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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MBC <100분토론>에서는 '<나꼼수>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사회자 황헌 앵커와 강승규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김호기 연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와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형편 없었다'. 토론자들의 말 자르기, 감정적 언어 사용 등도 문제였지만, 가장 문제는 토론자 중 다수가 주제인 나꼼수를 듣지도 않고 나왔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사회자는 꽤 의미 있는 질문들을 많이 던졌는데, 그 중 하나는 나꼼수가 언론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었다.

일명 '나꼼수 4인방'이라 불리는 고정 게스트 중 한 명인 정봉주 의원은 '나꼼수는 언론이 아닌 팟캐스트 음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100분토론>의 사회자 황헌 앵커는 나꼼수가 언론의 사전적 의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언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개인이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 2.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라고 명시되어있다.

양측의 대립된 주장 중에 어떤 것이 맞을까? 나는 인문학 고전인 <안티고네>를 통해 현 정부의 문제와 나꼼수의 언론여 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꼼수는 언론인가?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으로 '오이디푸스'의 속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그의 아들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전쟁을 벌인다. 그 결과 두 아들들은 죽게 되는데, 그 둘의 죽음은 안티고네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에테오클레스는 사자(死者)들 사이에서 명예를 누리시도록 그 분께서 바른 법도와 관습에 따라 땅속에 묻어주셨으나, 비참하게 돌아가신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시민들에게 큰 소리로 알려 아무도 무덤 속에 감추지도 애도하지도 말고, 애도도 받지 못한 채 무덤도 없이 진수성찬을 노리는 새 떼의 반가운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두게 하셨대'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라를 위해 충실히 싸운 에테오클레스는 고귀한 죽음을, 왕위에 오르기 위해 아르고스 군(軍)과 함께 자신의 나라를 쳐들어온 폴뤼네이케스는 천박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폴뤼네이케스도 고귀한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크레온 왕 몰래 시신을 장례시켜 주려 한다.

행위는 발각되었고, 크레온의 사람이 만든 '인법'이라는 가치와 안티고네의 사람 사이 도리 '천법'이라는 가치가 격렬하게 대립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법은 사람을 위한 것

크레온은 대립의 과정에서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결국 법이 사람을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국법 위배를 단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이라고 보며 눈 먼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의 예언마저 일종의 배신으로 여긴다. 그러나 어불성설하게도 그는 안티고네를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죽이지 않고, 다른 인민들의 반발을 예상해 가둬두고 약간의 음식을 주어 자연사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자신의 아들이 자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어야 할 상황까지 와버렸지만 크레온은 '아아 아아 무서워서 못살겠구나. 쌍날칼로 앞에서 내 가슴을 찔러줄 자는 아무도 없느냐? 나야말로 비참하구나 아아. 비참한 파멸과 섞였으니!'라며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못난 인간의 극치를 보인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 법을 강조했으나,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위법을 저질러 버린 크레온 역시도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주장이 너무 강하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된다'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속 사회와 현 사회를 연관지으면 더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법치주의'는 때로 비겁한 변명일지 모른다. 법의 성질이 그러하듯 본래 모든 사람을 법으로 평등하게 대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법을 악용할 경우 지도자가 독재자로 변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법을 악용할 경우 합법적으로 지도자 마음껏 독재자가 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크레온이 위법을 행했던 이유는, 고대 아테나이가 투표로 법을 정했고 추첨을 통해 재판관을 뽑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음은 아니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대 아테나이가 날치기로 법률이 제정되고 많은 법률 종사자들이 뇌물을 받는 현대 한국 사회보다 훨씬 민주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꼼수가 언론이 아닌 이유는 미디어법 때문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왜 정봉주 의원과 애청자들은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칭하지 않는가? 정말 언론이 아니라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조중동을 포함한 깡패 언론들이 언론의 역기능만 충실하게 수행해 나가는 반면, 나꼼수는 세상을 바르게 보고 있고,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순기능이다.

허나, 감히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는 2008년 12월 3일 한나라당이 마련한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미디어관련 법률 개정안, 즉 '미디어법' 때문이다. 미디어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정보통신망법(사이버 모욕죄), 방송법, 신문법, 언론중재법, 전파법, 멀티미디어 통신법, DTV전환 특별법을 통해 정부 입장에서 언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쉬운 제도이다.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칭한다면, 당장 미디어법에 걸리게 되어 관계자들은 처벌 받을 것이며, 어두운 세상의 불빛 같은 존재를 국민들은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꼼수를 사전적 의미에서의 '언론'이라고 단정짓자면, 시사토크나 트위터도 언론으로 봐야 하므로 문제가 생긴다. 러나 언론을 저널리즘으로서 본다면 취재 및 보도자의 정치적 성향이 포함될 수 있음에도 사실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꼼수를 인터넷 신문, 지역 신문들과 같은 급인 대안언론으로 본다면 분명 언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나꼼수를 화두로 같은 맥락의 다른 대안언론도 기대할 수 있겠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악법도 법이다. 그래서 올바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은 악법의 심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허나, 이게 대안언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직한 힘이 자라나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어찌 할 수 없는 서러움은 왜일까.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지음, 황문수 옮김, 범우사(2009)


태그:#안티고네, #미디어법,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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