습은 자국인 영국 팀의 입장 당시를 포함하여 여러 차례나, 약간은 지겨워하는 모습이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엔 그만의 사연이 있다. 올해로 재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을 맞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왕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미 1948년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을 자신의 아버지인 조지 6세와 함께 치렀을 뿐 아니라, 여왕의 자격으로 영연방 캐나다에서 열렸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개막 선언도 한 바 있다. 어느덧 여왕에겐 올림픽 개막식 주관만 3번째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포츠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터라, 영국인들은 여왕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다. 28일(현지시간) 박태환의 400미터 자유형 예선 경기가 열렸던 시간엔 여왕이 직접 수영 경기가 열리는 아쿠아틱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평소 영국민들이 가장 열광하는 FA컵 결승전도 찾지 않던 여왕의 전격적 방문에 <가디언> 등 현지 언론조차 놀랐을 정도였다.

▲ <경이로운 섬(Isles of Wonder)>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런던올림픽 개막식 잔디언덕

런던올림픽 개막식 잔디언덕 ⓒ 오세현


개막식을 위해 주경기장 한가운데 설치된 잔디 언덕과 구름은 개막식 공연 <경이로운 섬>의 기본 컨셉이었다.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에서 이야기 한 주제를 적용한,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이미지와 아이디어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팝아트 작품인 <서머 스카이(Summer Sky)>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호크니는 컴퓨터 그래픽과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서 이 작품을 만들었고, 그는 사진과 예술의 경계와 고정 관념을 넘어서며 작품 활동을 해온 영국의 대표적 현대 미술 작가이자 '영 컨템퍼러리스(Young Contemporaries)'의 일원이기도 하다.

대니 보일은 이 작품 외에 안토리 곰리(Antony Gormley)의 <필드 오브 더 브리티시 아일스(Field of the British Isles)>에서도 큰 영감을 받아 개막식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개막식 공식 가이드북에서 밝혔다. 그러나 이 잔디 구릉 무대는 정작 출연진들에겐 경사가 가파르고, 비가 올 경우 미끄럽기까지 해서 아주 큰 걱정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 카운트다운에 등장한 종은 어디로?

영국 사회에서도 종은 사람들의 아침잠을 깨우고, 기도하게 하고, 노동을 시작하게 하며, 적들을 공격하고, 파티를 즐기거나 파업 투쟁에서 단결하도록 사용되어왔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영국 내의 모든 종들이 다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일제히 멈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개막식에 등장했던 올림픽 종 역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올림픽 종은 스트라포드의 주경기장 인근의 화이트채플종제작사(Whitechapel Bell Foundry)에서 높이 2미터, 너비 3미터 크기로 제작되어, 개막식 카운트다운 때에 영국에 있는 모든 종들과 동시에 일제히 울렸다.

이 종은 1570년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설립되어 그동안 리버티 종(1752년)과 빅벤(1858년)을 제작하기도 했던,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 제작사에서 만들어졌으며, 올림픽 파크에 향후 200년 동안 자리한 후 제작사인 화이트채플로 반환하도록 계약되었다. 조직위원회와 제작사가 적어도 200년의 사용 계획을 공식 계약으로 체결했다는 점이 놀랍고 부럽기까지 하다.

▲ 국가에 침묵한 라이언 긱스... 왜?

 런던올림픽 개막식 최종리허설

런던올림픽 개막식 최종리허설 ⓒ 오세현


"신이시여 여왕을 지키소서(God save our gracious Queen)"로 시작하는 영국 국가는 1745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연주되었다. 가사와 멜로디는 이미 17세기부터 작자 미상으로 잉글랜드 지역에서 이어져오고 있었고, 베토벤, 하이든, 브람스를 비롯한 총 140여 명에 달하는 작곡가들이 이 대중적인 멜로디를 자신들의 작품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사를 잘 살펴보면 '신이 여왕을 지켜주고, 여왕이 장수하며, 여왕이 영국을 오래 통치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모든 구절에서 당시의 잉글랜드 여왕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이 다른 연방국인 웨일즈의 축구 대표 선수이기도 한 라이언 긱스의 입장에선 이러한 내용의 가사가 결코 편하지 않을 법도 하다.

이에 영국 언론은 별다른 언급 대신, 이처럼 불편한 영국 단일 축구팀이 올림픽 이후 다시 결성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분위기를 주로 전하고 있다.

▲ NHS(국가보건서비스)는 갑자기 왜 등장했나?

전 세계에서 개막식을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 가운데, 영국의 NHS에 대한 부분이 있다.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정치인이자 사회 활동가였던 아노이린 바반(Aneurin Bavan)의 '만약 아픈 사람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의 혜택을 거부당하는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라 부를 수 없다'는 정신을 토대로,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것이 영국의 NHS다.

대니 보일에 의하면 개막식 NHS 장면에 등장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원 봉사자들로 의사, 약사, 매니저,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이었으며, 이들은 전후 영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낸 최고의 국가 기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무대의 배경으로는 영국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병원 가운데 하나이자,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메튜 배리(J. M. Barrie)가 그 작품에서 나오는 모든 저작권 수익을 기증해서 유명해진 그레이트오몬드아동병원(Great Ormond Street Children's Hospital)이었다. 한편 대니 보일은 개막식 이후 영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NHS를 영국 최고의 자랑거리로 뽑은 자신의 결정에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나 압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 개막식의 보안은 어떻게?

 런던올림픽 개막식 참가자들

런던올림픽 개막식 참가자들 ⓒ 오세현


이번 개막식 행사는 극도의 보안이 지켜져 행사 당일까지 대부분의 이야기와 성화 봉송 주자 등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개막식에 출연진으로 참여한 한국인 유학생 오세현(28)씨에 의하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출연진에게 안무나 노래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인쇄물로 제공되지 않았고, 오직 반복적 연습을 통해 모두가 모든 내용을 각자의 머리로만 기억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안무, 노래 등은 개막 1주일 전까지도 계속 조금씩 바뀌었으며, 출연진이라 하더라도 전체 내용을 알 수 없도록 공연의 부분 부분을 잘게 나누고, 볼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작년 겨울 이후 공개 오디션을 거쳐 뽑힌 공연 참가자들을 위한 연습장 역시 인적이 드문 곳 위주로 계속 옮겨졌고, 출연진들은 마치 암호(●■▲)처럼 작성된 길 안내판을 보고 은밀히 찾아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노출되는 최종 드레스 리허설 단계에선, 8000여 명에 달하는 참여자들에게 스스로 알아서 보안에 유의해달라는 부탁만 있었다고 한다.

런던올림픽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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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연구자. 지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함. 10여년 전 유학시절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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