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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통보를 받고 미소가 번졌다. 회사 합격이냐고? 그게 아니고 기숙사 합격이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숙사 입사 선발에서 탈락한 두 번의 쓰라린 경험이 있었던 나에겐 대단한 기쁨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기숙사가 무슨 굉장한 경쟁을 치르고 들어가는 곳 같다. 실로 대학생들에게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에 통과하는 것과 같다.

대학 1, 2학년 때 받은 매우 저렴(?)한 학점과 실 거주지가 인천이라는 수도권 소속 때문인지 기숙사는 나를 밀어내기만 했다. 그랬던 내가 졸업을 코앞에 두고 겨우겨우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여름방학 두 달간 말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에휴, 취업도 안 된 마당에 기숙사에 처박혀서 공부나 해야겠다." 그렇게 대학 말년에 나의 기숙사 생활은 시작되었다.

여기가 군대야? 다 큰 대학생한테 '점호'라니

내가 두 달 동안 머물던 기숙사. 450여 명을 수용하고 있다.
 내가 두 달 동안 머물던 기숙사. 450여 명을 수용하고 있다.
ⓒ 최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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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창문을 열면 멋진 남자가 서 있고, 둘이 달빛 아래 밀담을 나눈다'는 나의 기숙사 로망은 입사한 바로 그날 밤 산산조각이 났다. 기숙사 창문을 여니 축산 농가가 있다는 뒷산 어딘가에서 구수한 소똥 냄새가 풍겼다. 술을 거하게 드신 것 같은 새내기들은 기숙사 앞마당에서 데시벨 측정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우렁찬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뜨악'하게 만든 것은 밤 12시에 난데없이 찾아온 사감 선생이었다. 자정이 되면 불시에 사생들이 방에 제대로 안착(?)해있는지 검사하는 '점호'였다. 중학교 때 극기훈련 가면 밤마다 교관들이 분위기 잡으면서 실시하던 그것을 성인이 돼서도 해야 한다니….

한 달에 단 8회로 제한된 외박과 야간출입 허가증도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기숙사 홈페이지에 사유를 쓴 다음 출력해서 행정실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출해야 하는 시간도 오후 아홉 시까지라 시간을 놓치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벌점이었다. 외박 한 번이면 벌점 1점이고, 8점이면 강제퇴사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벌점에 벌벌 떨었다.

나는 어차피 졸업이라 벌점이 그득해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외박과 야간출입을 자유롭게 남발하여 주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점호하러 들어오는 사감 선생은 내가 이름을 말하기 전에 이미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기숙사에 살던 한 독일 친구가 기숙사의 'curfew(통금시간)'를 자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것이 생각났다. 강한 책임의식과 자기 신뢰를 가졌다는 독일인인데, 이런 기숙사 제도들이 오죽 답답했을까.

학생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신발장 위에 쌓여 있다. 신발장 정리정돈을 잘 하거나 남의 분실물을 찾아주는 등 모범적인 행위를 할 경우 상점으로 2점을 받는다.
▲ 기숙사 복도 학생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신발장 위에 쌓여 있다. 신발장 정리정돈을 잘 하거나 남의 분실물을 찾아주는 등 모범적인 행위를 할 경우 상점으로 2점을 받는다.
ⓒ 최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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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시원이나 원룸보다는 낫지

그러나 이 모든 불평불만에도 기숙사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그럴 것이다. 한 학기에 50만 원쯤(4인실)하는 저렴한 기숙사비는 자유의 속박에서 오는 불만을 상회하고도 남는다. 기숙사는 학교와의 접근성과 안전성이란 측면에서 주변의 원룸이나 고시텔보다 학생들이 더 선호하는 주거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가 경기도로 이사 온 후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거주지 문제는 늘 골칫거리였다. 과거 한남동에 있을 땐 학교 주변에서 이태원 주변까지 싼 하숙집들이 많았고, 서울이라 통학하기도 비교적 쉬었다. 하지만 이전 후로는 통학이 어려워져 많은 학생들이 자취를 생각해야 했는데,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학교 앞은 초기에 원룸이나 고시원이 많지 않았고 가격도 한남동보다 비쌌다.

다행히 지금은 고시원이나 원룸이 학교 주변에 많이 생겨서 그나마 학생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있기는 하다. 가격도 고시원 30만 원대, 원룸 40만 원대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원룸의 경우 방값이 40만 원이지 전깃세, 물세, 밥값 등 생활비를 고려하면 5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고시원은 또 어떤가. 친구 고시원에 놀러 갔다가 대각선으로 누워 잠을 자야 했던 황당한 경험이 있다. 개미굴 같은 고시원에 불이라도 나서 모두 동시에 방문을 열면, 그 문들로 통로가 막혀 모두 사각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화재나 성폭행 등에 취약한 고시원의 안전문제는 언론에서 숱하게 지적됐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생 복지가 별건가... 기숙사는 복지다!

민자 기숙사 전경. 지하 1층 지상 10층 건물의 이 기숙사는 학생 1천여 명을 수용하고 있다.
 민자 기숙사 전경. 지하 1층 지상 10층 건물의 이 기숙사는 학생 1천여 명을 수용하고 있다.
ⓒ 최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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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학 말년에 짧게나마 기숙사에서 생활해 본 내 경험에 따르면, 대학생들에게 기숙사만큼 좋은 곳이 없다.

내가 다닌 학교에도 작년에 기숙사 수용 인원을 늘린다며 민자기숙사가 들어섰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기존의 기숙사보다 가격이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하고, 투자비를 회수할 때까지 학생들에게서 받은 기숙사비로 운영하는데, 빠른 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기숙사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우리 학교 민자기숙사는 한 학기 이용료가 194만 원(1인실)인데, 일부 언론에서 200만 원이 넘는다고 보도한 서울 K대 민자기숙사비보다는 낮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물론 우리는 여기에 1식이 포함돼 있긴 하다). 1회 식사를 제외하면 한 달에 50만 원꼴인데, 이는 최신 시설로 꾸며진 원룸가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실 기숙사 가격은 학교 밖 원룸이나 고시원의 그것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 기숙사는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이 학업에 전진할 수 있도록 주거 문제를 해결해주는 복지 차원의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학생복지가 별건가.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학교가 지원하는 것이다. 장학금도, 교환학생 혜택도 좋지만 저렴하고 안전한 기숙사에서 의식주 해결하는데 어려움 느끼지 않는 것만 한 복지가 대학생들에게 어딨겠는가.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 기숙사가 전교생 1만여 명 내외에서 1천 명 정도의 수용인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너무 적다. 이제라도 대학들과 정부 차원에서 학생들의 주거문제에 좀 더 책임있는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민자 기숙사에는 일반 기숙사에 없는 체력단련실과, 세미나실, 식당 등이 있다. 학생들은 돈만 있으면 민자 기숙사에 들어가길 원한다.
▲ 민자 기숙사 체력단련실 민자 기숙사에는 일반 기숙사에 없는 체력단련실과, 세미나실, 식당 등이 있다. 학생들은 돈만 있으면 민자 기숙사에 들어가길 원한다.
ⓒ 최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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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학교, #???O??Б?, #기숙사, #주거 문제, #고시원, #주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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