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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홍콩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홍콩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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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던가, 해외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더 알차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줄 놓자마자 길을 잃고, 좀 더 아껴보겠다고 버티다가 더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신혼여행으로 필리핀 보라카이를 다녀온 후 9년 만에 해외여행을 갔다. 신혼여행 때, 결혼하면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 가자, 둘이서 열심히 다녀보자 약속에 약속을 거듭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막상 홍콩행 비행기 티켓을 지르고 나니, 마음가짐은 자연스럽게 여행모드로 변해갔다.

'까짓 것 가는 거야! 아이들, 어쩌겠어. 엄마한테 좀 미안하지만 맡겨야지.'

여행은 단 일주일 만에 결정됐고, 장소도 비행기 티켓을 고르는 순간에 결정했다. 얼굴 맞대고 여행 계획을 짤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현실은 메신저로 의견을 묻는 정도였다. 영업직인 남편은 퇴근이 늦는 편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얼굴을 볼 수 있겠지만 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므로…. 평소처럼 메신저로 결정할 수밖에….

남편: "자갸, 자리에 있어?"
나  : "응, 말해!"
남편: "숙소 어떻게 하지?"
나  : "홍콩에 우리 잘 방 없겠어?"
남편: "호텔 잡아야하지 않을까?"
나  : "호텔은 무슨, 돈이 얼마인데… 거기 도시잖아, 모텔 같은 거 없을까? 서울엔 모텔 많잖아."
남편: "그럼, 거기 가서 숙소 잡자."
  : "응, 수고"

호텔은 왠지 비쌀 것 같았다. '하룻밤 자는데 10만 원 넘는 것 아냐? 넘 비싸. 모텔이 좀 더 싸지 않을까, 거기도 사람 곳이니 싸게 해달라고 하면 좀 더 싸게 잘 수 있지 않을까' 등등 머릿속은 '아줌마 마인드'에서 나온 생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여 숙소는 현지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단순하기 그지없는, 용감무쌍 그 자체였다. 여행을 다녀봤어야, 호텔비가 얼마인지 알지. 거기가 그럴 줄 알았나? 여행 일정도 홍콩여행 중 가고 싶은 곳으로 잡기로 했다. 물론 숙소를 정하지 않았으니 배낭여행으로…. 20대 청춘도 아니고 이건 환장할 정도로 아찔한 계획이었다.

정신줄 놓고 놀다 정신 차려보니... '노숙하게 생겼잖아!'

홍콩 공항에서 맛 본 허유산의 망고주스
 홍콩 공항에서 맛 본 허유산의 망고주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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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버스를 타고 퉁청역으로 gogo
 홍콩버스를 타고 퉁청역으로 gogo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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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도착한 후 홍콩버스를 타고 퉁청역으로 향했다. 물론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여행을 왔으니 볼 건 봐야지, 숙소는 저녁에 홍콩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주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었다. 지금은 노는 게 더 중요했다.

홍콩에서의 기다림. 스카이 케이블카 타기 위해서 줄을 섰다.
 홍콩에서의 기다림. 스카이 케이블카 타기 위해서 줄을 섰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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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간질갈질~ 스카이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 본 풍경. 여행 가방이 떠 있는 느낌이죠^^
 발가락이 간질갈질~ 스카이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 본 풍경. 여행 가방이 떠 있는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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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앞으로 닥쳐 올 미래를 예감하지 못했다.
 이때는 앞으로 닥쳐 올 미래를 예감하지 못했다.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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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청역에는 옹핑빌리지와 포린사로 가는 스카이 케이블카가 있다. 노 플랜(no plan)이라고 쓰인 홍콩여행 책.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무작정 일정을 잡았다. 홍콩산을 넘어, 넘어 가는 스카이 케이블카. 특히 이 케이블카는 아래 부분이 유리인지, 아크릴인지 잘 모르겠지만 투명해서 발바닥 아래로 환히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아찔하고 신기했다. 옹핑빌리지와 포린사 대형불상을 구경하고, 수상 가옥으로 유명한 타이오 마을로 향했다.

볼거리, 놀거리도 많은 홍콩... '우선 재미있게 놀고 보자'

이곳에서 분홍 돌고래를 볼 수 있단다.
 이곳에서 분홍 돌고래를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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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서 바라 본 수상 가옥.
 배 안에서 바라 본 수상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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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오 마을에서는 분홍 돌고래를 구경해야 한단다. 한국 돈으로 3000원씩 하는 배삯을 지불하고 작은 배를 탔지만, 돌고래는커녕 물고기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했다. 20여 분 정도 쪽배로 수상가옥을 구경했다. 배 안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지만 반가움보다 어색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어색하게 지내야만 하는 시간이 싫었다. 아직 못 구한 숙소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낯선 이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았다. 벌써 숙소에 대해 걱정하는 건, 기분을 망치는 것 같기도 하고….

빨래가 널려 있는 타이오 마을
 빨래가 널려 있는 타이오 마을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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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타이오 마을 안에 있는 시장을 돌아보았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주인공 주걸륜 같이 생긴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떼로 몰려왔다가 지나갔다. 평온한 어촌 마을, 아름다웠다.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우리가 구경해야 할 곳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급하게 버스를 타고 홍콩시내 센트럴역으로 향했다.

해가 진 센트럴역은 화려한 네온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뽐낸 홍콩빌딩이 가득한 신세계였다. 우리는 주저없이 다시 버스를 타고, 빅토리아 피크로 향했다.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트램을 탈 생각이었다. 홍콩은 역시 관광지. 어딜 가나 기다리는 것이 일이다. 긴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트램을 기다렸다. 트램에서 내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홍콩 빌딩이 한 눈에 보인다는 홍콩의 야경을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고 다녔다. 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구경한 야경
 빅토리아 피크에서 구경한 야경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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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케이블카 타고, 다시 버스 타고, 트램 타고…. 토 나올 정도로 타고 다녔다. 한 1년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을 오늘 다 타고 다닌 셈이다. 구경할 때는 좋았는데, 체력이 바닥났다. 4박 5일간 가지고 다녀야 할 짐도 함께였다. 무슨 여행을 하루 만에 끝낼 생각인지, 강행군이다. 게다가 아직 숙소도 정하지 못한 상황. 책 한 권 달랑 들고, 맘에 드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오후 11시가 다 되어 갔다. 쉬고 싶지만 쉴 방이 없었다.

그때 정신이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숙소가 없다는 것을…. 서울에 널리고, 깔리고, 치이는 모텔은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책에도 가는 길이 없다. 택시를 타고 젊은이들의 거리 란콰이퐁으로 향했다. 이곳이 서울의 이태원 같은 곳이란다. 이곳엔 있겠지. 우리가 찾는 그 것. 도심 속 밤은 화려하다. 아름다운 서양 여인들이 현란한 바(bar) 앞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그 화려함에 눈길을 빼앗겨 다시 정신줄 놓고 구경하며 길을 걷다가 침사추이까지 걸었다.

여긴 또 어딘가. 이러다 노숙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 순간이었다. 모텔에 'M'자, 호텔에 'H'자, 비슷한 글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비슷한 도심 풍경이지만 이곳엔 모텔이 없다. 지도를 중심으로 책을 살펴봐도 모텔은 없었다. 우리가 못 찾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때, 알았다. 이 책이 3년 전에 발간한 책이라는 것을…. 책에서 소개한 호텔을 찾아간 곳은 없어지거나 겨우 찾았어도 방이 없었다.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단다. 서울에서는 굳이 찾지 않아도 보이는 화려한 모텔 간판, 이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온종일 걸은 탓에 다리는 한 발 떼기조차 힘들었다. 

란콰이퐁 거리
 란콰이퐁 거리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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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란콰이퐁 거리
 화려한 란콰이퐁 거리
ⓒ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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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G'자, 게스트 하우스를 발견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그곳엔 철문으로 잠겨 있었다.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 묵직한 다리, 바짝 긴장해서 경직된 피로감. 더 이상 여행이 아닌 생존이다. 얼핏 보였던 경비원을 향해 무작정 문을 두드려, 게스트 하우스를 가야한다고 사정했다.

겨우 들어간 게스트 하우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작은 안도감이 몸과 맘을 다독였다. 게스트 하우스 안, 우리가 빌린 방은 한 사람이 들어가 있어도 답답할 정도로 작은 화장실과 침대 하나 딸랑 있는 방이었다. 남편은 9년 만에 온 해외여행 첫날밤을 이런 곳에서 지내게 하여 미안하다고 했지만, 난 이것도 어딘가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일은 '방부터 구하자'는 굳은 의지를 갖고, 오늘 하루 지내기로 했다. 헉, 그런데 이 코딱지만한 방이 홍콩달러로 600불(HD$),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9만 원이란다.

(둘째 날도 기대하세요 ~ㅋㅋ^^;)

덧붙이는 글 | 홍콩은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홍콩, #옹핑, #타이오마을, #센트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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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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