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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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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사유제는 노예사유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을 하지 않고 이득을 취합니다." 헨리 조지.-<떠날 수 없는 사람들> 34쪽  

보리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읽으며 나는 이 문장을 곰곰히 생각한다. 토지사유제와 노예사유제는 어떤 점이 비슷한 것일까? 노예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제도이기에 현대사회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금지 된 노예제가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토지사유제와 비슷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주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토지사유제에 대해 생각했다.

철거반이 들이 닥친다. 사춘기 여학생이 엄마와 살고 있는 용산 신계동 집에. 마트에서 일하던 엄마는 연락을 받고 급히 집으로 달려온다. 도착해 보니 이미 집은 형태를 잃고 무너져있다. 부서진 벽과 그 아래 깔린 여학생의 물건으로 엄마와 여학생이 살던 집 위치를 알려줄 뿐이다. 엄마는 사춘기 딸이 이 처참한 모습을 보는 것만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딸에게 연락을 한다. "정아야, 지금 집에 일 났으니 오면 안 돼!" 엄마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사람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지 아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그걸 보고 아이가 세상을 어찌 웃으며 살아갈지 엄마는 무서웠을 것이다.

철거반이나 건설회사나 조합이 보기엔 공사를 지연시키는, 한시 바삐 부셔버려야 할 집이지만, 그 집엔 한 여학생이 아끼는 옷과 아이가 공부하던 교과서 그리고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 있다. 그런 소중한 것들이 모두 다 박살났다.

그 날 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어느 지붕 아래에 깃들었을까? 그리고 아이에게 처참한 일을 어떻게 설명하고 위로했을까? 엄마는 또 얼마나 얼마나 아이에게 미안했을까? 그 처참한 기억의 땅인 용산 신계동엔 지금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혹시 내가 사는 아파트도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가슴 아픈 땅에 지어진 아파트를 사는 행동을 나는 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철거가 우리네 건설현장에서 없어지지 않을까?

용산참사의 원인이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있다고 비판을 하면서도 용산에 들어서는 초고층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을 부러워했다면 나 역시 용산참사의 동조자가 아닐까?

멋진 아파트에 당첨이 된 것을 축하하고 부러워하는 내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나와 같은 소비자에게 아파트를 빨리 만들어주려고 무자비한 철거를 자행하는 건설회사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해가 지면 아이들이 돌아와요. 이 천막도 집이라고 잠을 자러 들어옵니다."

제게 이 아이들 보살필 수 있는힘을 주십시오. 견딜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제게 이 아이들 보살필 수 있는힘을 주십시오. 견딜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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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을 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고양시 일산 덕이동 재개발로 가구점과 살림집이 철거된 김명자씨 이야기다.

김명자씨는 콱 죽어버리고 싶은데 이대로 잠들어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고 싶은데...... 해가 지면 아이들이 돌아온단다....... 이 천막도 집이라고....... 상처투성이인 엄마 곁으로 세 아이들이 돌아와 잠이 자니 엄마는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엄마는 계속 말을 잇는다.

재판 받는데 그러더군요. 언제까지 할 거냐, 아이들 장래는 생각 안 하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검사님, 아이들 키우시죠? 제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 이 세 아이들의 망가진 시각은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억울하게 살다가 죽는 게 맞는 거라고 할까요?"........저도 넓은 길, 좋은 건물 좋습니다. 그럴거면 제대로 된 대책으로 제대로 보상하고 이주할 수 있도록 해 놓고 개발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개발 악법은 앞으로도 계속되고 내 아이들, 그 다음 세대에도 끝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투쟁하는 이유입니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  99쪽

집 값이 오르고 땅 값이 오른다...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김명자씨가 가구점을 열 때 귄리금과 시설비가 들었다. 그런데 재개발하면서 김명자씨가 들인 권리금과 시설비에 대해 보상은 커녕 이주비까지도 집주인이 홀랑 가져가 버렸단다. 사유제산제가 중요한 자본주의 나라이니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조합의 생각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거만큼 시설비나 권리금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소유권은 인정을 안 하면서 왜 토지소유권만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인정이 하는 것일까? 토지사유권만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결혼 육 년차 때, 나는 처음으로 아파트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 때 이사 한 아파트가 가락시영아파트. 전셋값이 싼 낡은 오층짜리 아파트였다. 그곳에 살면서 매매가가 1억5천 하던 15평 아파트가 단 2년 만에 얼마나 오르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재건축'이 아파트 값을 올리는 것을 확실하게 학습했다.

그 뒤론 5층짜리 아파트만 보면 "이런 거 돈 있으면 사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은 없었지만 나는 5층짜리 아파트의 구매후보자였다. 책을 읽고 보니 나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집값이 오르고 땅값을 오르는 거였다. 나 또한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 눈꼽만큼일지라도 나에게도 책임은 있다.

5층짜리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내 돈 안들이고 정부 돈도 안 들이고 새 아파트를 얻는 기존 정부정책 때문에 만들어진 사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식의 재건축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어떤 이유로 땅투기를 부추겨 왔는지 강남이 어떤 목적으로 개발됐는지 알게 됐다.

용산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건설현장에서 폭력적인 철거가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강제퇴거금지법'은 국회에 입법 발의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책은 전한다. 무엇 때문인가? 누구 때문일까?

그리고 이 법을 통과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있다. 이 책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살던 용산>부터 이번 책까지 용산참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고집스런 만화가들과 출판사의 노력이 그래서 반갑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 -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김성희 외 5인 글.그림, 보리(2012)


태그:#보리, #용산참사, #떠날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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