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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나는 대구시청 앞에서 45인승 버스 한 대에 몸을 실었다. 다름 아닌 한진중공업 노동자 대량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영도 조선소의 35m 높이 크레인에서 200일이 넘도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해고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부산 영도로 가는 '희망의 버스'다. 6·10 항쟁 기념일 다음 날인 6월 11일 1차, 7월 9일 2차에 이어 벌써 3차 째다. 참가한 인원만 해도 1차에 천여 명에 불과했던 희망버스 참여자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2차엔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3차에도 상당한 인원이 참석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몇만 원씩 사비까지 털어가며 버스에 오르고 있는 걸까.

기획한 지 10일 만에 나온 <깔깔깔 희망의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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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깔깔 기획단이 엮은 <깔깔깔 희망의 버스> 겉그림. .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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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깔깔깔 희망의 버스>(깔깔깔 기획단/후마니타스/2011)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투쟁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언론·인터넷·트위터 등을 통해 전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책을 엮은 '깔깔깔 기획단'은 잘못된 권위와 폭력을 풍자와 해학을 품은 연대로 뛰어 넘어보자고 말한다. 알려진 것처럼 이 책은 속성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6월 25일에 기획한 책이 불과 10일 만에 나왔다.

책의 1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지난 1월 6일 크레인에 오른 후 쓴 글들이다. 2부는 송경동, 홍세화, 김여진, 미류 등이 시민들에게 희망버스에 동참해줄 것을 권하는 글들이다. 3부는 1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다녀온 시민들이 여기저기에 남긴 글들이다. 왜 50대 여성 해고노동자가 크레인에 올라가 몇 백 일을 버티고 있는지, 왜 평범한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갔는지 책으로 기록함으로써 더 많은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 셈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들은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2007)를 통해 이미 확인했던 것처럼 시종 가슴을 울렸다. 시인 송경동의 표현처럼 "이렇게 처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학", "이렇게 아름답고 존엄한 인간의 말(87쪽)"을 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한편 트위터 등에 썼다는 짧은 글들에서 '눙을 치고 골리며 신나하는' 모습은 <소금꽃나무>에선 만나보지 못한 예상외의 모습이었다. 근데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왜 '희망의 버스'에 오르나

부산역 광장에서 시작해 영도 조선소와 한진중공업 R&D센터를 거쳐 부산지방경찰청에서 끝마친 1박 2일(사실 무박 2일에 가까웠다)간의 '3차 희망의 버스'는 좀 피곤하기는 했어도 꽤 즐거운 일정이었다. 특히, 31일 새벽 영도조선소 정문에서 600m 떨어진 청학성당 인근 이면도로에 차린 무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들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전화 발언은 오래 가슴에 남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큰 사고 없이 평화롭게 보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왜 '희망의 버스'에 오르는지 말해야겠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은, 절망적인 시절을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대한민국에서 왜소해진 것은 '일반 시민의 생존권'이요, 비대해진 것은 '자본의 권한'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자본의 힘 앞에 시민들이 무기력해진 것도 이미 오래다. 이런 와중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이윤보다 '사람'을 택한 수많은 사람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이유다.

대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니 벌써 '4차 희망의 버스'가 기다려진다. 하지만 그 전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주익 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15쪽)"을 꼭 이루는 걸 지켜보는 일이 더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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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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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단하게 살아서 그랬을까요. 다음엔 한자리에 가만히 서있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새가 되고 싶습니다. 훨훨~.
 주익 씨도... 새가 되었을 거예요. 훨훨~.

 짧은 잠을 자며, 똑같은 꿈을 두 번 꿨습니다.
 시장구경도 하며 돌아다니는데 어딜 가나 크레인이 보였습니다. 85호...
 곁에 있는 사람은 이것저것 물건도 만져보고, 웃기도 하고, 천진스러운데,
 저는 크레인을 바라보며 저길 올라 가야하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올라 가야하는데, 꿈에서도 애가 탔습니다.

 100일. 200일. 그건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내려가면 제대로 못 살 거라는 거. 그게 더 중요해요. 제게는.
 두 사람 한꺼번에 묻고 8년을 허깨비처럼 살았으니까요.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따뜻한 거, 시원한 거, 다 미안했으니까요.
 밤새 잠 못 들다 새벽이면 미친 듯이 산으로 뛰어가곤 했으니까요.

 꿈조차 제 것이 아니었던, 미래 역시 제 몫이 아니었던 우리들이 모여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그렇게 함께 꾸는 꿈이 희망버스에
 실려 있습니다. 더 이상 패배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암흑 속에 앉아 새벽처럼 밝아오는 여러분들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즐겁게! 의연하게! 담대하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 2011년 7월 25일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편지"

덧붙이는 글 | "주익 씨"는 지난 2003년 회사 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129일 동안 농성하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故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지회장을 말한다.



깔깔깔 희망의 버스 -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깔깔깔 기획단 엮음, 후마니타스(2011)


태그:#희망의버스,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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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영화 만드는 사람.본업(영화감독)보다 부업(물레책방 대표)으로 알려져 난감하다.앞으로도 지금처럼 영화 만들고 책 읽으며 살고 싶다.이런저런 매체에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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