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애완견 순심이와 함께 <힐링캠프> 녹화에 임하고 있다. 순심이는 이효리가 2010년 겨울 입양한 유기견이다.

이효리가 애완견 순심이와 함께 <힐링캠프> 녹화에 임하고 있다. 순심이는 이효리가 2010년 겨울 입양한 유기견이다. ⓒ SBS


동물을 사랑하지만, 고기도 사랑했다. 아니,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찍이 채식하리라 다짐했지만, 더 빨리 마음을 다잡지 못한 이유다.

채식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정확히는 페스코(Fesco) 채식이라는 용어 뒤에 숨어서 해산물과 유제품과 달걀까지 먹고 있다. 동물성 제품의 섭취를 전혀 하지 않는 비건(Vegan)은 아직 신의 영역으로 보인다.

나에게 채식은 한우홍보대사를 하다가 채식을 선언하고 '변절자'가 된 이효리의 결심보다 치명적인 자기 부정이었다. 단골 미용실은 없지만 잘 가는 막창집은 있었고, 삼겹살을 벗 삼아, 콜라젠이 풍부한 돼지껍질를 화장품 삼아 살았다. 고기가 8할이었던 삶에서 그 모든 게 하루아침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조금 외로웠지만, 한편으론 자부심 같은 게 생겼다.

채식 1주째, 식탁 위의 소고기를 쳐다보며 두부를 씹었을 때 느낀 패배감만 빼면 버틸만했다. 채식 2주째, 사람이 남의 살을 먹지 않아도 즐거운 먹거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체험으로 느꼈다. 혹시 모를 금단현상을 대비해 갖춘 콩고기가 심지어 매우 맛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채식 3주째에 이르자 콩으로 만든 닭발이나 순대가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닭발은 닭의 보행을 위한 것이요, 곱창은 소·돼지의 소화를 위한 기관이라고 애써 외면하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쳐봤지만 남의 발과 장기에 대한 탐욕은 줄지 않았다.

4주째, '순복음교회'가 '순대볶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삼겹살집 상호인 '건방진 돼지'를 보며, 얼마나 건방진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한 고기를 왜 멀리할 수밖에 없나?

그럼에도 채식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국내 몇몇 채식주의 연예인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동네 '면식 있는' 돼지를 헤아리는 김제동의 어진 마음, <육식의 종말>을 읽고 채식을 결심한 이하늬와 윤진서, 유기견 순심이를 입양하면서 자연스럽게 육식을 멀리한 이효리와 비슷하다.

내 발밑에서 노는 애완견은 예뻐하면서, 공장식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은 외면하는 이중생활을 이제는 청산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육식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도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면, 1년에 내가 먹어치웠을 소 돼지 닭 등등 동물 열댓 마리는 육식 소비량에서 줄어들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계산 끝에 내린 결론이다.

 온스타일 <골든12>에서 이효리는 소셜클럽 멤버들과 함께 채식 파티를 벌였다. 이날 파티에는 존박이 초대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스타일 <골든12>에서 이효리는 소셜클럽 멤버들과 함께 채식 파티를 벌였다. 이날 파티에는 존박이 초대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 CJ E'&M


아마도 국내에서는 앞서 언급한 김제동이 비건 채식주의자이고, 윤진서와 김창환, 이하늬는 해산물과 유제품, 달걀까지 먹는 페스코로 보인다. 지난주 온스타일 <골든12>에서 본 바로, 이효리도 우유와 달걀을 먹지 않는 비건의 단계에 이른 것 같았다.

<나는 가수다>의 정지찬 음악감독도 채식주의자로 알려졌다. 그는 미니홈피 게시판에 '채식을 하는 이유'를 게재하고 있다. 정 감독에 의하면 "채식을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져 감수성이 매우 풍부해졌다"고 한다.

아직 비건은커녕, 페스코에서 해산물을 포기한 락토오보(Lacto Ovo)의 단계로 올라가기가 버겁다. 채식주의자에게 불친절한 한국에 살면서 점심을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육류·해산물·달걀·유제품을 제외한 음식을 찾느니 길에서 쑥을 뜯어 삶아 먹는 편이 쉬울지도.

이렇게 험난한 채식의 길을 걸으면서 채식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유명인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들을 공개적인 책임이 필요한 '공인'이라기보다 '활동가'라고 부르고 싶다. 주위 지인들에게 어쭙잖게 "채식한다"고 떠벌려 놨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고기를 입에 넣을까 봐 늘 불안한 것이 사실인데, 만인에게 채식을 선언한 그 용기가 존경스럽다. 한 달 만의 짧은 감상이지만, 체험의 힘이 세다.

<힐링캠프>에서 만두와 순대가 먹고 싶다던 이효리의 바람에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공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인지라 언제든 채식을 포기할 수 있고 공개했기 때문에 쉽게 변절자라 비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디 순대볶음집에서 파파라치가 찍히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건승을 기원한다.

이효리 채식 채식주의자 페스코 골든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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