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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냥 바람난 남녀 이야기 아니겠어?"
맞는 말이다. 처음엔 그랬다. 애국가 시청률보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드라마라니, 많은 이가 실패를 예견했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은 달랐다.

 JTBC 아내의 자격 공식 포스터

JTBC 아내의 자격 공식 포스터 ⓒ JTBC


종편의 구원투수 <아내의 자격>을 말하다

4월 19일 방송된 16회에서 시청률 4.41%(AGB 닐슨) 분당 최고 시청률은 6.03%로 막을 내렸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구조임에도 시청자들은 <아내의 자격>를 선택했다. 그간의 '줌마렐라'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아내의 자격>은 달랐기 때문이다. <아내의 자격>은 해방되었고, 상류층의 허위의식은 그 속내를 들켜버렸다.

종편의 '얼굴'을 살려준 <아내의 자격>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윤서래(김희애 분)라는 여자가 대치동이라는 모종의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세운 '아내의 자격'을 강요당한다. 그러던 중 김태오(이성재 분)라는 남자를 만나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자 서래'를 찾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다분한 대리만족감을 선사했다.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서래와 태오의 진실하고 인간적인 사랑은 40~50대 중년 여성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라는 가장 치열하고 현실적인 곳에서 이루어진 드라마였기에 가능했다.

여자 주인공 서래는 아이의 교육기계로 살아왔고 원치 않게 '대치동 엄마'가 되었다. '아이 성적이 엄마성적'이라는 현실 아래 받는 시댁의 멸시와 천대는 물론, 애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남편 한상진(장현성)과의 관계는 서래를 벼랑 끝으로 내몰기에 충분했다.

상진은 "내 아들은 갑이 됐으면 좋겠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남자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떠밀려온 대치동에서 김태오(이성재)를 만난 서래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순수한 서래에게 불륜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둘의 관계는 금방 들통이 나버렸다. 그리고 이혼. 보통의 드라마들은 여기서 '도덕적인' 엔딩을 고한다.

하지만 <아내의 자격>의 반격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서래는 아들에게 직접 이혼사유를 이야기했고 결국은 이전까지의 아이들과는 달리 차분하게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인다. 서래는 위자료 탓에 생활고 중에도 잊고 살던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래 자신을 되찾고 태오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태오(왼쪽 이성재 분)와 서래(오른쪽 김희애 분)가 길거리 데이트를 즐긴다.

태오(왼쪽 이성재 분)와 서래(오른쪽 김희애 분)가 길거리 데이트를 즐긴다. ⓒ JTBC


동시에 <아내의 자격>은 이렇게 '아름다운 불륜'과 정반대 편에 '비극적인 불륜'의 말로도 있음을 은주(임성민), 현태(혁권), 명진(최은경)을 통해 보여주었다. 대형 로펌 변호사인 현태는 두 집 살림을 살아왔다. 장관의 딸이었던 명진(상진의 여동생)을 본처로, 그녀의 친구인 은주는 숨겨둔 처로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왔다.

영영 드러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관계는 은주의 계략하에 수면위로 드러난다. 이 사실을 안 명진은 은주를 폭행하지만 은주는 반항하지 않는다. 그 모든 모습이 CCTV에 찍히고 있었던 것.

은주는 로펌의 회장인 현태의 아버지에게 내연 사실을 말하고 자신에게 현태의 아들이 있음도 밝힌다. 명진과 현태 사이에 딸밖에 없던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시아버지는 아들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현태 역시 적반하장의 자세를 취하며 부부 사이에도 존재하는 갑을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는 이들마저 치가 떨리게 했다.

<아내의 자격>, 픽션과 리얼 사이

<아내의 자격>은 서울 대치동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공간에서 순수한 사랑과 비극적 최후를 다룬 지극히 극적이면서 현실적인 드라마였다. 특히 극 후반으로 가면서 서래를 괴롭혔던 전 남편 상진(장현성)과 시누이 명진(최은경)이 몰락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사실 <아내의 자격>은 대한민국에서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격을 묻는 동시에 '인간의 자격'을 묻는 드라마였다.

<아내의 자격>은 갑을로 분리된 세상에서 상류층의 속물근성을 자꾸만 들춰냈다. 알고 보면 내연녀와 본처의 관계였던 은주과 명진이 서래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고 자신들의 상류의식을 내보일 때나 상대방에 대한 칭찬인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자랑은 하는 모습들은 이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들을 쉽게 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나 역시도 내가 높아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서래의 남편 상진(장현성)이 동료와의 술자리와 일터에서 내뱉은 끊임없는 자만과 지저분한 농담을 곁들인 허세는 꽤 낯익은 모습이다. 너무 생생해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작가가 혹시 내 주변 사람을 보고 만든 인물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아내의 자격>은 계층이 뚜렷이 나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계층을 자기 자식의 대에게 그대로 물려주려 하는 상류층의 모습을 명진의 가정을 통해 보여줬다. 상류층에 대한 자격지심을 자식을 통해 역전하려 하는 중산층의 모습은 상진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 모든 것은 픽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100% 리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남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언제가 일어날지도 모를 내 이야기, 지금 내 상황,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공식엔 변함이 없다.

지선의 몰락, 무엇을 의미하나

 지선(이태란 분)과 태오(이성재 분). 지선은 특목중 기출문제지 유출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 된 장면.

지선(이태란 분)과 태오(이성재 분). 지선은 특목중 기출문제지 유출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 된 장면. ⓒ JTBC


태오와 서래가 사랑을 나누는 사이, 태오의 아내 지선(이태란 분)은 결국 검찰에 의해 수갑을 찼다. 지선은 특목중 기출문제지 유출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됐다. 지선은 남편 태오도 잃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업마저 실패했다.

지선은 서래의 시댁처럼 위선적이거나 상진처럼 패악을 저지르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지선을 통해 대치동 교육 산업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아내의 자격>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소위 '갑'들이 기득권을 대를 이어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수단으로 그려진다. 한결(임제노 분)의 친구는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자신의 엄마를 때리는 아빠 때문에 자살했다. 이는 근래 성적비관으로 일어난 대한민국 사회의 범죄들을 비판하는 장면이었다.

완벽한 세 박자, 남겨진 숙제

 서래가 한결에게 이혼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연출 중인 안판석 감독(오른쪽)

서래가 한결에게 이혼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연출 중인 안판석 감독(오른쪽) ⓒ JTBC


<아내의 자격>은 <장미와 콩나물>과 <아줌마>를 통해 호흡을 맞춰왔던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연출의 콤비 플레이로 탄탄한 구성을 뽐냈다. 또 드라마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영상과 배경음악도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안판석 감독의 한 폭의 파스텔톤 그림을 보는 듯한 연출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아름답게 표현했다. 이남연 음악감독은 기존 드라마에서 긴장감을 위해 사용했던 음악을 절제미가 돋보이는 잔잔한 음악으로 대신했다. 대치동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사실적으로 와 닿는 이유다.

제작발표회 때부터 '김희애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화재가 됐던 <아내의 자격>은 명불허전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명품연기를 보여줬다. 극 초반엔 여린 감성을 지니고 남편에게 휘둘리던 '아내 서래'가 극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강인한 어머니의 면모와 여성의 자존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보는 시청자들에게 자기투영의 기회까지 선사했다.

 여주인공 서래 역을 맡아 호연한 김희애

여주인공 서래 역을 맡아 호연한 김희애 ⓒ JTBC


종편의 첫 호투다. 하지만 고작 드라마 한 편이다. 존폐가 거론될 때 숨통이 트일만한 드라마가 나와 준 것은 종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청자는 거대 자본과 이슈 스타만으로 승부를 겨루지 않는 명품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종편, 지상파의 차이는 결국 '작품'으로 경쟁해야 한다.

아내의 자격 김희애 JTBC 안판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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