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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이 카샨 숙소에서 영어를 담당하는 할아버지. 새에게 먹이를 주고, 내게 프로페셔널하다고 했던 할아버지다.
 오른쪽이 카샨 숙소에서 영어를 담당하는 할아버지. 새에게 먹이를 주고, 내게 프로페셔널하다고 했던 할아버지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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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비야네로 가기로 한 날입니다. 숙소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아비야네로 가기 위해 우리 일행은 택시를 대절했습니다. 기사가 오전 8시 30분까지 오기로 했기 때문에  그 전에 아침도 먹어야 하고, 점심으로 먹을 감자도 삶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습니다.

야외 주방엔 이미 손님이 있었습니다. 옥상으로 난 문을 밀고 들어가자 옥상바닥에서 모이를 쪼던 새들이 일제히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누군가 옥상 바닥에 새 모이를 뿌려 놓았고 그릇에 물도 받아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새들에게 아침을 차려주었고, 새들은 마침 아침을 들고 있었고, 눈치 없는 난 새들의 아침식사를 방해했던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새들이 식사를 다 하도록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배려가 끼어들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바빴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즉석 미역국에 지난 밤 먹다 남긴 밥을 넣어서 죽을 끓였습니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감자를 씻고 있을 때 옥상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이 숙소는 할아버지 형제가 운영하는데 나이가 더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어제 처음 숙소를 방문했을 때 우리에게 숙소를 안내하던 정신없는 할아버지의 형입니다. 작은 할아버지가 훨씬 쾌활하게 보인다면 이 할아버지는 조용한 편인데 은근히 사람을 웃기는 구석이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백 번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끈기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세스 할로우 하와이유? 써티 미니츠 에프터 핫 워터.(아줌마, 안녕? 30분 후에 뜨거운 물 나와)"

옥상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어제 우리에게 백 번쯤 한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파자마 차림을 한 채 복도를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 일행에게 일일이 다 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큰 애가 할아버지 앞을 세 번 지나갔는데 지나갈 때마다 녹음된 방송을 틀듯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웃겨 죽겠다고 했습니다.

아군에게 적의 기밀사항을 속삭이는 것 같은 진지하고 심각한 태도로 '차가운 물이 나오니까 30분 후에 샤워를 하라고'하더니 정말 30분이 흐른 후에는 이제 따뜻한 물이 나오니까 샤워를 해도 된다는 말을 또 녹음기를 튼 것처럼 반복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태도가 참 순박하게 여겨졌습니다.

 카샨 숙소의 옥상. 싱크대도 있고, 식탁도 있어서 여기서 주로 밥을 해먹었다. 또한 이곳은 새들이 모이를 먹고 자는 곳이기도 하다.
 카샨 숙소의 옥상. 싱크대도 있고, 식탁도 있어서 여기서 주로 밥을 해먹었다. 또한 이곳은 새들이 모이를 먹고 자는 곳이기도 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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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키우는 새를 팔에 올려 놓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은 애. 숙소 내에서도 앵무새를 비롯해 몇 마리를 키우고 있을 정도로  할아버지의 새 사랑은 지극했다.
 숙소에서 키우는 새를 팔에 올려 놓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은 애. 숙소 내에서도 앵무새를 비롯해 몇 마리를 키우고 있을 정도로 할아버지의 새 사랑은 지극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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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씻고 있을 때 나타난 할아버지는 바로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미세스 할로우 하와이유."

어제와 다름없는 인사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옥상에 나온 이유는 새들을 보기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침 일찍 옥상 바닥에 새 모이를 뿌려놓고 물을 받아놓은 사람은 할아버지였던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는 새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옥상에는 새 집도 있었습니다. 갇혀있는 새는 없었지만 새 집은 문이 열려 있는 채 쌓여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명의 새들을 위한 집인 듯 했습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는 아무나 와서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집 없는 새는 잠도 자고 가라는, 그러니까 옥상은 무한한 자비의 공간이었습니다. 사실 아침에 내가 옥상 문을 열었을 때 옥상 바닥에 총총히 앉았다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의 모습은 새 쇼를 보는 것보다 장관이었는데 이게 모두 할아버지의 새 사랑에서 나온 결과였던 것입니다. 새들에게는 정말 든든한 빽인 할아버지였습니다. 언제든 배가 고프면 찾아갈 곳이 있고, 잘 데 없으면 찾아갈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할아버지는 내게 뭔가 얘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미세스 할로우 하와이유?"

상투적인 영어로 먼저 서두를 꺼냈습니다.

"유  리더? (너가 이 팀의 리더냐?)"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하마터면 너무 큰 소리로 웃을 뻔 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이고 정말 뜻밖의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눈에 내가 이 팀을 이끄는 인물로 보였던 것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 꽁무니나 쫒아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누군가 날 적극적인 사람으로 여긴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할아버지 눈에 난 매우 프로페셔널했던 모양입니다. 

"난 리더 아니에요. 리더는 다른 사람이에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날 프로페셔널하고, 리더라고 여겼던 자신의 생각이 절대로 잘못됐을 리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유 프로페셔널. 유 엔지니어? (넌 매우 프로처럼 보인다. 너의 직업은 엔지니어냐?)"

이 질문 또한 나와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어서 리더라고 물었을 때처럼 웃음을 터뜨릴 뻔 했습니다. 엔지니어는 이란에서 인기 직업입니다. 길에서 만난 학생이나 차에서 만난 여학생 중에 미래에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이란 사회에서는 커리어우먼의 대명사인 모양입니다. 이 질문 또한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아니오, 전 하우스와이프(주부)예요"

나의 대답은 할아버지를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뜨렸습니다. 내가 하우스와이프라고 했는데, 할아버지의 표정을 봐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하우스와이프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마침내 마음을 정한 모양입니다. 하우스와이프라는 직업은 엔지니어보다 더 프로페셔널한 직업이라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날 프로페셔널한 여자로 한 번 점찍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 생각을 바꿀 의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매우 프로페셔널한 여자가 됐습니다.

할아버지의 이 생각이 굳어진 이유가 뭘까, 하고 할아버지가 옥상을 나간 후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모두들 자고 있는데 먼저 나와서 감자를 씻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어제도 애들 밥 해먹이려고 주방으로 쫒아가 냄비를 하나 달라고 떼를 썼는데 아마도 그런 모습도 전문적인 여성이 되는데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합니다. 새끼 밥 굶을까봐 나름 뛰어다녔는데 그 모습이 나처럼 소심한 여성도 적극적인 여성으로 만드니까요.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 프로페셔널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란 여행은 지난 2009년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캬샨, #새,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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