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농구부가 이토록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나 싶다.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들에서는 2~3일에 걸쳐 한 고등학교의 감동적인 활약상을 비중 있게 다뤘다. NBA 플레이오프 소식이나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크게 말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2일 대한농구협회장기 결승전에서 패배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부산중앙고다.

그들의 준우승 스토리는 그야말로 감동적이고, 또 감동적이다. 부산중앙고는 전체 엔트리 6명 중, 정진욱이 예선 초반부터 부상을 당해 사실상 5명으로 대회를 치렀다. 심지어 용산고와의 결승전에서는 허재윤과 홍순규 두 명이 5반칙 퇴장을 당하며 3명으로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실화를 만든 것이다.

부산중앙고, 신생팀이 아닙니다

5명의 엔트리를 구성하는 것도 힘들었던 부산중앙고. 누군가는 그 학교의 농구부가 처음 신설된 것이 아닌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부산중앙고는 동아고와 함께 부산지역 농구를 이끌어 온 농구 명문 고등학교다. 비록 2000년 이후 전국대회 우승과 담을 쌓았지만.

부산중앙고 출신의 대표적인 선수로는, 과거 LG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오성식·박규현·박훈근 트리오,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KCC의 추승균, 상무에 있는 국가대표 출신 강병현, 2011년 상명대 농구부 사상 처음으로 프로 1군 무대에 입단했던 모비스의 임상욱, 이번 시즌 전역한 SK의 김우겸 등이 있다.

안타깝게도 농구 명문 부산중앙고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한동안 기나긴 암흑기를 걸었다. 24세의 나이로 최연소 지도자가 된 전자랜드 2군 출신 강양현 코치가 2007년 부산중앙고의 지휘봉을 잡았다. 부산중앙고는 그때부터 착실히 재도약을 꾀했다. 2부 리그 대학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프로 선수가 됐던 강양현 코치는 선수 수급도 힘들었던 부산중앙고를 착실히 일으켜 세웠다.

부산중앙고의 감동 실화는 일회용일 뿐

부산중앙고는 2010년 7월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에 선수 수급 문제를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리고 그들의 재도약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1년 춘계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8강에서 단 7명의 엔트리로 강호 용산고를 상대하며 52-53의 1점 차 패배를 당했다. 이후 열린 종별선수권에서는 우승 후보 제물포고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2012년, 부산중앙고는 대한농구협회장기 대회에 첫 출전했다. 2012년 첫 전국대회지만 지난해 남긴 행보 덕분에 부산중앙고는 강호 용산고를 막을 다크호스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부산중앙고는 3연승으로 예선을 가볍게 통과하며 결승까지 올랐다.

분명 놀라운 성적이었다. 예선 2차전부터 단 한 명의 교체 선수도 없이 결승까지 오른 것이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스토리에 크게 감동 받았다. 언론과 주요 포털에서 그들의 활약상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다뤄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일뿐이다. 농구팬들의 감동은 곧 발표될 KBL 자유계약선수 협상 결과 발표와 NBA 플레이오프 승부, 국가대표 소집 이야기 등에 의해 사그라질 것이 분명하다. 부산중앙고가 대한농구협회장기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크게 없다.

농구 명문의 무작위식 스카우트... 사라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부산중앙고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천기범과 배규혁이 모두 3학년 졸업반이라는 사실이다. 한 선수, 한 선수가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두 선수가 빠진 부산중앙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이 곧 몇 개월 뒤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부산중앙고를 재건하는 데 성공한 강양현 코치가 제2의 천기범, 배규혁을 발굴해 내거나 만들어 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상의 시나리오다.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대부분의 괜찮은 능력을 지닌 어린 선수들은 수도권 명문 팀들의 스카우트 목표가 된다. 부산중앙고가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고 해서, 수도권 팀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부산중앙고로의 진학을 택할 어린 선수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수도권 일부 농구 명문고들의 무작위식 스카우트가 멈춰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제2의 부산중앙고와 같은 감동적인 실화를 자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방에 있는 팀들은 계속해서 선수 수급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농구팬들은 지난 2007년 협회장기 전국남녀농구 여고부 경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5명의 엔트리로 경기에 나섰던 대전여상은 3명이 5반칙 퇴장당하며 2명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흥미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지방에 있는 팀들이 선수 수급 등의 문제로 하나둘씩 사라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무작위식 스카우트를 한 수도권의 일부 명문 고등학교들이 한 팀당 20~30명씩의 선수를 보유한 채 그들만의 전국대회를 치르게 되지는 않을지. 이런 환경 속에서 국제대회의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KBL의 흥행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산중앙고 천기범 강양현코치 추승균 강병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포츠를 사랑하는 분들과 소중한 소통을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