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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의 처방을 조제하는 약국. 처방된 약의 효능과 부작용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약국 이용자들은 약을 '누가' 제조하는지 알 수 없다.
 병·의원의 처방을 조제하는 약국. 처방된 약의 효능과 부작용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약국 이용자들은 약을 '누가' 제조하는지 알 수 없다.
ⓒ 전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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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일은 약을 조제하거나 환자들이 달라는 약을 주는 거예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아무개(20)씨. 간호학원을 다니기 위해 일자리를 구한 곳은 '강남의 OO약국'. 이 약국에서 그녀가 하는 일은 청소나 물품 정리가 전부는 아니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그녀는 약국에서 직접 약을 조제하고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김씨의 아르바이트 명칭은 바로 '카운터'였다. 카운터란 약국에서 약사를 대신해 전문 의약품을 조제하고 일반 의약품을 판매하는 무자격 일반직원을 일컫는 말이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되자 약국은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일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일이 단순화되자 일부 약사들은 점차 카운터를 채용해 조제 업무를 맡기기 시작했다. 약사와 하는 일은 동일하지만 카운터를 고용할 경우 인건비는 약사의 1/3 정도로 줄어든다.

이는 김아무개씨만의 유일무이한 사례가 아니다. 외래 환자만 하루에 1만여 명이 넘게 드나드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변에는 약국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대형병원 근처 약국은 일반의약품뿐 아니라, 전문의약품 취급이 높은 곳이다. 때문에 약사에 의한 약 판매와 복약지도가 필수적이다.

약사법 제21조 1항에서는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으며, 약사 및 한약사는 각각 면허의 범위 안에서 약품을 조제하여만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과연 약국들은 이 조항을 잘 지키고 있을까?

약사 아닌 카운터가 약 건넨 약국, 10곳 중 7곳

그래서 ▲ 약사면허증의 가시 거리가 확보되어 있는가 ▲ 약사가 직접 약을 판매하는가 ▲ 약사 가운에 명찰을 소지하고 있는가 ▲ 약사 가운에 사진이 부착되어 있는가 등의 기준을 세워 신촌과 홍대 부근 약국 10곳을 직접 조사했다. 하지만 위의 사항을 모두 충족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시민들이 약사와 카운터를 식별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약사 면허증과 약사를 직접 비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국 측에서는 약사 면허증을 가시권 거리에 놓아 이용객들이 보다 용이하게 면허증의 사진과 약사의 이름 및 얼굴을 구분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하지만 10개의 약국 중 8곳은 약사 면허증을 걸어두긴 했지만 그 중 2곳은 쌓아놓은 약품에 가려지거나 조제실 뒤와 같이 가시권 밖에 놔뒀다. 또 약사 면허증을 가시권에 걸어놓았지만 면허증이 오래돼 약사 면허증에 적힌 이름과 사진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②번 약국에서는 의약품 판매자가 약사 가운을 입고 있었으나, 명찰과 사진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약사인지 판단할 수 없어 세모로 표시했다.
 ②번 약국에서는 의약품 판매자가 약사 가운을 입고 있었으나, 명찰과 사진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약사인지 판단할 수 없어 세모로 표시했다.
ⓒ 전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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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가 약을 건넨 경우도 7곳이었다. 그 중에서 5곳은 약사가 있었음에도 약사 가운을 입지 않은 직원이 환자의 증상에 맞는 약을 골라주었다. 7곳 중에 2곳은 소규모 약국으로 직원이 각 1명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약사 가운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아 그들이 카운터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약사와 직원이 5명 이상 고용된 대형 약국과 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약사와 직원의 구분이 명확해 보였으나, 일반의약품을 구매할 경우에는 카운터가 약을 판매했다. 약사가운을 입고 있더라도 명찰과 사진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카운터인지 진짜 약사인지 판별이 불가능했다. 카운터이기에 복약지도도 허술했다. 소화제를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카운터는 하루 복용량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약을 건넸다.

약사회 "자율지도권 상실되면서 관리할 방법이 없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는 2만여 개나 넘는 약국들을 전부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현재 식약청과 함께 합동 단속을 시행 중이다. 지난 10월 17일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김정식 사무관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사전에 예고하지 않고 단속을 실시하여 적발한 약국을 행정처분하는 등 약사회 측과 단속 및 약사 교육 활동을 통해 서로 협조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날 약사회 측은 "고발을 받는 즉시 식약청과 복지부와 연결하여 약국 측에 경고 및 지도 교육을 따로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종의 카운터에 대한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자율 지도권이 상실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관리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슈퍼판매와 관련해서도 개별 약국에서 일어나는 남용과 관련한 안전성은 우리가 다룰 수 없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약사회는 "예전에는 자율지도권이 있어서 약국에 자료를 요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상시적으로 관리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카운터 문제는 1990년대부터 계속 지적된 문제다. 1993년 8월 5일자 <동아일보>는 '긴급 진단 의료 부조리(9)'란 기사를 통해 가짜 약사를 고용하여 약을 판매하는 부조리를 보도했다. 즉 자율지도권이 있었던 때에도 카운터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동안 복지부와 약사회의 약국 단속 등의 방안이 실효성이 없었음을 방증한다.

이에 대해 최헌수 대한약사회 팀장은 "자율지도권이 있었던 때는 약사회가 직접 카운터를 고발하고 약국을 제재하면서 카운터가 번성하는 것을 일정 수준 방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일부 약국들이 카운터를 계속 고용하고 2000년에 의약분업 이후 이런 지도권이 상실되자 강력하게 약국을 단속하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 차원에서 자율지도권을 통해 지속적으로 약국을 관리하고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카운터를 고용하는 문제가 약사회 임원 약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소속 약사들은 약사가 아닌 종업원이 의약품을 판매하는 동영상을 찍었다. 여기에는 약사회 상임이사부터 서울지역 분회장 약국까지 포함됐다. 약사들은 카운터 문제가 약사회 차원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이유로 임원약국을 지적했다. 그러나 약사회는 "약사들의 카운터 제보는 신중하게 접근 할 문제"라고 했다.

안전성 때문에 '슈퍼판매' 반대하는 약사회, 그럼 카운터는?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
ⓒ 전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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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부 약국들이 무자격자 약사를 고용하면서 비롯된 약 복용에 관한 안전성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일반의약품을 슈퍼나 편의점 같은 편의시설에서 판매하자는 약사법 개정안에 약사회가 반대하는 이유 역시 안전성 때문이다. 즉 의약품이 슈퍼에서 판매가 허용될 경우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이들이 약을 판매할 우려가 있으며 이로 인해 약의 오남용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0월 17일 서울의대 의료정책실 권용진 교수는 "지금도 약국에서 일반약을 구입할 때는 약사가 복약지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서는 약국에서 구입하나 슈퍼에서 구입하나 마찬가지"라며 "약사가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자기 안전을 지키는 것이니만큼 안전이 검증된 약을 슈퍼에서 팔고 국민들에게 부작용을 잘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박은수 의원실은 "기존 약국에서도 복약지도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만일 약의 오남용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약국에서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비해 슈퍼에서는 사후관리가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와 함께 약사법 개정 논의 자체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슈퍼 판매와 관련한 법의 진행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많다는 입장이다.  

환자단체연 "카운터 약 판매할 경우 약사회에 고발해야"

약을 조제하고 판매하는 것은 약사의 고유한 의무이자 법이다. 약사는 환자들에게 의약품의 안전한 복용방법과 부작용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의약품 비용에는 약사의 복약지도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약사에게 위와 같은 역할이 부여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약의 '안전성'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성을 담보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자신에게 약을 건네는 약사가 진짜 약사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양현정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는 "중요한 이슈마다 약사들은 안전성 문제를 내세워 '전문가인 자신들이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비전문인'이 의약품을 취급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약사회의 노력은 부족하다"며 "'약물의 오남용 때문에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고 주장으로 국민을 설득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카운터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양 대표는 "카운터가 약을 조제하고 판매할 경우 약사회 등에 고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복지부와 약사회에서도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더 효과적으로 약국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약국은 단순히 약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같은 약이라 할지라도 성분과 복용방법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큰 부작용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이 제2의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약사들이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 대한 책임감을 갖아야 하는 것은 물론, 정부와 약국 이용자들의 꾸준한 관심도 필요하다.   


태그:#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약사, #카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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