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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역사 앞에 세워진 왈우 강우규 의사의 동상.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사이또 신임 일본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 장소는 당시 남대문역이었던 서울역이었다.
▲ 왈우 강우규 의사의 부활 구 서울역사 앞에 세워진 왈우 강우규 의사의 동상.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사이또 신임 일본 총독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 장소는 당시 남대문역이었던 서울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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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구 서울역사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4년 이후로 기능을 다한 구 서울역사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거대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지난 2009년 6월 23일 당시 찾은 구 서울역사는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변신을 하기 전 일반 대중들에게 마지막 모습을 공개했다. 그 후 2년여의 세월이 끝나고 2011년 8월 9일 구 서울역사는 '문화역 서울 284'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름 중 '284'의 의미는 서울역의 사적 등록번호가 284번이라는 뜻이다.

2009년 구 서울역사와 현재의 '문화역서울 284'. 2년동안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간판이 사라진 문화역

2009년 6월 당시 문화역으로 변신하기 전이었던 서울역의 모습
▲ 변신 전 서울역의 상징이었던 간판이.. 2009년 6월 당시 문화역으로 변신하기 전이었던 서울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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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구 서울역사의 얼굴이었던 '서울역 Seoul Station' 간판이 사라졌다. '문화역 서울 284'의 과감한 시도다. 대신 역사적인 의미를 살렸다. 1919년 9월 2일 서울역에서 사이또 일본 신임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광장 주변에 세워졌다.

강우규 의사는 학계로부터 과감하게 항일의거를 행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는 형태가 너무 작았다. 일반 서울 시민들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작은 크기였다. 그러나 '문화역 서울 284'의 탄생과 함께 강우규 의사는 동상으로 부활했다. 그외 외부를 살펴보면, 원형 그대로 복원한 흔적이 남아있다. 곳곳에 낡은 부분을 섬세하게 개보수한 흔적이 돋보인다.

'문화역 서울 284'의 외부 모습. 서울역 간판을 없애고 출입문 주변을 단정하게 교체했다.
▲ 깔끔하게 변신한 문화역 서울 '문화역 서울 284'의 외부 모습. 서울역 간판을 없애고 출입문 주변을 단정하게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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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를 상징하는 난로, 그대로 살아나다

지난 2009년 당시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서울역사 내에 설치된 모형 난로가 1920년대 표현주의를 상징하는 역사적 근거라고 설명했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2009년 당시 공개됐던 구 서울역사의 표현주의형태 모형난로 모습
▲ 마치 눈물 흐르듯이.. 흐느꼈던 난로가.. 2009년 당시 공개됐던 구 서울역사의 표현주의형태 모형난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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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문화역 서울 284로 변신한 구 서울역사의 표현주의 난로는 그대로 유지됐다.
▲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다 2011년 문화역 서울 284로 변신한 구 서울역사의 표현주의 난로는 그대로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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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이 없었다. 현재의 '문화역 서울 284'도 표현주의 형식의 난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2년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짐했던 사항 중 하나가 "건물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전시공간을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이 난로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전 예전 한국철도에서 운영하던 '교양실'에 자리했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교양실'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어두운 갈색 바탕의 분위기를 흰색 배경으로 바꿨다.

구 서울역사 '교양실'이었던 지난 2009년도의 모습
▲ 어두웠던 지난 날의 '교양실' 구 서울역사 '교양실'이었던 지난 2009년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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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유지한채, 밝게 변한 오늘날의 '문화역 서울 284' 모습. '교양실'이 리셉션장으로 바뀌었다.
▲ 분위기는 살리면서 밝게! 형태는 유지한채, 밝게 변한 오늘날의 '문화역 서울 284' 모습. '교양실'이 리셉션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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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재개발보단, '원형보존'

로비서부터 전시공간을 살펴보면, 기존 구 서울역사의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앙홀 로비도 특별하게 변한 것이 없다.

구 서울역사의 2009년도 내부 모습
▲ 변신 전 로비 구 서울역사의 2009년도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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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부분을 보수했지만, 분위기만큼은 예전 서울역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역 서울 284'의 중앙 로비
▲ 예전 향기 그대로 세세한 부분을 보수했지만, 분위기만큼은 예전 서울역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역 서울 284'의 중앙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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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개관한 '문화역 서울 284'의 내부와 외부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구 서울역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르네상스 양식을 고집한 일제의 부흥식 표현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 건물과 구 서울역 건물이 존재하고 있다. 얼핏보면 아픈 역사의 혼이 담긴 건축 양식이다. 그렇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건물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서울역의 역사가 서울시민들에게 향수와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경제 발전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문화역 서울 284'는 10일 연합국제보도사진전과 111일 개관프로젝트 '카운트다운' 전시를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일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문화역 서울 284'가 공식 출범하지는 못한 상황. 이를 위해 전시 자체의 초점도 이름 그대로 '카운트다운' 형식을 골랐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구 서울역 내부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작품을 준비해 놓았다.

수많은 역사와 함께하며 서울 역사(歷史)의 얼굴이 된 구 서울역사. 이제 '문화역 서울 284'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신세대 대중들의 관심을 지어낼지 관심사다.

이 날 개관행사에서 김재윤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네번째부터)등이 참석했다. 테이프 커팅 대신, 동작감지기 커팅을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모습
▲ 국내 최초 '동작감지기 커팅' 이 날 개관행사에서 김재윤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네번째부터)등이 참석했다. 테이프 커팅 대신, 동작감지기 커팅을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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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화역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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